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수신료 4000원 안을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제출했다. 방통위를 거쳐 국회의 승인을 얻으면 인상이 확정된다. 2007년에는 당시 한나라당이 KBS가 편파적이라며 반대해서, 2010년에는 민주당이 같은 이유로 반대하는 중에 터진 KBS기자의 야당 도청건으로 인상안은 좌절됐다. 이번 역시 그 익숙한 장면들은 그대로 재연될 것이다.

이 되돌이표를 끊기 위해 '정치적 공정성'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절실하다. 그 최소한의 장치가 이사회를 여야동수로 하고 사장은 2/3의 지지를 얻도록 하는 '특별다수제' 안이었다. 새누리당이 추천한 특위 자문교수들도 다 찬성한 이 안을 여당은 다수의 힘으로 폐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송사의 공정한 지배구조를 공약했기에 이번에 그렇게 할지 모른다고 기대했던 어리석음이여! 다음에 혹시라도 야당이 집권한다면 제발 과거 집권당 이었을 때의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고 순간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민주적 기틀을 세우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중에 KBS는 수신료가 인상되면 할 '10대 대국민약속'을 발표했다. 정리하면 이렇다.

정치적 공정성 담보할 제도 마련을

1. 사회적약자 배려 확대 2.유아·어린이·청소년 강화, 청년실업, 양극화, 고령화문제 해소, 통일 대비 프로젝트 3. 재난재해방송 시스템 강화 4. 지역방송문화 발전 서비스 확대 5.한류확산역할 강화 6.세계수준의 콘텐츠제작 7.대한민국 방송문화 중심역할 8.디지털방송 서비스와 방송기술발전 선도 9.무료다채널방송 제공 10.수신료면제가구확대, EBS지원 늘려 사교육경감

KBS는 이를 위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총 1조 9133억원 가량의 예산이 필요하며 수신료를 인상하지 않으면 이 기간 동안 그만큼의 적자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함께 제출한 정책 건의서는 PC나 휴대폰 등 'TV수신기기'에도 수신료를 받고 물가연동제를 주장했다. 물의가 일자 "중장기적 개선안"이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광고줄이기'를 공약한 만큼 시청자주머니를 짜야하니 결국은 추진할 것이다.

그런데 10대 약속의 이행안이라 할 '공적책무확대안'을 보니 저런 사업들을 위해 수신료인상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피디저널에 따르면 4000억여원의 예산이 책정된 지상파 다채널방송인 '코리아뷰'의 경우 방통위가 지상파 다채널방송을 승인할지 불투명하고 YTN과 뉴스Y, 거기에 종편들도 있는데 또 보도채널을 만들어야하는가 의문이 든다.

또 24시간 어린이·청소년 전문채널 역시 KBS 키즈, EBS, 민간 어린이채널과 사업이 중복된다 ('뽀뽀뽀'마저 경쟁력을 잃고 폐지되는 형편이다)

고령화문제 해소사업은 진부한 일회성이다. '베이비부머 엑스포'100억원, 세대·계층간 소통프로그램 기획에 5년간 150억원. 또 한류 미개척지 K-팝 공연 및 한류대상 시상식(5년간 312억원), △'K-팝 월드페스티벌' (5년간 100억원), △K-푸드 홍보(5년간 25억원)등.

불요불급, 보여주기식 사업 많아

대부분이 불요불급이거나 보여주기식이거나 이미 민간에서 하고 있거나 더 잘 할 사업이다. 사교육 경감을 위해 EBS를 지원한다는 것도 수능교재 팔아 부자가 된 요즘 EBS에는 별로 안 맞는 이야기다. 좋은 공영방송이 되는 데 꼭 돈이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월 2500원으로 32년 동결' '유럽의 1/6~1/10배, 아프리카 나미비아보다 조금 높다'는 주장이 수신료 인상론의 단골메뉴이다. '그래 좀 심하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한편 의구심이 든다.

유럽은 수신료를 전기료에 부쳐 강제 징수하지 않아 징수율이 훨씬 낮다. 게다가 위반자를 찾아내고 벌주고 체납요금 받는 데 엄청난 경비를 쓴다. 일본 NHK만 해도 징수요원이 3000명이나 된다. 영국은 전파탐지차량까지 운영한다.

정치적 공정성 보장은 물론이고 자세히 보면 참으로 따져봐야 할 것이 많은 인상안이다.

이옥경 내일신문 이사

이옥경 내일신문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