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정부여당 평가와 보수야당 심판 동시에"

'북미회담' 최대이슈 … 투표율·공천잡음 등 변수

6.13 지방선거가 시작됐다. 전국 17곳의 광역단체장을 비롯해 교육감, 기초단체장, 지방의원 등 4028(국회의원 12명 포함)명의 일꾼을 새로 뽑는다. 이번 선거에는 9361명이 후보로 등록했다. 이들은 31일부터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들어간다. 내일신문은 이번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특징과 전망, 광역단체장 후보들의 정책·공약, 권역별 기초단체장 판세를 짚어본다.

'6.13 지방선거'에서 역대 지방선거를 관통했던 공식이 깨지고 있다. 촛불시민혁명 이후 달라진 민심이 선거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정부여당 중간평가' '남북관계(북풍 등 안보)' 등 과거 지방선거의 성격을 규정했던 프레임이 만들어지지 않거나 정반대로 작동하면서 여당의 압승이 예상되고 있다. 게다가 최대 이슈로 떠오른 북미정상회담은 '블랙홀'처럼 지역의 이슈·인물·정책을 모두 빨아들여 '3무 선거'란 말도 나온다. 하지만 아직 표심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의 향배와 투표율, '공천=당선'이란 오만함에서 비롯된 '공천 잡음', 후보 단일화 등은 변수가 될 수 있다.

투표빵과 함께 '빵' 터지는 투표율 │ 경남도선관위가 27일 경남 창원시 용지공원에서 6·13 지방선거를 맞아 선보이는 투표빵 시식회를 하고 있다. 사진 경남도선관위 제공


정권심판 아닌 여야 중간평가 = 역대 지방선거는 정권 중간평가 성격을 띠었다. 대선이 '전망적 투표'라면 총선과 지방선거는 '회고적 투표', 즉 현 정부에 대한 평가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정권 '심판론'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정권이 출범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았고 두 전직 대통령은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은 70%를, 민주당 지지율은 50%를 상회하고 있는 반면 두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20%에 못 미친다. 이번 선거는 현 정권이 아니라 오히려 야당 심판이 될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동안 유권자들은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 여야 세력 간 균형을 잡아주는 선택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엔 이런 선거공식도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2016년 총선에서 제1당이 된 뒤 지난해 대선도 승리했다. 만약 이번 지방선거까지 압승하면 민주당은 첫 '3연속 전국선거 승리'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한국당이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지방선거 슬로건으로 내건 것도 여당의 싹쓸이를 막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촛불시민혁명 이후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와 동시에 야당에 대한 평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일반적으로 중간평가는 집권당의 공과만 따졌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촛불시민들의 요구에 대해 현 정부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대응했는지, 야당이 자신들의 잘못을 얼마나 반성하고 변했는지 평가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시영 윈지코리아컨설팅 부대표는 "지금의 민심을 보면 한두 가지 문제로 표심을 바꾸기엔 어려운 상황"이라며 "야당에 대한 실망이 굉장히 크고 대통령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가 굉장히 두텁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북풍' 여당에 훈풍 = 지방선거 최대이슈인 남북·북미회담을 '북풍'으로 본다면, 이번 '북풍'은 기존 북풍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불고 있다.

북풍은 보수정당의 단골 이슈였다. 보수정당은 이를 이용해 보수세력을 결속하고 표를 확장해왔다. 역대 선거에서 '북풍'은 남북 긴장관계를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조성됐고, 북풍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세력은 역풍을 맞기도 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이명박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은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 긴장국면을 조성, 선거에 이용하려다 역풍을 맞았다. 과거 진보정권이 추진한 남북정상회담도 여당에 선물을 안겨주기보다 선거를 앞두고 대형이슈를 활용한다는 인상을 주면서 보수층이 결집되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지금의 '북풍'은 전혀 다른 양상이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지난달 '이코노미 인사이트' 기고글에서 "과거 진보정권의 자주적인 남북관계 개선이 한미동맹을 약화시킨다는 논리가 보수층을 자극해 역풍을 초래했으나 이번엔 미국도 북한과 관계개선에 나서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미동맹을 약화시킨다는 논리가 먹혀들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도 "기존 북풍이 남북 긴장상태에 기대 안보심리를 자극, 보수결집을 유도했다면 신북풍은 긴장이 아닌 평화, 대결이 아닌 화해를 향해 불고 있다"면서 "여당에 거대한 훈풍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리서치가 5월 8~9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에서 가장 잘 수행한 대선공약으로 '남북관계 및 외교정책'을 꼽은 응답이 64.5%에 달했다.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 정착 모드가 유권자의 표심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보수의 아성, TK도 흔들 = 이처럼 촛불시민혁명 이후 달라진 민심과 '북풍' 등에 힘입어 여당이 선거판을 압도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보수세가 강한 대구·경북 등 2~3곳을 제외한 전국 주요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의 싹쓸이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최근엔 보수의 아성인 대구·경북마저 흔들리고 있다. '대구CBS'와 '영남일보'가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20~21일 대구시민 8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구시장 후보 여론조사 결과, 권영진 한국당 후보(41.8%)와 임대윤 민주당 후보(33.9%) 지지율 격차가 7.9%포인트에 불과했다. 정당 지지율도 민주당이 34.1%로 오차범위 안에서 한국당(31.7%)과 경합하고 있다.

드루킹 논란으로 여당의 고전이 예상됐던 경남지사 선거도 MBC경남·리얼미터가 지난 1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김경수 민주당 후보 54.4%, 김태호 한국당 후보 34.2%로 20% 가량 차이가 났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번 선거는 신북풍이 전국을 관통하고 있고 그 흐름을 꺾을 변수가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여당이 광역에서 기초까지 완승을 거둘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북미회담 성과·투표율·후보단일화 등 변수 많아 = 하지만 여당이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미 정상회담 성과와 투표율, 야권 후보단일화 등이 막판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여야는 북미 정상회담 성사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과의 정상회담 취소를 선언했다가 하루 만에 입장을 선회했고, 26일엔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전격적으로 이뤄지는 등 북미 정상회담 성사여부를 확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도 북미 정상회담 성사여부가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감안할 때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란 분석과 여권에 악재가 될 것이란 전망이 엇갈린다.

'투표율'도 핵심 변수다. 여론조사업계에선 여당지지 성향 젊은층 유권자들이 승리를 낙관해 투표에 불참할 수 있고, 보수 지지층은 실망감에 투표장을 찾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장노년층 투표자 비율이 높아져 보수 후보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대로 투표율이 높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중앙선관위가 지난 24일 발표한 지방선거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케이스탯리서치, 16~17일)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자가 70.9%에 달했다. 이는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 55.8%보다 15.1% 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선관위 관계자는 "2014년 실제 투표율은 56.8%로 당시 여론조사 결과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며 "이번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면 투표율이 큰 폭으로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도 관심사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김문수 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를 비롯해 대전시장에 출마한 박성효 한국당 후보와 남충희 바른미래당 후보, 충북지사 선거에 도전한 박경국 한국당 후보와 신용한 바른미래당 후보 등이 후보 단일화를 검토하고 있다.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김형기 바른미래당 후보는 '반 자유한국당 연합'을 통해 대구를 바꾸기 위해 정책연합은 물론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까지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여야 각 당의 공천 잡음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특히 여야 텃밭인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에선 공천 후유증이 심각하다. 전남 무안·신안 등지에서 무소속 후보들의 선전이 예상되고, 대구·경북에선 한국당 단체장 공천에서 배제된 후보들이 무소속 연대를 꾸려 한국당 독점 구도를 위협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선거의 경우, 투표율 하락과 무소속 출마 등에 따라 당락이 뒤바뀔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대통령 내세우기'에 치중하며 자만할 경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민생 측면에서 여러 불만이 잠재돼 있지만 촛불 과제 해결을 위해 문재인정부에 힘을 싣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겉으로 드러난 승리에 도취하지 말고 대형이슈에 가려진 민심의 현주소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늦춰선 안된다"고 말했다.(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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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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