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복 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10월 1∼3일 내일신문과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가 공동으로 수행한 조사는 박근혜 대통령 앞에 놓인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확인시켜 주었다.

아직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고 있는 28.7%의 유권자들이 그 기회와 위기의 실체다. 이들은 현안과 정책에 대해서는 매서운 평가를 내리면서도, 여전히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최종판단을 유보함으로써 기대를 접지 않고 있었다. 전체 유권자들의 마음에 일종의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집단은 대통령의 과거나 이미지가 아니라 집권 후 행한 활동과 정책을 평가기준으로 삼고 있었다. 이 점에서 긍정평가층과 확실히 구분된다. 긍정평가층이 본 대통령의 가장 큰 장점은 '강한 리더십'이었다. 반면 유보층이 꼽은 제1장점은 '전두환 대통령 벌금 회수 등 과거청산'이었다.

또 유보층에게 대통령의 가장 큰 단점은 '대선공약 후퇴'와 '인사문제'가 꼽혔는데, 이건 부정평가층이 '소통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본 것과도 차별성을 갖는다.

한마디로 집권 후 무엇을 했는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들은 또 선거 때 약속을 잊지 않고 있었다. 정부 국정운영 정책우선순위에 대해, 긍정평가층과 마찬가지로 경제성장을 제1순위로 꼽았지만, 부정평가층과 유사한 수준으로 복지확대나 경제민주화가 중요하다고 답하고 있었다.

반면 대통령의 현안대응에 대해서는 아직 지켜보는 입장이었다. 국가정보원 선거개입에 대한 태도나 야당에 대한 태도에 대해 다수의 유보층들은 '잘 모르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것은 국정운영 평가를 유보했던 이유로, '아직 평가할 때가 이르기 때문에 혹은 잘한 일도 있고 못한 일도 있기 때문'이라는 응답을 내놓았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평가유보층이 현재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대선공약파기가 가장 큰 잘못이고 선거 때 약속을 잊지 않고 있지만 아직은 기다려줄 수 있다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지금이라도 선거 때 약속을 되살리고 이미지가 아니라 정책으로 승부한다면 이런 메시지는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내의 시간은 그리 길 것 같지 않다. 정책과 성과가 중요한 이들에게 정부의 현안정책은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기초연금안에 대해 유보층의 58%는 반대 입장이었고, 유보층의 75%는 전월세대책이 전월세 안정화에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평가유보층 2명 가운데 1명은 집이 없다고 응답했는데 이들 중 압도적 다수가 전월세대책의 효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또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보는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보다 정책적으로 보수화되었다고 평가했다. 진보적으로 변했다는 응답자보다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응답자가 2배를 넘는다. 대선 당시 정책의 진보적 선회로 지지를 받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결코 좋은 징후가 아니다.

여론의 흐름을 읽을 때 단순한 숫자나 비율이 아니라 균형집단의 시선과 방향이 중요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본 조사에서 확인된 평가유보층 28.7%는 그저 긍정평가층과 부정평가층 사이 어디쯤에 엉거주춤 서 있는 집단이 아니다. 분명한 자신의 시선을 가지고 현실을 냉정히 주시하고 있는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다.

부디 이 균형추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쏠리지 않도록 대통령과 집권당이 유권자들의 간절한 희망과 냉정한 인내를 읽어주길 바란다.

허신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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