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명이 사업장 245만 곳 '감독'하는 현실 바꿔야 … 변화 실효성 높일 법체계 정비 시급

'산재 공화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산업재해 사고를 바라보는 사회적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변화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법체계 정비도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동계에 따르면 사망 사고 등 중대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특별근로감독이나 관련업계 전수조사 카드를 내밀었다. 하지만 사고는 줄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존 안전관리 방식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실제로 사망 노동자를 줄이겠다고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 중대재해대책을 발표했지만 올해 들어서도 사고는 이어졌다. 지난 1월 포항제철소에서 일하던 외주업체 노동자 4명이 냉각기 교체작업 중 질소가스에 질식해 숨졌다. 3월에는 포스코건설에서 추락사고로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삼성전자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도 추락사고가 발생해 하청 노동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업장 72만곳 증가, 감독관은 48명 늘어 = 그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기반으로 '나쁜 사고'만이라도 막자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면 무차별적으로 인력을 투입하고 단속하는 방식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고용부와 안전보건공단 등에 따르면 나쁜 사고란 '회복 불가능한 사고'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를 의미한다.

잇단 사고와 전문가들의 지적에 문재인정부도 정책을 수정했다. 박두용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사회에선 우선적으로 중대사고와 사망사고부터 막는 게 중요하다"면서 "정부도 산재 예방 목표를 '사망사고'에 초점을 맞춘 것은 '우리 사회가 정말 안전을 요구하고 있다'는 국민들이 보낸 신호를 정책에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정책 변화에는 인적·물적 한계라는 현실도 반영됐다. 제한된 감독인력 만으로 기본 방식을 통한 안전관리 체계를 개선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실제로 지난 5년간 사업장 수는 72만여곳이나 증가한데 반해 감독관은 360명에서 408명으로 48명 증가하는데 그쳤다. 2016년 근로감독을 실시한 사업장은 2만6920곳으로 전체 감독 대상 사업장 245만 여곳의 1.1%에 불과했다.


◆사고사망만인율 선진국 수준으로 = 정책변화에 따라 안전보건공단은 △사고가 많이 나는 곳 △사업대상이 명확한 곳 △사업내용 효과성이 명확한 추락, 충돌, 질식을 3대 악성 사망사고로 정했다. 나쁜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산업재해 사망사고의 주요 원인을 분석해 핵심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권한을 가진 자와 책임이 있는 자가 산업안전보건의 책임을 지는 사회를 실현'하도록 공단의 모든 인프라를 집중해 가고 있다. 이를 통해 정부는 2022년까지 산업재해 사고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감축하기로 했다. 현재 0.52 수준인 사고사망만인율도 0.27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건설업 등 고위험 분야에 산재사고가 집중돼 있다. 2017년 발생한 국내 산업재해 사망자의 52%(506명)가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사고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추락'사고가 건설업 사망재해의 절반 이상(54%, 276명)을 차지했다. 건설현장 추락 사망재해를 조사한 결과 약 26%(73명)는 비계설치 대상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비계는 건설현장에서 높은 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설치하는 임시 가설물을 말한다. 여기에 제조업(23.9%, 232명)을 합하면 사고사망자의 3/4 이상이 두 분야에서 발생했다.

또 국내 화학설비 중 8.9%가 30년 이상 된 노후설비로 안전관리를 소홀히 할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지진의 안전지대로 인식되던 한반도에 지진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진 다발지역 내 노후 화학설비 보유빈도가 타 지역보다 높은 만큼 대형 화학사고의 발생위험이 상존한다.

무거운 화물의 적재·하역·운반용으로 널리 사용되는 지게차에 의한 사고도 한해 평균 1144명의 부상자와 34명의 사고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사고는 주로 충돌(30.6%), 깔림(19.8%), 추락(9.5%) 순으로 나타난다.

이에 대해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장은 "산재사망 등 중대 산업재해가 건설업 등에서 집중 발생되고 있어 원청기업의 책임 강화 등 종합적인 예방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 소속으로 정부의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안전보건 정책을 총괄하고 안전보건을 책임지고 감독할 수 있는 정부 조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조업 또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재해위험이 높은 업종을 중심으로 근본적인 예방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소한 법률적 안전장치 만든다 = 정부는 새로운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을 지난 2월 입법예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은 △위험에 노출되는 일하는 모든 사람 보호 △위험의 외주화 방지를 위한 도급 제한 △위험으로부터 수익을 얻는 자의 산업재해 예방책임 확대 △작업중지 제도의 실효성 제고 △건설업 특례에 관한 '절'신설 △물질안전보건자료의 비공개정보 심사 강화 △법의 실효성 제고를 위한 처벌 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노동계는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를 줄이고 그동안 보호받지 못한 사각지대 노동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장치를 만든다는 점에서 전부개정법률안의 의미를 찾고 있다.

조기홍 소장은 "그동안 보호를 받지 못했던 특수형태노동자,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공유경제노동자, 플랫폼노동자, 자영업자 등 일하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도록 법의 목적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개정안은 긍정적"이라면서도 "법의 목적이 확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호대상을 한정하고 있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작업중지와 관련해서는 '급박한 위험'이라는 정의와 해석이 매우 모호해 실효성 있는 조항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특히 감정노동자의 정신건강에 대한 보호와 예방책임은 포함하지 않고 있어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발생하는 산업재해를 보면 하청노동자, 특히 소규모사업장의 산업재해가 증가하고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산재사고 사망자 수(2017년 기준)가 전체의 72%를 차지했다.

박두용 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도로교통법 상의 모든 법규를 경찰에서 단속한다면 운전자들은 혼란에 빠질 것이고 도로는 단속되는 차량들로 인해 마비가 될 것"이라면서 "이는 도로교통법이 단속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 아니라 도로의 원활하고 안전한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목적지향적 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처벌이 목적이 아닌, 위험의 생산자인 사업주 스스로가 노동자의 안전을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목적지향적인 기준"이라면서 "안전사고의 규제에 있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전부개정안은 한국경총과 재계가 '규제 강화'라고 반발하면서 규제개혁위원회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기업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업주 책임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것이 경영계의 주장이다.

[관련기사]
산재사망 땐 원청사업주 처벌 강화

[산업재해 사망사고 절반으로 줄이자 연재 기사]

한남진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장세풍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