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인권센터 “현재까지 파악된 건만 5건 … 전국적으로 더 많을 것”

"2015~2016년 면접부실 사례 전수조사했다" 법무부 주장 신뢰 떨어져

변협 “외부 인사 참여한 진상조사기구 설치해야” 요구에 법무부 거절

조달청의 법령을 무시한 입찰대행, 법무부의 난민심사 서류조작, 국토부의 주택공시가격 집단 정정사건 등이 잇달아 터지고 있다. 사안 하나하나가 심각하다. 국가기관의 존재 의미에 의문이 이는 사건이다. 노무현정부가 이명박정부로 바뀌게 된 데에는 '무능한 정권'이란 비판이 있었다. 문재인정부에서 다시금 '관료들에 놀아나는 무능한 정권'이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3회에 걸쳐 집중 취재했다. <편집자 주>

법무부 난민면접 조작사건 피해자 증언대회 | 6월 18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난민인권네트워크 주최로 열린 법무부 난민면접 조작사건 피해자 증언대회에 피해를 본 난민신청자들이 증언을 위해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이집트인 A씨는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시민혁명에 참여해 무바라크 정권 퇴진에 기여했다. 혁명 후 무슬림형제단 단원으로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군부쿠데타 이후 정권의 수배대상이 됐다. 수배 위협을 피해 2016년 7월 한국에 온 그는 난민 신청을 했지만 불인정 결정을 받았다.

납득하기 어려워 2017년 7월에 두번째 난민신청을 하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첫번째 면접조서에 자신이 하지도 않았던 말이 가득 적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첫번째 면접조서에는 “난민신청서를 거짓으로 작성했고 이에 대해 자백했다” “한국에 일자리를 찾아서 왔다”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정작 그가 한 “이집트에서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기 때문에 돌아가면 체포될 수 있다” 등의 말은 적혀 있지 않았다. A씨는 두번째 면접에서 난민심사관과 통역이 이 사실을 알려줬을 때 분노로 말문이 막혔다고 했다.

난민면접조서에 하지도 않은 문답이 적혀 있는 등 엉터리 난민심사가 들통난 후 지난해 법무부는 자체조사를 통해 55건에 대해 난민불인정결정을 직권취소한 후 재면접 등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시기 유사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직권취소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법무부의 난민면접 조작 의혹을 꾸준히 지적해 온 시민단체 난민인권센터는 19일 “법무부의 허위 면접조서로 인한 피해를 입었지만 직권취소되지 않은 피해자가 더 많다. 현재까지 파악된 건만 해도 최소 5건”이라면서 “법무부는 어떤 기준으로 전수조사를 하고 직권취소대상을 가려냈는지 밝혀야 한다”고 했다.


◆하지도 않은 말이 면접조서에 적혀 있었다 =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허위 난민면접조서 피해를 입었지만 법무부의 직권취소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5건은 2015~2016년 사이 난민면접심사가 이뤄졌고 면접의 통역은 장모 통역인이 맡았다.

피해 내용은 기존에 공개된 피해사례와 거의 같았다. A씨의 경우처럼 자신이 하지도 않은 “경제적 목적으로 한국에 왔다” 등의 말이 면접조서에 적혀 있는 식이었다. 5건 모두 기존에 엉터리 난민심사 때마다 등장했던 장모 통역인에 의해 면접통역이 이뤄졌다.

엉터리 난민심사가 밝혀지는 계기가 됐던 2017년 10월 이집트인 B씨의 난민불인정결정취소 소송에서 밝혀진 내용을 보면, 통역인 장모씨가 참여해 작성된 아랍어권 난민신청자의 면접조서에는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장기간 체류하면서 일하기 위해 난민신청을 하였다”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난민신청하기 위해 난민신청 사유를 거짓으로 작성했다” “본국에서 박해나 위협받은 것이 없다” 등의 내용이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었다. B씨는 면접 때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당시 법원은 “면접절차라 전반적으로 부실하게 진행되었고, 필수적으로 진행했어야 할 박해에 관한 질문이나 난민면접조서의 확인절차 등이 누락되거나 형식적으로 이뤄졌으며, 원고의 진술조차 왜곡되어 면접조서에 제대로 기재되지 않았다”면서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난민불인정결정이 취소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난민인권센터는 “파악된 5건의 경우도 B씨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면접조서에 자신이 하지도 않은 말이 쓰여 있었다”면서 “그 중의 한 명은 자신이 그런 피해를 입은 줄도 인지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난민인권센터 등이 연 ‘법무부 난민면접 조작사건 피해자 증언대회’ 내용을 듣고서 센터를 찾아왔다”고 했다.

◆“면접조서 허위기재 피해자 더 많을 것” = 법무부는 난민심사가 문제가 되자 두 차례에 걸친 설명자료를 통해 해명한 바 있다. 지난해 9월 낸 첫번째 설명자료에서는 몇 건을 조사해 55건을 직권취소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가 최근 낸 자료에서는 “2015년~2016년 간 면접부실이 의심되는 943건을 전수 조사하여 그 중 55건을 직권취소 후 재면접을 실시했다”면서 “943건은 경제적 목적의 난민신청임을 이유로 난민불인정된 사례, 난민신청서 상 난민신청사유와 면접시 난민신청 사유가 상이한 사례 등”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난민인권센터에서 파악한 5건의 경우에도 2015~2016년 기간 동안 면접이 이뤄졌고, 난민신청 사유와 면접시 난민신청 사유가 상이했지만 직권취소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 사례가 법무부의 전수조사 대상에 올라갔는지도 투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결국 법무부가 조사는 했지만 직권취소하지 않은 나머지 900여건 중에도 면접부실로 인한 피해를 본 사례가 적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난민인권센터와 재단법인 동천은 면접조작 사건과 관련해 인권위에 진정을 넣으며 “직권취소되지 않은 사안 중에서도 면접조서상의 허위기재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많은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전수조사 실시 기준, 직권취소 대상으로 분류한 판단 근거, 유사한 피해사례가 나타나는 난민전담공무원 및 통역인이 추가로 있는지 등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위로 면접 내용 기재해놓고, 나중 진술과 다르다며 난민불인정 = 일부 피해자들은 더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 면접조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사실을 2차 면접 때야 알게 됐던 이집트인 A씨는 결국 난민 불인정 결정을 받았는데, 난민불인정 사유서를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불인정 사유의 하나로 1차 면접 진술과 2차 면접 진술이 상이해 주장의 일관성이 없는 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난민인권센터의 김연주 변호사는 “당시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최초 면접조사가 위법행위에 기초해 이루어진 행위라는 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난민불인정 사유의 하나로 최초 면접 진술과 재신청 면접 진술이 불일치한다는 이유를 들었다”면서 “인권보호를 지향한다는 법무부에서 이런 인권침해적인 일이 일어났다는 것만 해도 경악할 만한 일인데, 잘못이 드러난 후에도 법무부가 바로잡으려는 의지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또 "언론보도에 따르면 관여된 공무원이 서울출입국의 2명과 경기도 양주 지역의 공무원이라고 하는데 비단 서울출입국사무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면서 "전국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 일탈 행위 아냐 … 재발방지책 필요” = 엉터리 난민심사에 대한 의혹이 짙어지면서 법무부 외부에서는 자세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는 지난 8일 법무부에 보낸 의견서에서 “면접 종료 후 면접조서 내용의 확인 절차, 난민심사관 등에 대한 심사결과에 대한 내부 보고 및 승인 절차, 이후 이의신청, 재신청 등의 구제절차 전반에 걸쳐 최초 위법행위에 대한 확인이 법무부 내부적으로는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법원의 결정 이후에야 비로소 확인되었다는 점, 또한 법무부가 임의로 일부 난민신청 사건을 '간이 절차진행 사건'으로 분류했고 이 사건들 중에서 면접조서 허위 작성 문제가 발생하였다고 보이는 점에서 일부 개인의 일탈행위가 아니라 제도적인 문제였다고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사 사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인 개선이 시급하다”면서 “또한 피해의 규모와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위법행위자에 대한 징계 및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적절한 구제책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특히 “사안의 위중함과 제도개선의 긴요함을 고려해 법무부 내·외부 위원으로 구성된 진상조사기구 설치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지만 이에 대해 법무부는 부정적인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부는 난민면접 조작사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면서 전수조사 및 직권취소 외에 심사 공정성 제고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난민면접 과정 녹음.녹화하고, 난민전담공무원에 대한 교육 강화, 난민전문가 채용, 난민통역 품질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 등이 그것이다. 또 면접 조작 등에 대해서는 “자체적인 추가 조사를 진행해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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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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