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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이옥경 칼럼]

윤창중 사건이 보여준 우리 사회의 단면들

등록 : 2013-05-20 10:52:55

윤창중 사건은 보통보다 정도가 훨씬 심한 윤씨 개인의 성정이 더해져 증폭된 면이 있지만 우리 사회의 몇 단면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

모질고 독한 언사로 상대를 까면 자기네 동네에서 나름 스타로 뜨는 것, 그래서 우쭐해져서 정신이 붕뜨는 것, 그런 자를 권력자가 이뻐한다는 것(모두의 우려를 무시하고 윤창중 임명을 강행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 홍보라인을 어떻게 개편할지 지켜 볼 일이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소(小)권력자가 하급자를 상대로 개차반 행태를 벌이는 것, 일이 커지자 완전 '오리발'을 내밀며 적반하장격으로 피해여성을 오히려 깍아내리기에 급급한 것(어제까지 '인턴'이라 부르다가 갑자기 '가이드'라고 바꿔 부르는 치밀하고 간교한 계산!),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사뭇 비장함을 풍기는 애국자행세 등.

청와대의 무능과 무책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거기다 언론의 선정성 경쟁은 윤씨 부인의 울음까지 방송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윤씨나 다른 이슈가 될 만한 인물의 출입을 취재하려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죄 없는 부인의 출입을 구태여 방송에 내보내야할 이유는 없다.(윤창중 사건에서 가장 수혜자는 종편방송들이다. 공중파들이 눈치보기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편성의 제약 때문에 시간 할애를 못하는 데 비해 종편은 몇날 며칠 거의 종일 내내 이 사건으로 도배했다).

시청률이 오를 수밖에 없다. 대선기간에 윤씨를 출연시켜 영웅(?)으로 만들었던 종편이 신나게 윤씨를 까면서 시청자를 붙잡아두는 아이러니. 신생 CNN이 하루 종일 이라크전쟁 생중계를 하여 일약 지상파들과 어깨를 겨누는 방송으로 올라선 전례를 따르려는 전략인지….

거기다 윤씨를 옹호하는 세력까지 등장한다. '윤씨가 종북세력이 판 함정에 빠진것 같다'라느니 피해인턴의 부모가 특정지역 출신이라느니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음모론이 횡행한다.

윤창중씨 옹호하는 세력까지 등장
 

전직 유명여성앵커는 '사람을 죽이기라도 했나, 왜들 이렇게 난리냐'고 역정을 냈다가 나중에 슬쩍 뒤로 물러나기도 했다.

우리 편 진영의 위기를 구출해야겠다는 일념 때문에 사실이 안 보이거나 외면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큰 문제점인데 이번에도 그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윤씨가 귀국 직후 청와대 조사에서 했다는 낯 뜨거운 진술들이 청와대에서 흘러나온 이후에도 여전히 '나라 체면 생각해서 참지 그걸 고발까지 하냐'라고 피해여성을 비난하는 댓글들이 달리는 것도 병든 사회의 한 단면이라 할 수밖에 없다.

사건 후 주위 여자들과 얘기를 나누는 중에 모두들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었다. 사건이 미국에서 터졌고 피해 인턴도, 경찰에 신고한 한국문화원 여직원도 다 미국 국적이어서 다행이라는 얘기였다.

만일 피해 여성이 한국 국적이고 한국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 여성들이 과연 경찰에 신고할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막강한 청와대 대변인을 상대로? 경찰이 과연 제대로 조사를 할 것이며 권력이 그것을 무마하고 덮으려 시도하지 않았을까?

답은 모두 갸우뚱, 부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언제나 그렇듯 마초남성들이 나서서 피해여성을 두들겨 패서 만신창이로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이리저리 찍혀서 정상적인 취직은 물 건너 갈 것이고 장차 결혼에도 영향을 줄 거라는 거였다. 당사자가 설혹 용기를 내더라도 부모들이 '참자'고 그게 장래를 위하는 길이라고 피눈물을 삼키며 딸을 주저 앉힐 거라는 것이다.

윤씨는 기자회견에서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운운하여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닌 셈이라는 얘기였다.

피해자인데 오히려 피하고 숨어

며칠 전 김영옥 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의 인터뷰에서 읽은 내용이다.

"종사자 규모가 30인 미만의 서비스업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2012년에 실시한 조사에서, 여성근로자의 15.8%가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해자는 주로 상사나 사업주(55.6%)이지만 거래처 직원 또는 고객이 차지하는 비율도 30%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성희롱의 순간에 못들은 척 그냥 지나치거나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못하는 등 '소극적 대응'이 62.2%나 됐다. 피해자인데도 오히려 피하고 숨는다. 실제로 성희롱 피해 여성의 상당수가 결국 직장을 그만 둔다."

요즘은 여자들이 사소한(?) 성희롱도 참지 않는다고 불만을 말하는 남자들이 꽤 있다. 윤창중 사건의 토양이 되는 바로 이런 의식이 여전히 만연한 것도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옥경 내일신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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