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시정연설에서 언급 안해

신뢰·시간·동력 부재 … 개헌 주장도

갈 길 바쁜 '선거구제 개편' 논의에 큰 장애물이 더 많아지고 있다.

1일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구제 개편과 관련한 발언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의 정책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려있음을 보여줬다.

선거제도 개혁 문화제 참석한 야당 대표들 | 31일 저녁 국회 정문 앞에서 정치개혁 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문화제에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운데),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왼쪽), 정의당 이정미 대표(오른쪽)가 핼러윈 복장을 하고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문 대통령은 예산안 방향과 세부내용,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이어 다양한 국정과제 관련 법안을 열거하면서 국회의 지원을 호소했다. '국회의원 선거에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구제 개편이 문 대통령의 공약집에 들어있고 21대 총선에 적용하려면 올해 안에 통과시켜야 하는데도 한 마디도 담지 않았다.

이날 또하나 확인된 게 자유한국당의 진심이다. 개헌론자인 한국당 소속 이주영 부의장은 문 대통령과 만나기 전에 각 당대표들에게 "개헌도 같이해야지. 선거제도 하나만 되기 어려울 것이다. 다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태 한국당 대표는 "다당제 뿌리 내리려면 대통령 권력도 이렇게 안된다. 그거는 빼놓고 얘기하는 데 지금"이라며 '개헌과 동시 선거구제 개편안'에 손을 들어줬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불을 끄려 했다. 정 대표는 "선거제도 개혁하면 개헌도 따라오지"라고 했고 이 대표는 "선거제도가 급하다"고 했다. 이같은 한국당과 민주평화당·정의당의 견해차는 문 대통령과 비공개 면담때도 반복된 것으로 알려졌다.

◆거대 양당에 부담스러운 선거구 개편 = 문 대통령은 이날 2015년 중앙선관위에서 제시한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토대로 여야가 수정, 논의할 것을 주문했다. 국회가 합의하면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데서 한 발 더 나간 것으로 보인다.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바탕으로 두고 전국 6개 권역으로 나눠 비례대표를 뽑는 방식이다. 지역구의석이 200석, 비례대표의석 100석으로 300석인 현재 의석을 그대로 두자는 것이다. 지역구 53석이 줄어든다.

지역구 의석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당 의원들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따라서 국회 내에서는 지역구의석(254석)을 유지한 채 비례대표의석을 현재 47석에서 100석정도로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다만 의석수가 50석 정도 늘어난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동의받기 위해 임금총액을 고정시켜 놓는 방식도 검토중이다.

그러나 의석확보비율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민주당과 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다. 특히 한국당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적지 않다. '도농복합'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한국당내에서 나오는 이유다. '도시는 중선거구제, 농촌은 소선거구제'다. 이는 수도권 등에서 많은 자리를 확보하고 21대 총선에서 승리가 예상되는 민주당에 불리하고 제2당인 한국당도 수도권에서 많은 의석을 가질 수 있는 길을 확보한다는 계산이다.

◆잃어버린 신뢰를 확보할 시간이 없다 = 선거구제 개편의 당위성은 있으나 국민들에게 동의받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올 국감 과정에서도 국회의원들의 질 낮은 질의와 행태, 막말 등이 오가면서 '다양한 이해 반영' '국민들의 의사 전달' 등을 위해 선거구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멋쩍게 만들었다.

국회 핵심관계자는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니 의석을 추가로 더 확보하는 것을 요구하기가 어렵다"면서 국민설득의 한계를 토로했다.

국회의원들도 없애야 한다는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주장 역시 국민들로부터 환영받기 어려운 대목이다. 다양한 직군의 이해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도입한 비례대표제는 이익단체 대변, 정치적으로 줄서기, 지역구 확보 주력 등 긍정적인 요인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는 지적이다.

심상정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은 올해 안에 선거구제 개편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국민들의 지지동력이 강하지 않은 상황에서 '골든타임'안에 해소할 가능성은 점점 멀어지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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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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