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석학 자크 아탈리

"유럽은 손놓고 방관"

러시아와 힘겨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미국이 종전 후 대규모로 이뤄질 재건사업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달 5일 러시아 공습으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 하리키우의 한 마을에서 구조대가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럽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는 자크 아탈리는 23일 프랑스 유력 경제지 '레제코' 기고에서 "소식통들에 따르면 미국정부는 최근 자국 최대 기업 경영자들과의 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을 준비하라는 내용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정부는 기업 경영자들에게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몰도바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및 중부유럽 국가들의 소규모 기업을 인수해 재건사업 전선에 내세우라'는 지시를 내렸다"며 "유럽이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시장을 미국에 빼앗기는 것에 불쾌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미국정부가 동·중부유럽 기업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전략은 영리하면서도 완전히 합법적"이라며 "이 전략을 기반으로 최근 미국자본이 이들 지역에 대거 유입됐다. 공공사업과 엔지니어링, 수도, 에너지, 디지털, 통신, 난방, 전기 및 건축 관련 기업들을 최대한 빨리 인수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엔 천연자원이 풍부한 것은 물론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많다. 향후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

아탈리는 유럽대륙 주요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상황도 질타했다. 그는 "유럽인들은 때가 되면 자금을 공급해 우크라이나를 재건할 수 있다고 보고 준비를 미루고 있다. 유럽이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시장을 맡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프랑스와 독일, EU 등 유럽 어느 곳에서도 이에 대비한 큰 계획을 준비하거나 유럽 기업들에게 일관된 공동대응을 촉구하는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가 EU에 편입된다고 해도 경제와 금융, 기술 등 분야에서 유럽대륙의 대미 의존이 가속화될 뿐이며 진정한 독립적 정치주체가 될 수 있는 희망을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탈리는 "경쟁상황에서 승리하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위험을 감수하고 먼저 행동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파트너, 경쟁자 또는 적대자를 상대할 때 제때 예측하고 행동하는 건 생존의 문제"라며 "하지만 유럽의 많은 사람들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결정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수만 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고 질타했다.

아탈리는 정치, 경제, 문화, 역사까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식과 통찰력으로 사회변화를 예리하게 전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자크 아탈리는 재기와 상상력, 추진력을 겸비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지식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파리공과대(Ecole Polytechnique), 파리고등정치학교(Science Po), 국립행정학교(ENA) 등 프랑스 명문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소르본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최고 학력을 휩쓸어 '학력으로만 대통령을 뽑는다면 아탈리가 1등'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학식이 깊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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