윤 대통령 '국무위원은 정무적 정치인, 싸우라' 주문 효과

한동훈·원희룡에 한덕수·김영호·박민식까지 전면 나서

야당 의원에 "패배주의 빠지지 말라" "착각하지 마시라"

"입법부 '입법 지원' 등 사실상 포기 … 총선까지 강경 대응"

국무위원들이 야당의 국정 비판에 날카로워졌다. 직격이다. 한동훈 법무부장관 정도가 '깐죽댄다'는 말을 들어가면서 야당에 맞서 보수진영의 '사이다'로 불렸던 것과 달리 정기국회에서는 대부분 국무위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주문한 '정무적 정치인'이나 '전사'로 돌변한 모습을 보였다.

답변하는 박민식 장관 |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6일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펼쳐진 대정부질문에서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북핵) 확장 억제를 했다고 자랑을 하는데 실제로 확장 억제가 됐냐는 이야기다. 대단히 착각하고 계신 것 아니냐"고 따지자 "의원님이 착각하고 계시는 것이다", "아 정말 공부 좀 하세요 여러분"이라고 응수했다. 김 의원이 일본과의 군사협력에 대해 "세계 6위의 국방력과 한미동맹으로는 도저히 우리나라를 지킬 자신이 없나"라고 묻자 한 총리는 "의원님 패배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답했다. "종전 선언을 하면 우리 국방력이 해체라도 되는 거냐"는 질문엔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막는다면 그것 또한 확증편향"이라고 했고 "수출 소득 생산 소비 투자 등 문재인정부 때보다 더 나은 경제지표가 한 가지라도 있느냐"는 비판엔 "문재인정부 지난 5년 동안 경제운용을 정말 무책임하게 한 것"이라며 "문재인정부처럼 하면 당장 회복된다. 빚 500조쯤 더 얻고 인플레이션이 되든 말든 금리를 낮추고"라고 따졌다.

인사청문회때만 해도 '학자시절의 생각'과 '국무위원으로서 입장'의 변화를 강조했던 김영호 통일부 장관는 '극우 보수'라는 지적에 발끈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전날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참여해 2017년 출범한 '한국자유회의'의 창립선언문 내용 중 '전체주의 위협의 대두에 결연히 맞서 싸워 나갈 것을 선언한다'를 읽으며 "장관께서 주도해서 만든 극우보수단체"라고 했다. 이어 "이 단체에 함께했던 주요 인사 들이 윤석열정부 주요직을 차지했다"며 "장관님을 비롯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과거사정립위원회 위원장, 한국자총위원장, 방문진 이사, 대통령실 비서관 등 어림잡아 대충 본 것만 해도 11명 이상이 윤석열정부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극우 보수적 생각", "평범한 국민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주장", "전형적인 전체주의 사고", "철 지난 뉴라이트 사고" 등으로 비판을 쏟아내고는 "대다수 국민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자 김 장관은 "의원님 그런데 어떤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는 이야기냐"라며 "어떻게 의원님이 마음대로 그걸 한 정치인이 그런 지식인들을 갖다가 극우다 이렇게 단죄를 할 수 있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백선엽 장군의 친일경력을 강하게 방어하다가 문재인 전 대통령 부친까지 끌어들이는 '무리수'를 두기도 했다. 전날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김성주 민주당 의원이 "장관은 백선엽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것에 장관직을 걸겠다고 했지 않나"라며 "백선엽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것은 특별법과 정부가 운영하는 위원회에서 내린 결론인데 장관은 어떤 판단과 확신을 가지고 자꾸 아니라고 주장을 하는 것인가"라고 했다. 이에 박 장관은 "백선엽이 스물 몇 살 때 친일파라고 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인 (준비한 자료를 보면서) 문용형 그분도 거의 나이가 똑같다. 그 당시 흥남시 농업계장을 했다"며 "흥남시 농업계장은 친일파가 아니고 백선엽 만주군관학교 소위는 친일파냐. 어떤 근거로 그렇게 한쪽은 친일파가 되어야 하고 한쪽은 친일파가 안 되어야 하느냐"고 했다. 문재인정부 청와대에서 국정상황실장으로 근무한 윤건영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박 장관의 주장은 완벽한 거짓"이라며 "문 전 대통령의 부친이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하신 것은 일제 치하가 아니라 해방 후의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박 장관의 준비된 대야 대응이 '사자 명예훼손 소송'으로 번질 전망이다.

한동훈 법무부장관, 원희룡 국토부장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 등의 야당을 향한 거친 태도가 한 총리 등 국무위원들로 대거 번진 것은 윤 대통령 지시에 따른 때문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은 모두 정무직 정치인이고 국무위원들은 논리와 말을 가지고 싸우라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강욱 민주당 의원은 전날 "국무위원이 전부 다 정무직 정치인이냐"고 묻자 한 총리는 "의원님들한테 열심히 설명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선의의 논쟁도 하고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셨나 싶다"고 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의 이같은 강경 태도를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질 것에 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야 협치에 의한 법안 통과는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있다는 평가다. 여야의 대화나 타협이 사라진 여의도 정치에서 야당의 화살을 무턱대고 받는 게 지지층 결집에 적절치 않다고 본 때문으로도 해석된다.

민주당 지도부의 모 의원은 "윤석열정부에서는 현재의 입법환경에서는 야당으로부터 협조받기가 어렵다고 보고 입법부를 패싱하는 방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며 "최소한 총선 전까지는 윤석열정부 국무위원들의 강경태도는 변하지 않고 더 가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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