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일' 출생 승진 위해 '전남 해남'으로 변경

2007년 12월 10일, 일주일 후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기정사실로 굳어져 가던 시점이다. 김만복 국정원장은 참여정부에서 마지막 인사권을 행사했다. 정권의 연고에 따라 특정지역으로 쏠리는 국정원 인사의 지역별 안배를 맞추는 데 초점을 두었다. 국정원은 영남정권 때 요직을 영남출신들이 독점하고 호남정권이 들어섰을 때 반대로 뒤집어지면서 외풍을 탄 예가 많았다.

김 원장은 실무요원의 핵심직급인 4급 승진에 '영남출신 40% 미만 호남출신 20%대'라는 지침을 실무진에게 내렸다.

지침을 받은 김 모 인사과장은 골머리를 앓았다. 김 원장의 지시와 달리 실제 승진대상자 46명 가운데 영남출신이 60.9%인 28명이나 된 반면, 호남출신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8,6%인 4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는 묘안을 짜냈다. "승진대상자 문 모씨의 출생지는 경북 영일로 기재돼 있지만 실제로는 전남 해남"이라고 원장에게 보고했다. '경북 영일'은 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고향이기도 하다. 굳이 지역연고를 따지자면 얼마 후 '영일대군'으로 불리는 실세와의 지역연고를 지우는 셈이 된다. 김 원장은 이를 승인했고 국정원 인사시스템에서 문씨의 출생기록이 전남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문씨는 12월 10일자로 4급 요원으로 승진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날, 김 과장은 문씨의 기록을 원래대로 '경북 영일'로 바꿔 기재하겠다고 보고해 기조실장과 원장의 결재를 받았다. 김씨는 "기조실장으로부터 인사자료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위해 호적기준을 다시 정리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국정원 인사시스템상 문씨의 출생지는 다시 '경북영일 출생'으로 바뀌었다. 정권이 바뀌고 2009년 2월 원세훈 국정원장이 취임했다. 김 과장은 '공전자기록 변작' '국가공무원법 56조 위반' '국가공무원법 24조 위반'으로 파면됐다.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회에서 파면은 가혹하다며 해임으로 변경했지만 불복한 김씨는 행정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오석준 부장판사)는 "인사시스템 설치운영 주체는 국가이며 인사권자인 국정원장이라 할지라도 권한을 남용하여 소속 직원의 인사기록에 허위정보를 입력하고 이를 근거로 승진인사를 했다면, 공전자기록 변작과 행사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김만복 국정원장까지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한편 인사상 혜택을 입은 문씨는 "본가는 조부가 거주하는 경북 영일군이나 아버지가 월남에 파병중일 때 어머니가 친정인 전남 해남에서 본인을 낳았다"던 2007년의 주장과 달리 법정에서는 "어머니가 출산을 전후하여 3개월여간 해남에 머물렀고, 그무렵 아버지는 월남에 파병되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문씨가 '실제로는 해남 출생'이라는 주장에도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특정인을 승진시킬 목적으로 인사자료를 함부로 수정한 것으로 보아 해임처분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진병기 기자 j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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