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정치적 동지 … 고 이희호 여사의 삶

10일 별세한 이희호 여사는 평생을 여성의 권리신장과 민주주의 회복, 한반도 평화 구현에 헌신했다. 고인은 1세대 여성운동가로 가부장제에 억압받던 여성의 권익 실현에 앞장섰고, 정치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내로 50년 가까이 민주화 운동을 함께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자리를 지키며 남북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해 힘써왔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지원연설하는 이희호 여사 | 87년 11월 평민당 김대중 후보 서귀포 유세장에서 부인 이휘호 여사가 단상에서 지원연설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 여사는 1922년 의사였던 아버지 이용기씨와 어머니 이순이씨 사이의 6남2녀 중 넷째이자 장녀로 태어났다. 기독교 집안에서 유복하게 성장한 고인은 이화고등여학교와 이화여자전문대,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미국 램버스대와 스카렛대에서 유학했다. 1958년 귀국한 그는 대한 YWCA 총무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여성운동을 시작했다. 남녀 차별적인 법 조항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고, 여러 여성 단체가 모여 출범한 여성단체협의회 조직화에도 앞장섰다.

여성운동에 매진하던 이 여사는 1962년 만 40세 나이에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하면서 '정치인의 아내'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전처와 사별하고 박정희군사정권의 탄압을 받던 무일푼의 '정치 낭인'이었다. 집에는 어린 두 아들(홍일, 홍업)과 심장병을 앓는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가 있었다. 주위의 반대가 많았지만 김 전 대통령을 남편으로 맞아들였다. 이 여사는 훗날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가 그와 나를 동여맨 끈이 됐다"고 회고했다.

여성운동가인 이 여사는 정치인 김대중의 여성관을 바꾸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내가 페미니스트적인 관점과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조언 덕이었다"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결혼 후 서울 마포구 동교동으로 이사하면서 대문에 '이희호', '김대중' 문패를 나란히 내걸었던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김 전 대통령이 이 여사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뜻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결혼 후 이 여사의 삶은 정치적 역경을 거듭한 남편만큼이나 험난했다. 결혼한 지 열흘 만에 김 전 대통령이 '반혁명 혐의'로 중앙정보부의 끌려간 것은 시련의 시작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70년 대선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95만표 차이로 낙선하며 야권의 젊은 지도자도 부상했지만 그만큼 탄압도 심해졌다. 김 전 대통령은 1971년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 미국 망명, 납치사건, 가택연금과 투옥, 내란음모 사건과 수감, 미국 망명과 귀국 후 가택연금 등 군사정권 내내 감시와 탄압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이 여사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시련을 이겨냈다. 단순한 정치인의 아내를 넘어 민주화운동의 동반자로서 역할을 했다.

1998년 김 전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영부인으로서 아동과 여성을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결식아동을 위한 봉사단체인 '사랑의 친구들', 저소득층 여성을 돕는 '한국여성재단'을 만들었고 여성가족부의 모태가 되는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도 출범시켰다. 김대중정부에서 여성부가 신설되고 여성의 공직 진출이 활발해지자 '국민의정부 여성정책 뒤에는 이희호가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영부인 시절에도 시련은 있었다. 아들들의 비리 문제가 불거져 3남 홍걸씨와 차남 홍업씨가 연달아 구속되는 참담함을 맛봐야 했다. 또 김 전 대통령 퇴임 이후에는 대북송금 특검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과가 훼손당하자 기력을 잃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된 혈액 투석을 시작했고, 이 여사는 이런 남편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이 여사는 2009년 8월 남편인 김 전 대통령을 먼저 보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이 여사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을 맡아 남편의 유업인 남북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애썼다. 2011년 12월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조문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고, 2015년 7월에도 취약계층 의료 지원을 위해 방북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인에 대해 "우리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며 "하늘나라에서 우리의 평화를 위해 늘 응원해주시리라 믿는다"고 애도했다.

[관련기사]
이희호 여사, 영원한 동지 DJ 곁으로 유료기사 500원
정치권, 이희호 여사 별세 일제히 애도
이희호 여사 애도 북 조문단 오나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구본홍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