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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이옥경 칼럼]

국정원, '댓글 불신' 확인사살

등록 : 2013-10-28 11:20:09

10여년 전이라고 봐야 하나. 사람들이 점점 종이보다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고 본격적으로 각종 커뮤니티나 개인 블로그를 통해 스스로 뉴스나 담론의 생산자가 되고 거기에 독자들이 끼어들어 댓글로 의견을 달기 시작했을 때 나는 언론의 신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했다.

종이 매체는 편집자가 채택해 주어야만 실린다. 편집자로서는 검증된 전문가를 택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무명의 신예가 선택될 여지가 적다.

또 대단한 전문가라도 복잡한 사안을 제한된 지면 안에서 생략을 거듭하면서 독자에게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알아들을 소양이 있는 사람들끼리만 알아보는 그들만의 장을 펼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인터넷세상에서는 이슈가 터질 때 마다 재야의 각 분야 고수들이 전문적 지식을 펼치며 상세하게 정리를 해 주었다. 종이신문의 한정된 지면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복잡한 정황들이 매수 제한없는 인터넷에서는 충분히 설명되었다. 편집자의 청탁없이 스스로 등장한 그 나름의 논객들이 마치 무협지의 고수처럼 갑론을박하는 것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거기다 또 댓글기능은 어땠는가. 그 전에는 보통사람들은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읽기만 해야 했다. 공감도 반론도 제대로 표출할 길은 없었고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혼자인지 여럿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인터넷시대에 보통사람들은 설익은 주장들을 '무식한 소리하고 있네'를 겁내지 않고 뿜어냈다.

훌륭한 소통의 장이었는데…

그동안 오피니언 리더들이 독점해오던 종이 매체의 고아한 세계에 도저히 들어가지 못하던 무명인들이 인터넷이라는 날개를 달고 등장한 것이다. 한 줄만 써도 누가 뭐라 않고 수십 줄을 써도 상관없다. 찬반 리플은 나와 공유하는 자와 아닌 자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익명성의 뒤에 숨은 자들의 때로 거친 언사가 거슬리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이 기자, 전문가,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혹은 그들 보통사람들끼리 서로 공감하거나 비판하며 주장과 감상을 내놓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훌륭한 소통의 장이었다. 글쓴이들도 자기 글에 대한 반응을 보며 여론의 추이를 가늠하고 자기의견에 대한 보통인의 관점을 성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종이로는 이런 살아 움직이는 매체를 도저히 만들 수 없다는 점에서 그것은 혁명적이라고 볼만했다.

그런데 1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어쨌거나 긍정적 기능이 많던 '댓글'이 '소통의 장'으로서의 자리를 거의 잃었다. 물론 눈살 찌푸러지는 험한 욕설과 억지주장과 상대에 대한 무조건적인 폄하가 그때도 범람하기는 했다. 그래도 당시 댓글의 다수는 비교적 자기 나름의 논거를 갖추려 노력하는 모양새는 있었다고 기억한다. 댓글을 읽다보면 '아 내가 잘못 생각했었나' '이런 면도 있겠구나'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주기도 했다.

이제는 진영논리에 매몰된 댓글들이 장을 점령했다. 사실왜곡, 허위조작도 서슴치 않는다. 논거도 없이 무턱 댄 비난과 조롱, 멸시에 가득찬 증오의 언사가 판을 친다. 교묘하게 정체를 감추고 비교적 공정한 듯한 외피를 쓴 댓글들도 그 빈약한 논거와 악의 때문에 결국 정체를 짐작케 한다.

정치 사회분야만이 아니다. 연예기사에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팬들끼리 상대방 기사에 악플로 도배하다시피 한다. 무조건 아무데나 악플을 달고 보는 상습자들까지 합세한다.

국가기관의 여론조작 도구로 전락

더 이상 댓글들을 읽고 싶지도, 읽을 이유도 없다고 점점 느껴오던 차였다.

그런데 국정원, 군 사이버 사령부등 국가기관이 지난 대선에서 인터넷 트위터 등에서 벌인 댓글공작이 부분이나마 드러났다. 정말로 댓글은 진정한 여론의 반영이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여론조작의 도구로 전락했다. 그들이 작성하거나 리트윗한 내용은 댓글의 해악이라고 지목받던 것들을 증폭하고 있다. 선거개입은 곧 헌법부정인데 이를 그냥 넘긴다면 지난 세월의 그 간고했던 민주화투쟁은 어찌된다 말인가.

분노를 넘어 슬프기까지 하다. 국정원은 안 그래도 죽어가던 '소통의 장'으로서의 댓글을 확인사살하여 '불신의 장'으로 확실히 각인시켰다.

이옥경 내일신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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