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아직도 극심한 이념갈등의 골에 빠져 있다. 여야간 정쟁은 오히려 약과다. NL과 PD가 언제적 이야기인데 남한 해방 혁명조직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런 불안 속에서 국민통합은 요원하다.

통합에 어긋나는 행태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아랍의 봄 이후 여러 나라들의 내전은 끝 간 데를 모른다. 시리아 내전은 같은 모슬렘이면서 시아와 수니가 종교갈등을 그치지 않아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지난번 학교 교류차 베트남 호치민 시티에 있는 응웬 닷 탄(Ngyuen Tat Thanh, 호치민 대통령의 본명) 대학교를 방문한 김에 전쟁기념관(War Remnants Museum)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10년 동안 한국군을 포함해 각 나라 군인 138만7000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쟁기록이 당시의 비극과 참상을 상기시킨다.

이념투쟁의 비극은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 homo homini lupus를 확인하고, 인간의 존재 자체를 말살한다. 마르크스주의자면서 자본주의와 결혼한 중국과 베트남을 희화화하는 21세기 헤겔주의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강력한 국가만이 자유를 보장한다는 아름다운 역설을 편다. 우리는 국가도 정부도 강력해서 멋대로 자유를 누리고 있는 건가.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국빈 방문한 동남아의 파리, 호치민시티(구 사이공)의 외양은 일인당 국민소득 1300 달러에도 불구하고 식민시대 프랑스의 유산을 그대로 지닌 채 자본주의와 다름없어 보였다.

완벽한 이념과 제도는 없다

속과 겉이 다른 혼돈 속에 국민은 얼마나 편할까. 이념이 대치하는 서울시청 광장의 아이러니도 맥락이 다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념투쟁까지 가진 않더라도 세상은 자신만의 주장이 옳다고 강변하는 자들로 분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배워도 뭘 배웠는지 모르는 사람이나 실재와 허상의 차이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나 존재의 가치와 이유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여서 회의에 절망이 겹친다.

삶이 경쟁이고 때로 투쟁으로 나를 확인할 때가 많다 해도 극단적 갈등과 분쟁은 내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프로이드의 '죽음 충동'과 다를 바 없다. 2013년 현재 이 나라 이념투쟁의 심각성은 정쟁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 정통 역사학자는 현재 역사 교과서를 둘러 싼 이념논쟁이 극을 넘어섰다고 비탄한다. 이승만정부 제1공화국의 존재조차 부인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에 속수무책인 것이 안타깝다고 한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지젝이 옳아도 자본주의라고 폐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도 서양문명의 쇠퇴를 부른 원인 중 하나로 편법을 부추겨 복잡한 규제만 일삼는 자본주의의 만용을 꼽는다. 이런 이즘과 제도는 국세청과 기업 간의 부정직한 거래를 양산하면서 뇌물을 취임 축하금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뻔뻔한 관료만 양산한다.

여기서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은 완벽한 이념과 제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은 여야가 경쟁하되, 사학자들이 논쟁하되, 극렬한 투쟁을 넘어 서로 이해하자고 머리를 맞대고 가슴을 열고 손을 잡자고 하는 통합의 노력을 외면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통합은 허상이거나 과욕일 뿐, 위원회나 구성한다고 될 일이 아니고 나아가 미시적 차원에서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다. 통합은 지역감정이나 극복하고 탕평인사정책을 쓴다고 되지 않는다.

'공존이 문명의 공리'임을 수긍해야

갈등과 분열로 증오심을 불태우는 나라를 치유하는 길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의 지혜부터 짜내는 것이다. 지배욕만 그득해 물질과 에너지만 생산하면 지고지순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이념만으로는 안 되고 여기에 시간의 구조화와 생명체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공감과 공존의 욕구를 대입해야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야간에, 정부와 시민간에, 기관과 기관간에, 기관 내에서 사람과 사람 간에 공존을 위한 인정과 존중을 앞세우는 분위기를 찾기 어려운지 오래다.

늑대가 되지 않기 위해 인간성부터 추스르고 '공존이 문명의 공리'라는 점을 수긍해야 한다. 우리나라 내일을 바로 열기 위해 기본 생각부터 바꾸어야 국민이 함께 숨쉬는 문명국의 문턱이라도 넘을 수 있다.

김광웅 명지전문대 총장

김광웅 명지전문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