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지에도 둥지내몰림

'투어리스티피케이션' 연구

"골목 안에 있던 세탁소도 없어져버렸고 가까운 철물점도 없어졌어요. 마트에 가서 옷을 맡긴다든지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가는 상황이 생겨요." "마을이 관광지화 돼서 주민들이 편히 쉴만한 공간이 없어요. 아이들이 카페에서 공부하는 실정이죠."

정부와 지자체는 외국 관광객을 확대하기 위해 지역마다 관광 명소를 조성하고 단체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관광객이 늘어나는 만큼 주민 불편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역에서는 동네가 관광지화 되면서 마을에 살던 주민들이 내몰려 떠나는 이른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 현상이 심각한 지경이다.

김천호 서울시립대 도시과학대학원 문화예술관광학 석사과정과 이은지 경희대 관광대학원 석사는 최근 서울연구원 지원으로 '투어리스티피케이션 현상에 의한 지역주민 갈등관리 연구' 결과를 내놨다. 연구진은 관광객 수를 늘리기 위한 정책에 집중, 일부 지역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관광객을 수용하지 못할 정도로 한계에 부닥쳤다고 지적한다. 세종마을 혹은 서촌으로 불리는 서울 종로구 누상동 옥인동 청운동 등 경복궁 서측에 3년 이상 거주하는 주민과 종로구 공무원을 집중 면담해 얻은 결과다.

실제 2016년 1월부터 10월까지 한국을 찾은 외래 관광객은 1458만명으로 한해 전과 비교해 10.3%가 늘었다. 서울시만 해도 2018년에는 2000만명에 달하는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관광객 유입에 대해 부정적이다. 편의시설과 편의공간 부족, 마을로서 기능 상실, 마을의 상업화 등 사회문화적 갈등요인이 하나. 간접흡연이나 쓰레기 무단투기, 마을활동 제한, 사생활 침해 등 환경적 갈등요인도 크다. 동네를 걸어가다 자신도 모르게 사진에 찍힌다거나 단체관광객이 조경시설을 망가뜨려 표지판을 붙인 공동주택도 있다.

건물주와 세입자간 갈등이 주거권 침해로까지 이어진다. 사직동에 사는 한 주민은 "3~5년 새 많은 이웃이 쫓겨났다"며 "금전적인 이익을 챙기려는 집주인 때문에 살던 집이 술집으로 바뀌었다"고 토로했다.

연구진은 "주거지가 거대한 자본의 힘에 이끌려 관광객을 위한 상업공간으로 변모, 마을의 기능이 점점 상실된다"며 "낙후된 지역에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월세나 임대료가 올라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확대된다"고 우려했다.

경복궁 서측지역뿐 아니다. 관광객들이 몰리는 북촌 한옥마을이나 이화동 벽화마을, 용산구 이태원 경리단길, 마포구 연남동과 망원동 등 국내는 물론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해외 관광도시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종로구만 해도 경복궁 서측에 에티켓 표지판을 붙이고 북촌 한옥마을 관광객을 위한 '정숙관광 동영상'을 배포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관광객 행동관리부터 정주형 관광지 금연구역 지정, 관광객 전용식당 지정기준 마련 등 지역주민과 관광객 상생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는 게 연구진 판단이다.

연구진은 "2000만 관광시대란 목표 달성을 위해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주민 관광객 모두 행복한 서울관광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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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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