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차 시대의 종언? 구글·테슬라에 왕좌 넘겨줄까" 에서 이어집니다

실리콘밸리 기술기업이 늘 그렇듯, 구글 웨이모의 사업모델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다. 웨이모는 차량공유 사업을 운영하면서 미국 25개 도시에서 자율주행차를 실험하고 있다. 웨이모는 조만간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인간 안전조력자 없이 승객을 태우는 사업을 실시할 예정이다.

구글의 자율주행차 '웨이모'


웨이모 CEO 존 크라프칙은 시장지배 집념이 강하지만 전통의 자동차 제조사를 압박하는 데엔 별 관심이 없다. 웨이모는 지난 10년 동안 연구개발에만 수십억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웨이모의 사업모델은 현존 자동차 산업계와 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다.

크라프칙은 9월 열린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개막식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우리는 자동차 산업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지원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차를 판매하는 것에 집중하는 사업모델은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도 "앞으로 단순히 차를 판매하는 사업모델은 전 세계 환경은 물론 제조사 자체에도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대부분의 자동차가 대부분의 시간 방치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자가용 보유자는 연 평균 2만5000킬로미터를 주행한다. 크라프칙은 "자율주행 택시 또는 차량 공유 서비스와 함께라면 자동차 쓰임새는 4~5배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에게 자동차는 덜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자동차의 교체주기는 더 단축된다.

그는 "자동차 제조사들은 차 판매뿐 아니라 고객이 자동차로 여행할 때마다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며 "차가 아닌, '모빌리티'(이동성)을 제공한다면 제조사들은 이익을 실현할 더 거대한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폭스바겐의 전기자동차 'ID.3'


위험한 딜레마

자율주행 차량에서도 가장 큰 비용 요소는 인간 운전자다. 사람이 완전 배제된다면 모빌리티 서비스의 수익성은 더욱 커진다. 운전자 없는 택시, 정비공이 없는 보수정비, 배달부 없는 배달이 가능한 새로운 세계에서는 사람에게 지불해야 할 급여나 상여금이 없다. 기계들이 일손을 놓을 때는 기술적 문제가 생겼을 때만이다.

자율주행 차들이 일반적인 상황의 도로를 장악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일각에서는 2025년, 다른 편에선 2050년에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하지만 자율주행 차량이 점차 도시간 고속도로와 도시 내 이면도로를 장악할 것이라는 점엔 이견이 없다.

자율주행이 성과를 낼수록 폭스바겐이나 BMW, 다임러와 같은 전통의 차 제조사들은 웨이모와 같은 하이테크기업과 손을 잡으라는 압박을 더 크게 받을 것이다. 이들 기업이 필요한 혁신기술을 완벽하고도 신속히 개발하는 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위험한 딜레마다. 웨이모 등과의 사업제휴가 없다면, 네트워크로 묶이게 될 새로운 자동차 세계에서 독일 자동차업계가 선두 역할을 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웨이모의 개입을 허용한다면, 독일 차 업계의 의존성은 커질 것이다. 폭스바겐 등은 부차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 더 이상 독자적 제조업체가 아닌, 공급업체로 전락하는 수준으로 의존성이 심화될 것이다. .

일부 독일 차 제조업체들은 웨이모의 지분을 사들이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첨단 기술에 접근하고 기업 미래에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다. 하지만 실패했다. 웨이모 지분을 사들이는 데 드는 돈이 엄두도 못 낼 만큼 크기 때문이다. 미국 전문가들은 웨이모의 가치를 약 2500억달러로 추정한다. 이는 다임러(600억달러)와 폭스바겐(960억달러), BMW(500억달러) 가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큰 액수다.

테슬라의 전기자동차 '모델3'


일론의 꿈의 공장

테슬라 공장은 캘리포니아 프리몬트에 있다.아이스맨과 썬더버드, 싸이클롭스 등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 이름을 딴 로봇들이 전기자동차를 생산한다. 매일 약 100대의 전기차를 만들어낸다. 2018년 초 대량생산 체계를 갖춘 '모델3'는 당시보다 8배 높은 생산성을 자랑한다. 테슬라의 조립 로봇 덕분이다.

프리몬트 공장을 방문하고 싶다면, 테슬라 주주가 되는 게 가장 유리하다. 언론인은 예외적인 경우 방문이 허락된다. 하지만 조건이 많다. 사진촬영이 금지된 것은 물론 필기를 할 수도 없다. 530만평방피트(약 14만9000평)의 공장을 관통하는 전기전차에 탑승해 1시간 가량 견학할 수 있다.

테슬라의 미션은 공장 입구에 은색으로 새겨져 있다. '전 세계가 지속가능한 에너지로 이동하는 것을 가속화하자'는 것. 모든 직원들은 매일 그 표어를 지나친다. 2003년 테슬라를 설립한 머스크는 자동차와 기술기업뿐 아니라 반드시 따라야 할 숭배문화도 만들어냈다. 테슬라 고객과 직원은 거대한 대의명분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지구를 구하는 노력에 직접 참여한다는 느낌이다.

그럴 준비가 안된 사람은 탈락할 수밖에 없다. 머스크가 선포한 목표는 '모든 휘발유, 경유 엔진을 없애자'는 것이다. 그가 암시하는 것은 시대정신을 읽는 데 실패한 자동차 제조사들은 사라진다는 것. 머스크는 최근 트위터에 '내연기관은 사라져가는 열풍이다. 곧 증기기관의 뒤를 따라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 적었다.

대담한 조치

테슬라는 프리몬트 공장에 구형 휘발유 펌프를 설치했다. 그 옆엔 초급속 전기충전소를 함께 마련했다. 의문의 여지 없이 과거와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테슬라는 전 세계 1만4000곳에 태양광 기반 급속 전기충전소를 설치했다.

독일의 정치계와 자동차업계는 여전히 전기자동차가 올바른 방향이냐, 만약 그렇다면 전기충전소 건설에 누가 자금을 대고, 나중에 누가 관리할 것이냐를 놓고 토론하고 있다. 이에 비춰보면 테슬라의 조치는 매우 대담하다. 스스로 필요한 인프라를 건설한다.

이게 머스크 방식이다. 그가 어마무시한 규모의 프리몬트 공장을 토요타로부터 사들였을 때 다들 미쳤다고 생각했다. 폭스바겐이나 BMW, 다임러, 아우디 등 독일의 경영자들은 머스크가 새로운 자동차 제조업체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비웃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웃지 않는다.

슈피겔은 "테슬라 공장 내의 밝은 불빛은 살균처리된 병동처럼 느껴진다. 직원들은 하얀색 철제 비계 사이에서 일하는 장난감처럼 보인다"며 "이들은 검은색 바지와 셔츠를 입는다. 기계에 비해 진부해질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애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평했다.

머스크의 꿈은 결국 고도로 정교한 자동화 공장을 갖는 것이다. 기계를 만드는 기계를 만드는 꿈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여전히 사람이 필요하다. 약 9000명의 사람 노동자가 프리몬트 공장에 고용돼 있다. 모델3을 조립하는 데 쓰이는 1100개의 로봇을 관리하고 프로그램화하는 일을 한다.

수년 앞선 테슬라

기존의 차 제조사들은 머스크가 수십억달러를 들여 전기충전소와 자동차·배터리 공장을 짓는 등 많은 돈을 낭비하는 거만한 인물로 여겼다. 하지만 그들은 틀렸다. 테슬라는 매우 자주 손실을 낸다. 하지만 지난달 놀랄 만한 이익을 냈다.

또 테슬라의 현금흐름은 들쑥날쑥하다. 때로 파산 직전 상황에 몰리기도 한다. 폭스바겐이나 다임러가 자신있게 다룰 수 있는 대량생산체제 부문에서 머스크는 고전에 고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테슬라가 만든 전기차 품질은 모두를 놀래켰다.

폭스바겐 등 전기차를 염두에 둔 회사들은 테슬라의 새로운 중형 세단 '모델3'가 시장에 나오기 전 사전 입수해 개별 부품으로 분해해 봤다. 이들은 놀랐다. 작디작은 미국의 경쟁사가 주요 기술 영역에서 자신보다 수년이나 앞섰기 때문이다. 배터리만 더 효율적인 게 아니었다. 테슬라의 전기차는 네트워크 연결성이 매우 우수했다. '차는 굴러가는 컴퓨터'라는 머스크의 장담이 말에 그친 게 아니었다.

테슬라 엔지니어들은 다른 각도로 차를 바라본다. 이들에게 차는 스마트폰처럼 업데이트를 통해 개선할 수 있는 종류다. '오버 디 에어'(over-the-air)가 대표적 사례다. 무선업데이트 시스템으로 정비소에 갈 필요 없이 자동차 정비를 하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 업데이트를 통해 잠김방지 브레이크 시스템의 알고리즘을 바꾸면 자동차의 제동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다.

컴퓨터의 힘을 활용하다

테슬라는 약 150대의 PC를 모아놓은 것과 같은 강력한 중앙 컴퓨터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테슬라의 모든 팀은 강력한 연산력을 통해 자동차가 구현할 수 있는 능력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스마트 소환' 기능이 적절한 사례다. 자동차가 자율주행 모드로 스스로 움직이며 주인이 원하는 장소로 이동한다는 개념이다. 아직 출시되기엔 문제점이 많다. 하지만 질문이 있어야 현실화도 가능하다.

'센트리 모드' 기능도 있다. 자동차가 외부 환경을 알아서 기록하는 감시시스템이다. 수상한 사람이 근접하면 경고음을 울린다.

물론 테슬라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머스크는 전체 판을 흔드는 데 성공했다. 그의 회사는 분기당 약 10만대의 차량을 뽑아낸다. 폭스바겐이나 메르세데스가 지난해 생산한 것보다 더 많았다. 다른 완성차 제조사들이 테슬라와 연합하려는 또 다른 이유다. 다임러는 임시적으로 테슬라의 전략적 투자 관계를 맺었다. 폭스바겐 CEO 헤르베르트 디스는 테슬라 주식을 매입하는 방안을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독일은 이후 전략을 바꿨다. 테슬라를 껴안기보다 맞서 싸우겠다는 것. 이 전략이 적중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차를 전체로 인식한다

독일 뮌헨시 외곽에 조성된 BMW 자율주행 캠퍼스에는 약 1500명의 직원이 자율주행 운용과 프로그래밍, 테스팅 부문에서 일한다. 웨이모, 테슬라와 같은 경쟁자를 따라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미국은 완벽한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면서 완전 자율주행 표준을 세우려 한다면, BMW와 다임러는 독일의 방식으로 일을 한다.

자율주행 캠퍼스 대표인 팔크 슈베르트는 "우리는 자동차를 전체적으로 파악한다. 모든 기능을 구성요소로서 함께 개발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프트웨어를 장착하기 위한 '움직이는 껍질'(moving shells)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하드웨어 공급업체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BMW는 2021년 'i넥스트'라는 이름의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이는 3단계 '조건부 자율주행'에 해당한다. 도로위에서 자율주행 기능을 어느 정도 구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자율주행 등급은 6단계로 나뉜다. 0단계는 자율주행 기능이 아예 없다. 운전대를 잡은 인간 운전자가 직접 모든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 반면 5단계는 완전 자율주행이다. 차에는 승객만 탄다. 운전대를 잡을 필요가 없다. 현재까지 글로벌 업체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단계는 2단계 '부분적 자율주행'이다.

BMW 역시 웨이모가 언젠가 자율주행 자동차에 유일한 소프트웨어 공급자가 될 가능성, 자동차 제조사가 단순 하드웨어 공급자로 전락할 가능성을 위협요소로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BMW는 '그같은 시나리오가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결국 기술기업들도 차 제조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피겔은 "전략이라기보다 희망사항에 가깝게 들린다"며 "확실한 건 전통의 차 제조사들이 필요한 혁신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율주행 시스템의 개발엔 막대한 돈이 든다. BMW 단독으로만 수십억달러가 필요하다. 결국 부담을 낮추기 위해 BMW는 올해 7월 전통의 맞수 다임러와 손을 잡았다.

하지만 두 기업의 협력은 매끄럽지 못한 상황이다. 올해 2월 BMW와 다임러는 각자의 차량공유 브랜드인 '카2고'와 '드라이브나우'를 합병해 '나우'라는 벤처기업을 만들었다. 하지만 9월 나우 대표가 사임했다. BMW와 다임러 모두 추가 투자를 꺼렸기 때문이다.

나우가 추구하는 기본 개념은 훌륭하다. 대도시 고객들이 모바일 앱을 통해 저렴하고 신속하게 차량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비용이 컸다. 특히 차량 정비와 청소, 연료 주입 등에 투입되는 직원들 임금이 그랬다. 다임러와 BMW는 여전히 나우에서 손실을 내고 있다. 투자자들이 신규 자금을 출자하지 않거나 폭스바겐이 참여하는 더 거대한 연합을 만들지 못한다면 나우라는 실험은 곧 종료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독일은 차량 공유 시장에서 발을 뺀다는 의미다.

중국 베이징에서 약 12개의 고속도로와 톨게이트가 남부로 향한다. 그리고 또 다른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있다. 8개차로가 약 100킬로미터 뻗어있다. 2개의 차선은 자율주행차를 위해 따로 남겨뒀다. 이 도로는 베이징을 '슝안 신도시'와 연결하게 된다. 수백만 인구가 거주하게 될 시범도시다. 교통혼잡 수도인 베이징을 괴롭히는 대기오염을 상당 부분 해소할 전망이다.

슈피겔 "독일 차업계, 미래자동차 시대 전혀 적응 못해"" 로 이어집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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