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시행, 실명 확인 후 청원 가능

지난 10년간 연간 500건 청원 완료

독일 e-청원은 스코틀랜드 e-청원 플랫폼을 두 차례 실사한 이후 2005년 8월부터 가동됐다.

독일의 청원제도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청원위원회다. 청원위원회의 권한은 막강하다. 자료 제출 등의 요구는 법률이 비공개를 규정한 경우나 비밀에 부쳐야 할 긴급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거부될 수 있다.

청원위원회는 상임위 중 하나로 원내정당들의 의석비율에 따라 26명의 연방의회 의원으로 구성된다.

광고삭제 청원에 들어간 장면 | 아시아 여성이 백인 남성의 속옷 냄새를 맡고 있는 독일의 DIY 기업인 호른바흐의 광고가 논란이 되고 있다. 독일 하원의 청원 사이트에서는 광고를 삭제해야 한다는 청원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최근까지 3만 7000여 명이 서명했다. 호른바흐 광고 영상 캡처


◆ 청원위는 의회의 지진계 = e-청원 과정에서 청원위원회는 시작부터 종결, 이의제기까지 전 영역을 관할한다. 청원의 개시, 공개여부와 함께 청문회 대상 여부까지 결정한다. 과거 유사한 청원이 상정됐거나 제안이 명백하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청원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청원인이나 증인, 전문가를 초청해 청문할 수 있다.

청원위원회는 스스로를 '의회의 지진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법률들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는 지 가장 먼저 감지해 알아챌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매월 처리한 청원들에 관한 보고서를 연방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독일 e-청원 메인화면

독일 e-청원에서 관심을 끄는 또다른 부분은 '청원 포럼'이다. 단순히 청원에 참여만 하는 게 아니라 청원 안건에 관해 토론하고 이를 심의할 수 있는 기능이 포함돼 있다. 청원에 직접 글을 게시하고 의견을 추가로 작성할 수 있으며 이 내용은 모두 공개된다. '청원 포럼' 항목을 통해 동의자수 등 청원 진행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 누구나 청원 가능 = 1단계는 청원신청이다. e-청원 사이트 가입이 필수적이다. 독일의 전자주민증(nPA)을 이용하거나 본인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을 기입해 실명확인을 거쳐야 한다. 어린이 외국인 구금자 군인 지적장애인 시민단체 연합 정당 당원 등 '만인'이 입법에 관한 불만과 소망 등을 결정권자나 관청에 청원할 수 있다.

정해진 e-양식이나 서류로만 접수가 가능하다.

독일 e-청원 청원서 제출

2단계는 청원관련 사실 확인절차다. 청원이 제출되면 하원 청원위원회는 공개 청원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검토한다. 공개청원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는 △청원내용이 일반적인 이익에 관한 것이 아니거나 △공개토론에 적합하지 않는 경우 △개인적인 요청이나 불만의 내용 △청원위원회의 소관 사항이 아닌 청원 △내용이 사실적이거나 구체적이지 않은 청원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거나 △명백히 허위 사실 또는 모육적인 견해 표현이 포함된 경우 등이다.

3단계는 공개절차다. 청원인의 서류를 확인한 후 공개하는데 이때 청원자는 해당 청원에 대한 e-포럼을 개설해 토론을 진행하면서 많은 동의를 이끌기 위한 여론형성을 시작할 수 있다.

독일 e-청원 청원 포럼

4단계는 청원 서명 단계다. 청원은 게시한 날로부터 4주간 서명을 받고 토론장에서 토론하는 것도 가능하다. 토론장은 누구나 개설할 수 있다.

청원 동의자가 5만명을 넘은 청원은 '쿼럼'(quorum)이라 부른다. 청문회가 열리고 청원자는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 공개 자문이나 청원자에 대한 공청회는 의회 TV를 통해 생중계된다. 청원위원회의 3분의 2가 찬성하면 5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쿼럼이라도 청문회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 5만명에 미치지 못하는 동의를 얻었더라도 청원위원회에서 3분의 2이상이 동의하면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다.


5단계는 청원위원회가 연방 중앙행정기관 등에 해당 청원에 대한 의견을 요청하는 단계다. 청원위원회는 정부의 의견과 자체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대표 청원자에게 조사결과를 통지하고 청원자가 6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종결된다.

청원절차가 끝나면 '종결된 청원'란에 공개되고 결과를 청원 거절이나 의회 혹은 관련기관으로의 이관 등을 담은 PDF파일을 열람할 수 있게 한다.

6번째는 이의제기 단계다. 청원자가 이의를 제기하면 청원위원회가 2명의 청원위원을 지명해 예비심사인 '라포퇴르' 절차를 밟는다. 이들은 청원처리와 진행과정을 조사해 위원회에 보고한다.

◆매년 2만여건 청원 = 독일 e-청원 플랫폼에서는 전체 청원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매년 2만여건의 청원이 접수되는 것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청원이 진행되고 있거나 조사 중인 청원, 완료된 청원수는 공개된다. 전체 청원 중에서 청원의 대상이 되는 건수만 집계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이후 2019년 4월 22일까지 완료된 청원은 4992개였다. 연간 500건의 청원이 완료된 셈이다. 조사중인 청원은 1372개, 공개돼 동의자를 모집중인 청원은 59개였다.

모집중인 청원은 토론방이 개설돼 있다. 서명기간을 자동으로 공개해 5만명이라는 '쿼럼' 요건이 되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각화해놨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독일 연방하원의 e-청원은 단순한 청원제도의 온라인화가 아니라 시민참여의 공간을 확대하고 이를 의회민주주의에 구현하려는 개혁의 산물"이라며 "새로운 온라인을 활용한 플랫폼을 재구축해 이를 개선했다는 점에서 정보사회에서 정치과정의 혁신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의 참여는 e-청원 도입이후 증가했다"면서 "청원위원회의 권한이 크고 상당한 재량권을 가진 청원위원회의 행정부서가 e-청원제도의 문지기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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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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