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몇 지인들과 식당에서 밥 먹는데 마침 TV에서 한국사 수능필수과목 관련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자연스레 얘기가 그 쪽으로 흘러갔다.

50,60대의 남녀 4인은 모두 다 수능화 반대 입장이었다. 자녀가 고교생인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그런 결론을 끌어낸 것은 년대와 사건과 이름들 달달 외우기로 점철됐던 오래전 학창시절의 추억담이었다.

수학에서 점수를 잃고 고마운 암기과목들, 특히 역사과목들에서 초고득점을 얻어 성적이 늘 상위권이었다는 한 지인은 그 지식들이 몇 년 지나지 않아 다 사라졌다고 한탄했다. 더 기막힌 것은 사라져도 별로 아깝지 않은 그냥 그런 지식의 산더미라는 것이다. 그때 썼던 그 막대한 시간과 정력을 알찬 역사 공부에 바쳤더라면 그 후 자신의 사고가 좀 더 일찍 풍성해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인 사람들이 다 '그래, 그래' 하며 비슷한 추억들을 쏟아 냈다. 나 역시 연필로 새까맣게 줄치며 외웠던 '조선은 봉건제가 없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봉건제가 뭔지 아마 선생님은 한번쯤은 설명을 하셨겠지. 하지만 수없이 많은 사건과 단어뿐인 개념의 홍수 속에서 내가 그 개념을 이해했다는 기억은 없다. 정확한 맥락도 모른 채 그냥 외워서 나 역시 국사 세계사 등에서 점수를 올렸다.

대학에 와서 한 두권의 역사서를 읽고 한순간에 봉건제의 개념이 그대로 정확히 인식되었을 때 지난 시간들이 분하기까지 했던 그 기억…. 문제는 몇십년 전의 이 교육기조가 요즘은 변화했냐는 것이다. 학교현장을 잘 아는 지인이 말하기를 달라진 거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역사 흐름 이해하고 역사의식 키우도록

물론 기본적인 사항의 암기는 필요하다. 초등학교 때 노래에 입혀 외웠던 '태정태세 문단세 예성연중 … 철고순종'은 두고두고 유용했다. 하다못해 사극드라마 보다가 시대가 좀 헷갈릴 때면 그 멜로디를 흥얼거리면 바로 정리가 됐다. 조선개국 1392년, 임진왜란 1592년 등은 다른 나라 역사를 읽을 때 비교하여 감을 잡을 수 있는 잣대가 돼 주었다.

그러나 이런 기본적인 사항들은 잘 추리면 초 중학생 때 다 배우고 외울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학교의 역사시수는 적은편이 아니다. 구태어 고교까지 끌고 가지 않아도 된다.

특히 고교역사교육은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역사의식을 키우도록 교육내용과 방식을 바꾸는데 지혜와 결단이 필요하다. 수능과목이 되어 역사지식이 는다고 역사의식이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덧붙여 짚고 넘어가야 할 것 하나, 박근혜 대통령은 6월 이후 여러 차례 역사교육의 문제점을 언급했는데 그중에는 "고교생 69%, '한국전쟁은 북침'이라는 한 언론사의 조사결과를 접한 충격도 포함돼 있다.

그 기사를 처음 봤을때 나도 충격이었지만 '오류일 것이다'라는 생각이 곧 떠올랐다. 너무나 비상식적이기 때문이었다. 그 소동은 입시업체가 이메일로 행한 그 조사에서 학생들이 북침을 '북에 의한 침략'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론사도 시인하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 해프닝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고 본 것일까. 지난달 10일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사 논설실장 간담회에서 한국사를 평가 기준에 넣어 성적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눈치보기식 널뛰기'는 곤란

그러자 애초에 한국사교육 강화에는 찬성하지만 수능과목화에는 부정적이던 교육부가 입장을 선회했다. 지난 8일에는 반대 단체나 인사는 한명, 나머지 4명은 찬성인사들로 구성된 요식적 공청회를 열고 13일에 수능화를 발표하려고 했다. 그러나 12일 있었던 당정협의회에서 새누리당의 신중론에 밀려 다시 후퇴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학부모 부담증가를 우려했고 '세제개편안'으로 홍역을 치른 청와대도 아마 신중모드로 들어간 것 아닌가 싶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한국사 과목은 대입에 연계하되, 방식은 지금까지 제시된 대안에 대한 국민 의견수렴을 거쳐 이달 21일 발표 예정인 대입전형 간소화 방안에 포함해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소년들에게 한국사를 제대로 가르치자는 것은 백번 옳은 말이다. 그러나 전형적인 '눈치보기형 널뛰기' 끝에 1~2주 만에 내놓겠다는 안에 대한 신뢰는 벌써 무너지고 있다.

이옥경 내일신문 이사

이옥경 내일신문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