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숙 민법박사 법무법인 산우

대형물류업체에서 일하는 근로자 A는 설날을 앞두고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특히 설 명절은 유독 처리해야 하는 물류의 양이 많은 기간이다 보니 벌써 한 달째 정시퇴근은커녕 휴일도 없이 매일 출근하고 있다. 특히 이번 설연휴는 최근 동료 몇 명이 일을 그만두면서 인력에 공백이 생겨 남은 사람들의 업무 강도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그러던 중 설연휴 물류 처리의 마지막 날, 업무 마무리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던 A가 갑작스럽게 호흡곤란과 마비 증상을 보이며 쓰러졌다. 주변 동료들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어 검사를 받은 결과 누적된 피로와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현재 우리나라는 1주에 40시간, 최대 52시간을 초과하여 근로할 수 없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예외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50인 이상의 기업인 경우 모두 이러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 위반시 사업주는 2년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주52시간근무제는 근로자들로 하여금 업무시간을 단축시켜 일명 '저녁이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현실은 줄어든 업무시간에 비례해 높아진 업무강도와 비공식적인 근무시간의 증가로 더 큰 '피로'를 느끼는 근로자들이 더 많다고 한다.

과중한 업무와 그로인한 스트레스는 근로자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업무로 인한 피로로 주의력이 떨어져 발생한 근무중 사고 때문에 부상을 당하는가 하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나 질병으로 회복하기 힘든 상태에 빠지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근로자가 업무상 사고로 인해 재해를 당하거나 질병을 얻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에는 재해근로자나 그 유가족은 '업무상 재해'를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 따른 요양급여나 유족급여 등을 청구할 수 있다.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해당 사고나 질병의 원인이 업무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다툼이 발생하게 되며 소송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과로나 스트레스 등을 이유로 하는 질병에 의한 '업무상 재해'의 경우 업무상 사고로 인한 경우에 비해 근로자가 그 원인관계를 증명하기가 어려워 문제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최근 공단과 법원은 근로자보호를 위해 '업무상 재해'와 관련하여 그 인정범위를 점점 넓혀가고 있다. 직장내 괴롭힘 등으로 인한 우울증 및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까지 '업무상 재해' 범위에 포함된다. 사안에 따라 근로자가 기존에 앓고 있던 질환이 업무상 원인으로 악화된 경우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고 있다.

위 사례의 A는 뇌출혈이 업무상 과로로 인해 발생한 사실이라는 점을 증명해 공단을 상대로 산재요양급여 등을 신청할 수 있다. 만약 A의 뇌출혈과 업무상 과로 등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 A는 급여신청을 거절당할 수 있다. 물론 공단의 지급거절이 있었다 하더라도 A는 다시 한번 공단에 재심사청구를 하거나 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다툴 수 있다. 최근 법원이나 공단이 업무상 재해를 판단하는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문제된 사고나 질병이 업무상 원인에 의해 발생하였다는 사실은 분명해야 한다. 또 업무상 재해의 경우 유사한 원인으로 재해를 입은 경우라 하더라도 재해근로자의 성별이나 나이, 건강상태, 근무환경, 근무시간 등에 따라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가 달리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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