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부동산에서 촉발 … "시스템 리스크 발생 않는다고 장담 못해"

"최근 글로벌 부동산 투자를 주도해 왔던 중국계 자금이 중국 정부의 해외투자 규제 강화 등으로 줄어들면서 유로존 대부분의 지역에서 해외투자 유입이 대폭 감소했다. 부동산은 시장환경 악화시 환매가 쉽지 않고 위험요인 파악이 용이하지 않아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시스템 도입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금융감독원 런던사무소에서 지난해 9월 작성한 조사연구보고서 중 일부다.

지난해 상반기 유럽 부동산시장에 들어온 한국계 자금은 75억유로. 2018년 한해 투자금액인 68억유로를 초과했다. 특히 프랑스에 유입된 자금이 21.6억유로로 전년도 3억5000만유로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증권사들은 영국 런던지역 오피스빌딩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2009년부터 2019년 6월까지 투자된 78억7000만파운드 중 69억9000만파운드가 런던에 투자됐다. 하지만 영국은 지난해 1분기 주택 평균가격이 22만7000만파운드로 전분기 대비 1.3% 하락했다. 런던이 2.0%, 웨일즈가 1.5% 하락했다. 상업용부동산도 1.5% 하락했다. 소매점포의 폐업이 늘었기 때문이다. 2018년 영국내 주요 쇼핑중심가에서 2481개 소매점포가 폐업했다.

◆해외부동산 투자에서 발 빼는 중국 = 세계적인 회계·컨설팅그룹 KPMG는 영국 주택가격이 올해 5.4~7.5%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7년 금융위기 이전 고점가격 대비 50% 상승을 유지하고 있는 런던 지역의 경우 하락폭이 더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계 자금의 투자 감소는 유로존 지역의 해외투자 유입 대폭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금감원은 "영국 46%, 네덜란드 22%, 프랑스 11% 가량 해외투자가 감소했다"고 말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온라인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쇼핑몰들이 무너지는 게 미국 등 전 세계적인 추세"라며 "부동산 경기가 상가부터 꺾이고 이후 주택시장도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주택시장이 언제까지 좋을 수만은 없고, 부동산 투자와 관련한 리스크가 상당할 수 있다"며 "부동산 그림자금융으로 인한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부동산 그림자금융의 규모는 2019년 6월 기준 554조9000억원이다. 주택저당증권(MBS)까지 포함하면 670조원에 달한다.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 충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부동산과 특별자산 펀드의 규모가 190조원을 넘어서면서 2019년 6월 이후 6개월 만에 20조원이 증가했다. 부동산신탁 등의 증가속도를 고려하면 부동산 그림자금융의 규모는 6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해외 부동산 투자규모가 급증하고 있으나 경쟁심화로 수익률이 추세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전반적인 모니터링 강화와 사전적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 위원은 "대체투자펀드의 경우 대부분 만기가 정해져 있는 폐쇄형 사모형태(전체 대체투자펀드의 95% 정도)로 운영되고 있어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원하는 시점에 현금화가 어렵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며 "해외 부동산투자의 경우 이같은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더 큰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뱅크런에 취약한 그림자금융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위기를 촉발시킨 것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다. 당시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주택저당증권(MBS)의 손실로 위기가 촉발됐다고 하지만 당시 AAA등급을 받은 서브프라임 MBS의 경우 전체 발행액의 0.21% 밖에 손실을 입지 않았다.

민병철 주택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모기지의 손실은 트리거의 역할을 했으며 구조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며 "뱅크런에 취약했던 그림자금융시스템의 존재와 이를 감시하지 못했던 정부의 규제체계"라고 말했다.

민 위원은 "당시 금융기관들 간에 초단기 자금융통이 많이 일어났는데 주된 담보가 됐던 게 MBS채권"이라며 "담보가치가 의심을 받으면서 초단기 자금융통시스템이 마비가 됐고 그로인해서 도산한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장기적인 재무건전성과 별개로 단기 유동성 문제로 문을 닫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민 위원은 "우리나라의 MBS는 지급보증이 되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서 직접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은행은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문을 닫더라도 국가가 일정금액 이하의 예금을 보장해준다. 따라서 은행의 경우 리스크가 발생해도 뱅크런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규제와 감시에서 비껴나 있는 그림자금융의 경우 위험이 커지면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는 뱅크런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라임 사태에서도 투자자들이 돈을 회수하기 위해 한꺼번에 몰리는 '펀드런' 사태가 발생했고, 더 큰 유동성 문제를 막기 위해 금감원이 나서서 라임자산운용에 환매중단을 강력히 요구했다.

◆위험관리 나서는 금감원 = 금감원은 "해외 금융감독 당국은 2008년 금융위기가 MBS와 글로벌 IB파산 등 자본시장에서 촉발됐다는 점에서 그간의 영업행위와 관련해 시장규율 및 공시제도 등을 중심으로 한 감독방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시스템 리스크의 체계적 관리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그림자금융 급증과 관련해 금감원은 종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국내와 해외 부동산 그림자금융데이터와 부동산 시장데이터를 금융투자회사 등으로부터 입수해 관리하기로 했다. 입수된 자료를 토대로 부동산 자산과 금투업자에 대한 위험을 평가하고, 위험관리를 위한 건전성 기준을 마련해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단기적으로는 자본시장 부문의 익스포져(위험노출액) 현황을 집계·관리·평가하고 장기적으로 은행과 비은행 부문의 데이터와 연계해 모든 금융권을 통합 관리한다는 감독 로드맵을 마련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부동산 그림자금융은 여러 금융부문에 걸쳐 있고 자금조달 및 운용 과정에서 국내·외를 불문하고 높은 상호 연계성을 갖고 있어 리스크의 체계적 관리가 어렵다"며 "부동산시장 급락 등 위기가 발생할 경우 위험을 전이·증폭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어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의 불안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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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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