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 4대 민주항쟁 중 하나 평가

국가기념일 지정 후 첫 정부주관 기념식

올해부터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식이 처음으로 정부 주관으로 열렸다. 행정안전부는 16일 오전 10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교 대운동장에서 각계 대표와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와 가족, 일반시민, 학생 등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40주년 부마민주항쟁 기념식'을 개최했다.

기념식은 '1979~2019 우리들의 부마'를 주제로 지난 40년간 잊힌 부마민주항쟁의 의미와 정신을 과거가 아닌 현재의 우리가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치러졌다. 부산대·경남대 학생 200여명이 1797년 당시 주요 장면을 재현, 항쟁의 역사적 현장을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전달했다. 항쟁 참여자와 가족의 사연을 담은 증언영상도 눈길을 끌었다. 기념식은 부마항쟁 당시 시위대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개사해 불렀던 노래 '우리의 소원은 자유·민주·통일'을 제창하면서 막을 내렸다. 특히 노래 제창은 옛 전남도청을 배경으로 한 광주 공연단의 선창, 기념식 무대의 후창, 그리고 전 출연진과 참가자 대합창 순으로 진행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부마민주항쟁은 부산·경남 지역만의 민주화운동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기념하고 계승해야 할 우리의 민주주의 역사"라며 "국가기념일 지정이 늦은 만큼 다른 민주화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높이고 민주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 24일 부마민주항쟁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부마민주항쟁은 부산지역과 경남지역(마산) 학생과 시민들이 유신독재에 항거해 일으킨 민주화운동으로 1979년 10월 16일 부산에서 처음 시작돼 같은 달 18일 창원(옛 마산) 지역까지 확산됐다.

항쟁의 발단은 당시 공화당이 총재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징계동의안을 제출하고 제명안을 통과시킨 일이다. 이 일로 10월 15일 부산대 학생들이 민주선언문을 배포하고 16일 교내에서 시위를 시작했고 이후 시내로 진출해 시민들과 함께 시위를 벌였다. 당시 시위 참여인원은 5000여명을 넘었다. 이어 유신정권은 18일 부산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1058명을 연행, 66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그러자 시위가 경남지역으로 확산됐다. 18일 경남대에서 교내시위가 벌어졌고 이후 마산·창원, 진주 등으로 확산됐다. 유신정권은 20일 마산·창원지역 위수령을 발동하고 506명을 연행,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는 폭거를 자행했다.

부마민주항쟁은 이후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으로 정신이 이어졌으며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4대 민주항쟁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헌법 개정안 전문에도 부마민주항쟁이 들어가 있다. 헌법 개정안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입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돼 있다.

실제 부마민주항쟁은 1970년대 정치 체제 전환을 가져온 직접적 계기이자 1980·1990년대 민주화운동의 초석을 다진 항쟁이었지만 4대 민주항쟁 가운데 유일하게 기념일이 지정되지 않는 등 그간 민주운동사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어 왔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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