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숙 민법전문박사 법무법인 산우

A는 지인의 소개로 B를 만났고 곧 결혼해 첫째 자녀인 C를 낳았다.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며 행복한 날을 보내던 부부는 시어머니의 환갑을 기념해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계획했는데, 여행을 앞두고 갑자기 C가 많이 아파 A는 C와 함께 집에 남기로 하고 남편인 B와 시부모님들만 여행길에 올랐다.

그러나 불행히도 가족여행을 떠났던 길에서 사고가 발생해 남편 B와 시부모님이 모두 사망했다. A는 어린 C와 함께 남편과 시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르고 상속절차를 준비하던 중 자신이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때 아직 A의 뱃속에 있는 태아 D도 상속을 받을 수 있을까.

'상속'은 피상속인이 가지고 있던 재산상의 권리와 의무를 승계하는 절차로서 모든 권리의무를 받기 위해서는 상속인 또한 권리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자연인과 법인 모두에게 가능한 유증과는 달리, 상속은 자연인인 사람(人)만 받을 수 있고 법인은 상속을 받을 수 없다. 또한 상속인은 상속개시 때 이미 태어난 후가 대부분이라, 위 사안처럼 아직 태어나지 않아 그 지위가 불분명한 '태아'가 있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 민법상 '사람은 생존하는 동안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라고 정하고 있고, 판례 또한 태아가 모체로부터 전부 노출된 때를 출생의 기준으로 삼고 있어, 원칙적으로 민법상 권리능력은 인정될 수 없다. 그러나 일괄적으로 태아의 권리능력을 부정하는 경우 장래에 태어날 태아에게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우리 민법은 상속 등 일부에 대해 예외조항을 두고 태아를 보호한다.

민법에 따르면, 태아는 민법상 상속에 있어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태아는 상속에 있어 상속인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상속이 개시되기 전에 사망한 추정상속인에게 그 직계비속 등이 있는 경우 사망한 상속인을 대신하여 상속을 받게 하는 '대습상속권'이나, 유증이나 유류분에 관한 권리도 태아에게 모두 인정된다. 그 밖에도 '공무원연금법' 등 각종 연금법에 따른 '유족급여'에 있어 수급순위를 결정할 때에도 태아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보아 그 지위를 인정하며, '선원법'에 따른 '유족보상'이나 '범죄피해자 보호법'에 따른 '유족구조금'등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태아는 이미 태어난 것으로 보아 유족의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다만 태아에게 인정되는 이러한 권리들은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에야 비로소 취득 가능한데, 태아는 살아서 태어난 경우에 한해 가지고 있던 권리를 그 권리가 발생했던 시기로 소급해 그때부터 취득한 것으로 인정받게 된다. 또 태아가 상속인으로 인정받고 있어, 모(母)가 아이를 낙태하는 경우 민법상 '상속결격'사유 중 하나인 '상속 동순위자를 살해'한 것이 되어 모(母)가 상속인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위 사안의 경우 태아 D는 A의 시부모님의 상속재산에 대하여 B를 대신해 A와 C등과 함께 상속인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 따라서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 D는 상속재산에 대해 자신의 법정상속분만큼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 다만 D가 실제로 살아서 태어나는 경우에 한해 상속재산을 취득할 수 있으며, 태어나지 못하고 도중에 사망하는 경우 D가 상속받은 재산은 A와 C등에게 귀속된다.

[임경숙 변호사의 가족법 이야기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