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불확실한 미래에 제도·관행 탈바꿈 시도 … 노조 등 반발로 갈등 예고

국내 주요 은행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지만 미래는 밝지 않다. 세계적인 저성장과 저물가, 저금리가 장기·고착화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투자자들이 은행산업의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은행권 내부에서도 은행의 성장성과 수익성의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은행들은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적응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불확실한 은행의 미래에 대해서 세 차례에 나눠 살펴본다. 편집자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함에 따라 고객들이 많이 찾는 은행들도 비상대응 체계에 들어갔다. 지난달 28일 KB국민은행 여의도 영업점에서 직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고객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은행권이 변화를 서두르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에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다양한 수익원의 확보와 함께 인력운용과 비용관리의 비효율성을 제고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것도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경영진은 바꾸고 줄일 수 있는 분야는 인력운용과 관련한 데 한정돼 있다고 하소연하고, 노조 등은 왜 은행원만 희생양이 되냐며 버티고 있어 노사간 갈등이 일상화할 가능성도 있다.

◆디지털시대 인재가 자산 = 은행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저금리에 따른 수익구조의 변화도 있지만, 자금중개와 거래의 방식이 디지털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금융정보화추진협의회에 따르면,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서비스는 2014년 35.4%에서 2018년 53.2%로 증가했다. 단순한 이체나 잔고 파악 등은 비대면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처럼 고객이 은행 지점을 방문해 거래하는 비중이 줄면서 은행들은 디지털 분야의 역량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디지털 인프라의 설치와 개조에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어가고, 때로는 기술적 결함이 발생해 큰 위기를 맞는 상황도 있다. 시대가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의 운용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주요 은행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은행의 경영진은 제도와 관행의 수술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수백명씩 신입행원을 뽑는 공개채용 방식에서 소규모 수시채용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하나은행이 대표적이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3분기부터 IB업무와 외환, 미래금융 등의 분야에 필요한 전문직 인력을 수시로 채용하고 있다. 기존에 시행했던 공채를 당장 없앨 수는 없어 함께 실시하지만 수시채용의 비중이 늘어나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신한은행 등도 대규모 공채와 함게 일부 전문 직군에 대해서는 수시채용을 통해 선발하고 있다.

채용방식의 변화에는 급여체계의 변동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해서는 결국 금전적 인센티브가 보장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소규모 수시채용은 필요한 인재를 필요한 때 영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금과 같은 호봉제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노사간 현안으로 부상한 직무급제 = 최근 IBK기업은행 노조가 윤종원 행장 출근 저지투쟁을 벌인 끝에 노사가 합의한 내용 가운데 직무급제 도입시 노조의 동의를 명문화했다. 노조는 이 사안에 대해 의미를 크게 두고 있다. 그만큼 은행원들 내에서 급여체계의 변화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행권 노사는 현행 호봉제를 직무급으로 바꾸는 문제를 두고 대립했다. 박근혜정부 때는 성과연봉제를 정부가 강제로 도입하려다 은행 노조의 파업까지 불러오기도 했다. 단계적으로라도 도입하려는 경영진은 근속년수가 늘어나면 월급도 오르는 현행 호봉제를 바꾸지 않고는 미래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직무급 체계로 전환하려는 데는 기존의 연공서열에 의한 급여체계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며 "좋은 인재를 수시로 채용하려면 성과나 능력에 따른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데 기존과 같은 호봉제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강하게 반발한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최근 내일신문과 인터뷰에서 "임금체계의 개편은 정부나 사측이 일방적으로 할 수 없는 근로조건 변경의 핵심적인 내용"이라며 "노사가 반드시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노조 한 관계자는 "직무급으로 변동되면 은행내에서 동료들간 무한경쟁으로 조직내 단합이 깨질 수 있다"면서 "고객의 비밀번호 도용 등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의 일탈도 직원간 무한경쟁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한편 대통령 자문기구인 경제사회노사정위원회는 산하에 금융산업분과를 두고 직무급제 도입 등 노사가 각각 제기한 4개의 현안을 두고 논의를 하고 있지만 뚜렷한 진척은 없는 상태이다.

◆5년간 은행 점포 500개 감소 = 은행의 인력과 점포가 줄어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점포는 500개가 줄었다. 2014년 4002개에 달했던 4대 시중은행의 국내 점포는 지난해 3분기에 3544개로 줄어 11.4% 감소했다. 특히 한국씨티은행과 같은 외국계 은행의 일부는 이 기간 국내 점포를 134개에서 44개로 줄이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인력도 줄이고 있다. 2014년 4대 시중은행의 임직원은 6만6684명이었던 것에서 지난해 3분기에는 6만1286명으로 8.1% 줄었다. 2018년 이후에는 용역직원의 정규직화 등으로 집계방식이 일부 바뀐 점을 고려하면 훨씬 많은 인원이 줄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4대 시중은행은 희망퇴직으로 1400여명을 줄였다. 이 과정에서 희망퇴직자 1인당 평균 4억원 가량의 희망퇴직금을 지급한 것으로 추산됐다.

금융연구원은 '2020년 은행산업 전망과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저성장과 저금리로 은행의 수익기반이 약화되는 가운데 현재의 노동시장과 급여체계의 유연성을 감안하면 이익증가율이 비용증가율을 상회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인력과 점포의 수요감소에 대한 연착륙 방안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3저 시대, 은행의 미래" 연재기사]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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