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숙 민법전문박사 법무법인 산우

B는 C와 결혼해 자녀 A를 두었으나 곧 아내인 C와 자녀들을 버리고 젊은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그 후 자녀 A를 양육하며 교육에 힘쓴 것은 아내인 C뿐이었는데, 자녀 A는 훌륭하게 자라 사회의 유능한 인재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B가 사망했다는 연락이 왔고 장례를 치른 후 B의 채권자들이 몰려와 A에게 B의 빚을 대신 갚으라고 독촉 하기 시작했다. B는 자녀 A의 생부이긴 하나 생전에 자기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 아버지였다. 자녀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재산상의 법률관계는 '상속'을 통해 일정 범위의 유족들에게 모두 승계된다. 이 때 상속의 목적이 되는 재산에는 피상속인의 권리뿐만 아니라 채무도 모두 포함된다. 경우에 따라, 피상속인의 채무가 재산보다 많다면 상속인들에게 재산상의 손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원치 않는 재산상의 부담을 떠안을 수는 없는 일.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제도를 두고 있다.

만약 피상속인의 재산상태를 파악하고 있는 상태여서 상속받을 재산보다 채무가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이거나 상속을 원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상속인은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가정법원에 상속포기신고를 해 상속권을 포기할 수 있다. 만약 상속인이 여럿인 경우라면 포기의 신고를 한 상속인의 상속분은 다른 상속인들에게 각각의 상속비율만큼 귀속된다. 상속포기의 효과는 상속이 개시된 때부터 효력이 있으며, 상속을 포기한 사람은 자신의 포기로 인해 새롭게 상속인이 된 사람이 상속재산을 관리할 수 있을 때까지 상속재산을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가족이라도 서로의 재산상태를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상속재산에 채무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러한 경우라면 한정승인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한정승인이란 자신의 상속분에 해당하는 상속재산을 한도로 피상속인의 채무와 유증을 변제할 것을 조건으로 하여 상속을 받는 것을 말한다. 한정승인은 상속인이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재산의 목록을 첨부해 법원에 한정승인을 신고하면 된다. 또 한정승인을 한 날로부터 일정기간동안 일반상속채권자와 유증을 받을자에 대해 공고하고, 그 기간 내에 신고한 채권자들에 대해 일반 채권자를 우선해 상속재산으로 채권자들의 각 채권비율에 따라 변제해야 한다.

상속세와 관련해서도 한정승인은 일단 상속을 받는 것이 되므로 상속세에 대한 부담이 발생할 수 있지만, 상속포기의 경우라면 상속세와 관련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사안의 경우 자녀 A는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하면 된다. 다만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신고는 신고만으로 효력이 바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법원의 심판이 있어야 하므로, 신고 후 심판 전에 상속재산을 쓰거나 감추는 등의 행위가 있는 경우라면 상속재산에 대해 단순승인한 것이 되어 B의 채무를 모두 상속받아 변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임경숙 변호사의 가족법 이야기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