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부정한 세력' 인식 … 형식적 대화채널 한계

개혁제도화 번번히 막혀 "골든타임 놓친다" 우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습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합니다. 대통령이 나서서 직접 대화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국민과 소통에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다. 소통과 공감을 문재인정부 청와대의 상징으로 세우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각이나 참모와의 소통없이 단절된 국정운영의 폐해를 겪은 이전 정부의 기저효과가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이런 문 대통령이 유독 야당과의 소통측면에선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누구보다 소통에 능한 대통령이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어디서 막힌 것일까.

'빈손'으로 임시국회 종료 |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이후 여야 4당과 자유한국당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4월 임시국회가 본회의 한번 못열고 7일 종료됐다. 이날 국회 본회의장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반대만 하는 야당 탓? =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사를 통해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여기고 수시로 만나겠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사회원로 초청 간담회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소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식 전에 야당 당사들을 전부 다 방문을 했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 야당 대표들, 원내 대표들 자주 만났다고 생각하고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도 만들었다"면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가 정치상황에 따라 표류하지 않도록 아예 분기별로 개최하는 것까지 다 합의 했는데 3월에 열렸어야 되는데 지금 벌써 두 달째 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안타까움을 표한 시기에 내각 인선을 위한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여야 갈등이 패스트트랙 지정으로 번지면서 극한대치 상황으로 치달았다. 추경예산안은 물론 시급을 다투는 민생법안이 줄줄이 표류하고 있다. 가까스로 패스트트랙에 태운 선거제도·공수처·검경수사권 조정 등 관심법안도 확정까지는 먼 길이다.

◆개혁의지 높으나 체감성과 의문 = 문 대통령은 여야정 협의체 지연에 앞서 여소야대 상황의 정치적 대립이 많지만 외교와 경제, 민생현안 등에 초당적 협력이 이뤄지는 칠레의 사례를 들며 '부럽다'고 말했다. 정치권 특히 야당의 협조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취임 후 8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개혁제도화에선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와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7일 개최한 '문재인정부 2주년 정책 컨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 나왔다. 김남준 정책기획위원은 "권력기관 개혁은 정치권력이 우위에 있는 정권 초기에 시행해야 하는 시급성이 있다. 지금 약간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말이다. 박선아 한양대 교수는 "반부패 개혁 과제에 대한 성적표는 미흡하다. 더욱이 현 국회 상황을 고려할 때 결정적 어려움에 직면해있다"고 진단했다. 강현철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촛불정부로서의 개혁의지는 확인되지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제도적으로 완성할 국회의 입법화가 지연되고 늦어지는 현상을 지목한 것이다.

◆탄핵 당한 세력, 반성 없는 야당? = 관건은 어떻게 풀어가느냐다. 여소야대 국회 상황이 '야당에게 유리한 구조'라는 점은 익히 알고 출발한 정권이다. 철 지난 색깔공세에 심취한 야당 지도부의 투쟁일변도 운영도 부담이다. 여권 내부의 대야 시각도 겹쳐 있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은 야권과 협치와 협력을 '적폐청산'과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진상을 규명하고 청산이 이루어진 다음, 그 성찰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나가자는 데 대해서 공감이 있다면 그 구체적인 방안들에 대해 얼마든지 협치하고 타협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한국당을 협치의 파트너로 두지 않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청와대 분위기는 한국당은 촛불에 의해 부정당한 세력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21대 총선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서 개혁 제도화를 완수하는 것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일각의 주장일 수 있으나 여당 원내 핵심관계자들도 비슷한 입장을 내놓고 있어 여권내부의 흐름 중 일부인 것을 분명하다.

◆국회, 입법권 가진 국민대표 = 그렇다고 집권세력이 '내년 총선까지는 불가피하다'며 야당과의 선을 긋는 것 또한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지난 2일 대통령과 간담회에 참석한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은 '대통령이 정국을 직접 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전 장관은 " 야당은 정권을 내주면 초반에 '선명야당'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 극한투쟁을 하지만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 '대안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면서 "과거 민주당도 같은 패턴을 보여 왔고, 이 점을 이해한다면, 대통령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인식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성과를 위해서라도' 야당에게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야당과의 협치를 위해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에게 행정권을 위임받는 국민 대표로, 입법권을 갖고 있는 국민대표를 설득한다는 자세가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여당 안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대치국면이 계속가고 국회가 멈춰서 있는게 야당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결국 국민은 여당과 정부에 책임을 묻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당의 책임을 묻는 것만으로 '빈손 성과'를 내밀 수 없다는 말이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문제를 다루듯 야권에게 공을 들이면 훨씬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권 한 핵심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관례를 깨고 예정에 없던 일정을 만들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의지와 노력이 그대로 드러났고 외신도 높게 평가했다"면서 "야당이 변하기만을 기다리기보다 먼저 제안하고 나서면 훨씬 많은 길이 열리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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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환 박준규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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