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고용부 차관 "위헌 소지 커" … 9월엔 "시정없으면 통보하겠다"

고용노동부(고용부)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문제를 놓고 입장을 바꾼 것으로 확인됐다.

고용부는 올 초까지만 해도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한 전교조 규약에 대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1조 위반사항으로 판단했다. 노조법 21조는 노동조합의 규약이 노동관계법령에 위반한 경우에는 시정을 명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위반시 벌금을 내면 된다.

일부 보수단체의 법외노조화 요구에 대해선 '법적 근거가 미약하고, 위헌 소지가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고용부는 지난 9월23일 기존 입장을 바꿔,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에 해당하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즉 노동조합이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은 후 설립신고서의 반려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행정관청은 30일의 기간을 정해 시정을 요구하고 그 기간 내에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당해 노동조합에 대해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을 통보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올초엔 '법외노조 통보 안된다' = 2013년 초 일부 보수 시민단체 대표들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전교조 문제점을 지적하며 법외노조 통보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며칠 후 고용부 국장이 해당 보수 시민단체를 찾아가, 법외노조 통보를 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담당 국장은 '전교조에 규약시정명령을 내린 것은 법외노조화를 위한 전단계인 노조법 시행령 9조2항에 따른 것이 아니라, 노조법 21조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법외노조 통보를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고용부 공무원노사관계과 김경윤 과장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보수단체 관계자들은 '지금이라도 시행령 9조에 따른 시정명령을 내리고, 불응하면 법외노조로 통보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했으나, 고용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2월14일엔 고용부 차관이 직접 보수단체 관계자를 찾았다. 당시 이재갑 차관은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조항이 법률이 아닌 시행령에 있어 근거규정 자체가 약하고, 법률검토결과 헌법상 피해최소성의 원칙에 반해 자칫 위헌소지가 크다"고 고용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이 차관은 2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같은 발언 사실을 확인했다.

고용부 스스로 법적 근거가 약한 시행령에 따라 법외노조 통보를 하는 것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인권위, 권고 무시한 고용부 =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 법외노조 통보 조항의 문제점은 이미 2010년 9월30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서 지적됐다.

당시 인권위는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의 법외노조 통보 부분을 삭제하고, 시정요구 불이행에 대한 제재는 보다 덜 침익적인 형태로 보완하라'고 고용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는 '노조법 시행령 9조 2항의 법외노조 통보는 설립신고반려와 동일하게 노조법에 의해 설립된 노조에게 인정되는 일체의 지위를 부정한다. 이러한 통보는 행정서비스 이용에 있어 불이익을 주거나 조합활동에 일정한 제약을 주는 등 다른 제재방법을 강구하기보다 신고증 철회와 같이 노조의 지위 차제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가장 침익적인 방법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어 헌법 제37조 2항이 규정한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권위는 나아가 고용부가 시정명령을 요구했던 근거가 되는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노조법 2조의 단서조항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대법원 '해고자도 조합원' 판결 = 노조법 2조는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그 예시로 해고자를 들고 있다. 즉 해고자의 가입을 허용하면 노조로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조항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는 우리나라에 대해 여러차례 '조합원 자격요건의 결정은 노동조합이 그 재량에 따라 결정해야 할 문제이고, 행정당국은 노조의 이러한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어떠한 개입도 해서는 안된다'며 법 개정을 요구했다.

특히 ILO는 '노조 임원이 조합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조의 유효성을 문제삼는 해당 법규정을 폐지함으로써 결사의 자유 원칙 위반상황을 신속하게 종결하라'고 요구했다.

대법원도 이같은 점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2004년 2월 '2001두8568' 판결에서 서울여성노조에서와 같이 초기업적 노조에서는 해고자나 실업자도 조합원 자격이 있다고 인정했다. 구체적으로 노조법에서 근로자란 특정한 사용자에게 고용돼 현실적으로 취업하고 있는 자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실업상태에 있는 자나 구직중인 자도 포함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이같은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하지만 고용부는 이를 무시한 채 노조법 2조에 따른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한 규약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다.

공안 흐름에 편승한 고용부 = 고용부가 시대에 역행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최근 공안세력이 주도하는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검찰이 전직 국가정보원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한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 교체→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등장→법무부의 검찰총장 감찰 실시 등 이른바 '공안몰이'가 벌어지고 있다.

고용부도 이런 흐름에 맞춰 그간 위헌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했던 전교조에 대한 태도를 바꿔 법외노조 통보란 카드를 빼든 것으로 해석된다.

고용부 김경윤 과장은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니다"며 "이전에는 전교조 규약의 문제만을 지적했는데, 최근 교육부로부터 해고자 9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구체적 사실을 통보받아 법외노조 통보를 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교조는 26일 '고용부장관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위헌임을 확인하고 개정을 권고한 바로 그 법령에 근거하여 전교조에 시정명령을 했다'며 인권위에 시정명령 철회권고를 요구하는 긴급구제를 신청했다.

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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