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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윤재석의 세상탐사]

원조 패러다임의 전환

등록 : 2012-04-20 12:10:35

한국이 지구촌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수원국(受援國)에서 원조를 주는 공여국(供與國)으로 바뀐 지도 어언 21년. 그동안 공적개발원조(ODA)의 패턴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달 초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인도차이나 3개국에서 벌이고 있는 ODA 현황을 돌아보고 나서 그 변화의 일단을 목도할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두드러진 것은 원조의 계열화. 그간 우리의 ODA는 주로 관개시설, 식량 증산 등 농촌 개발, 위생, 보건의료 등 단건 위주의 공여가 대종을 이뤄 왔다. 하지만 ODA 역량이 쌓이면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바로 특정 ODA 아이템을 계열화한 것이다

라오스의 경우, 작년 수도 비엔티안에 350만달러를 들여 70병상의 최신 소아병원(한-라병원)을 지어줬지만 의료인력 충원이 어려워 자립이 불가능한 상태. KOICA는 이 병원에 협력의사 3명과 간호사 3명 등 총 6명을 파견해 병원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돕고 있다.

한편 KOICA는 소아과 전문의가 62명 밖에 안 돼 영아 및 소아 사망률이 최빈국 수준인 라오스에 소아과 전문의 양성 및 보건 의료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

'Q 헬스 프로그램'으로 명명된 이 프로그램은 1000만 달러를 투입해 교육훈련센터를 세우고, 이 시설과 한-라병원을 활용해 라오스 내 소아과 전문의 수를 대폭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병원을 세워주고,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는 동시에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방식의 Q 헬스 프로그램은 라오스 뿐 아니라 베트남 등에서도 추진되고 있다.

다음, 변화된 ODA의 특징으로 원조의 권역화를 들 수 있다. CLMV 국가(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등)의 수도에선 아세안사이버대학 구축이 한창이다. 하노이과학기술대(HUST)를 거점으로 캄보디아기술대(ITC), 라오스국립공대, 미얀마 양곤대 등 4개국 국립대학을 연결하는 온라인 대학이다.

눈에 띄는 변화는 계열화·권역화

이 대학은 2008년 제주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제안돼, 우리 정부가 수락함으로써 설립이 성사된 프로젝트. 오는 9월 학기에 개강할 이 대학은 일단 기초 분야 공통 과목부터 개설해 점차 이공 분야까지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한정된 ODA 인력과 재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도 KOICA가 취하고 있는 전략의 하나. 현재 베트남 전역엔 21명의 한국어 교습요원이 각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체 봉사요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왜 베트남에 한국어 교습 요원이 편중된 것일까. 이유가 있다. 바로 한국기업의 활발한 현지 진출 때문.

호찌민 일대 1600여개를 비롯, 베트남 전역에 한국 기업이 무려 2000여개나 진출해 있다. 한국어 구사와 한국 문화에 익숙한 가능한 인력은 취업에 유리할 뿐 아니라, 회사 내에서의 자생력도 강하다.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한류 열풍 또한 한국어 학습 열기를 고조시키는 요인이다.

지난달 21일 하노이에서 비 등 현역 연예 병사들이 출연한 한-베트남 수교 20주년 기념공연이 성황을 이뤘는가 하면, 호찌민에선 14일 삼성전자-코카콜라 공동주최로 열린 빅뱅 공연이 교민과 현지인들의 참여 열기 속에 진행됐다. 한국 기업의 활발한 진출과 한류 열풍을 극명하게 떠올린 사건 하나. CJ그룹이 이달 초 호찌민에서 최고경영진 회의를 열었다. 1996년 베트남에 상륙한 CJ는 CJ제일제당 사료공장 건설, 뚜레쥬르 개장(14개 매장), 베트남 1위 멀티플렉스 체인 인수, 9개 도시 택배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내기업의 현지 진출에 있어 현지인의 한국어 구사 능력이 날개를 달아줄 것은 자명한 이치다.

GNI의 0.2%까지 끌어올려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진동과 매연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43km의 순환도로를 건설 중인 것도 우리 ODA의 패턴 변화. 예전 이 같은 프로젝트는 대부분 유상원조로 진행됐다.

문제는 이 같은 다각화를 확대하기엔 우리의 ODA 역량이 힘에 부친다는 점이다. 3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DA)가 우리나라를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으로 받아들이면서 내건 조건은 2015년까지 ODA 규모를 국민총소득(GNI) 0.2%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3년을 앞둔 현재 ODA 규모는 아직도 GNI의 0.1%선에 머물고 있다. ODA를 대폭 늘리지 않는 한, KOICA가 펼치는 다각적인 원조 전략도 제약받지 않을 수 없다.

윤재석 프레시안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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