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요기업, 이사회 구성시 현재 역량 평가 … 금감원 "사외이사 후보자 상시관리, 정기적으로 평가해야"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금융지주사 사외이사들에게 이사회 역할을 수록한 핸드북을 전달한데 이어 올해는 새로 임명되는 사외이사들을 상대로 금융연수원을 통해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회사 경영진이 임명하는 사내이사와 달리, 금융회사의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사외이사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은 금융회사의 이사회 구성과 관련해 사외이사를 3명 이상 둬야 하고, 사외이사의 수는 이사 총수의 과반수가 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9일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DLF사태와 같은) 금융회사의 내부통제 실패의 총제적 책임은 대표이사와 이사회에 있다"며 "이를 명확히 하고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회에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법제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DLF사태와 관련해 하나·우리은행장에 대해 중징계 처분을 내렸지만 이사회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았다. 법적 제재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이사회가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하고 법개정을 통해 이사회에도 책임을 물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에는 내부통제 실패에 따른 책임을 대표이사가 지도록 돼 있고 이사회는 빠져있다.

◆내부통제 미흡으로 해마다 금융사고 발생 = 금감원이 외부전문가들로 구성해 출범시킨 '금융기관 내부통제 혁신 TF'는 2018년 내부통제에 대한 금융회사 대표이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금감원이 추진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 강화 방향에 가장 근접한 내용이다.


당시 TF는 삼성증권의 유령배당 사고를 계기로 출범했으며 보고서 내용은 최근 DLF사건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고서는 "국내 및 국제적으로 금융기관 이사회와 최고경영자가 내부통제에 대한 전반적인 책임을 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그러나 최고경영자를 포함한 경영진은 단기적인 성과 위주의 경영을 하는 경향이 강하고 내부통제의 실질적 작동에 대해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내부통제 미흡으로 발생한 금융사고는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2018년 삼성증권 배당오류, 지난해 DLF 사건 이외에도 2017년 NH농협은행 뉴욕지점의 자금세탁방지 미흡, 2016년 육류 담보 중복대출 사건, 2015년 모뉴엘 대출사기, 2014년 KT ENS 사기 등이다.

금감원은 DLF사태에 따른 은행장 중징계 처분과 관련해 '내부통제 실패에 따른 책임'이라는 확실한 메시지를 시장에 보냈다. 대표이사가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금융회사가 무리하게 실적 위주로 가지 않도록 경고한 것이다. 금융회사의 건전성 유지라는 측면도 있지만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중요한 의무를 일깨운 조치다.


◆사외이사 후보군 관리, 선임절차 투명화 = 기업의 지배구조는 '회사와 이사회, 주주 그리고 그 밖의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일련의 관계'로 정의된다. 경영진의 과도한 권한 행사를 견제하는 이사회와 주주총회는 기업지배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지배주주가 없는 주요 금융지주회사의 경우 이사회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고객자금을 맡아 운용하는 금융회사의 특수성까지 고려하면 건전한 지배구조 유지의 필요성은 더 커진다. 사외이사들은 그동안 경영진의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선임절차도 불투명했다.

금감원은 사외이사 선임절차와 관련해 '금융지주회사 이사회 핸드북'에 투명성 강화 내용을 담았다.

핸드북에 담겨 있는 글로벌 컨설팅회사 KPMG의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해외 주요 기업들은 이사회 구성을 고려할 때 현행 이사회 역량이 회사의 향후 3~5년간 중장기 경영전략 실행에 문제가 없는지 등을 고려한다. 이와함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견해를 경영의사결정에 폭넓게 반영시킬 수 있는지, 이사회가 금융산업 구조변화, 경쟁심화, 기술변화, 해외진출 등 경영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등도 검토하고 있다.

이사들의 개인별 역량과 자격뿐만 아니라 개별 이사를 합한 총체적 측면인 '집합적 적합성'을 고려한다는 말이다.

이를 참고해 금감원은 이사회 구성절차를 4단계로 나눴다. '현행 이사회에 대한 역량평가 → 미래 필요한 역량 설정 → 차이(GAP) 분석 → 부족한 역량보완' 등 분석과 평가를 토대로 가장 최적화된 이사회 구성을 위한 절차를 정했다.

사외이사의 선임과 관련해서는 '승계절차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외이사 후보자를 상시적으로 관리하고 정기적으로 평가해 임기도래 등에 따른 사외이사 선임사유 발생시 사외이사 선임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사외이사 후보군 관리방법 △선임절차 개시시점 △후보추천 및 평가방법 △선임절차를 담당할 위원회 운영 등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정하고 이를 문서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고 교수는 "금융회사들이 사외이사를 임원추천위원회에서 정하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경영진이 추천한 사람이 되거나 친 경영진에 가까운 분들이 된다"며 "사외이사 후보군의 관리와 추천을 독립적인 기관에서 할 수 있도록 선임절차를 투명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외이사 면담 강화 = 사외이사는 금융회사 최고경영자 선임 절차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난해 금감원은 채용비리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함영주 당시 하나은행장의 연임과 관련해 이사회 인사들과 면담을 갖고 법적리스크를 전달했다. 이후 함 행장은 연임을 포기했다.

금감원은 채용비리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신한금융지주 조용병 회장의 연임과 관련해서도 지난해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에 참여하는 사외이사들과 면담을 갖고 법적리스크를 전달했다. 하지만 회추위는 조 회장의 연임을 결정했고 주주총회의 의결만 남겨놓고 있다.

금감원은 "회추위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그에 따른 책임은 이사회와 주주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신한금융의 ING생명(현 오렌지라이프) 인수와 관련한 심사과정에서도 신한금융지주 이사회와 면담을 갖고 지배구조리스크를 점검했다. 재판 중이던 조 회장 유고시 후계자 선정 절차를 확인하기 위해 비상승계계획을 요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들이 현지 금융회사를 인수할 때 금융지주 회장이 직접 해당 국가 금융당국과 면담을 했다"며 "해외 금융감독당국은 더 엄격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국제통화기금(IMF) 권고한 '금융회사 이사회에 대한 면담·감독·평가' 중에서 면담만 진행하는 수준이다. 사외이사를 비롯해 금융회사 주요인사에 대해 적격성 심사를 벌이고 있는 영국이나 최근 이를 도입한 호주 등과 비교하면 낮은 단계다.

금융기관 내부통제 혁신 TF는 "금융기관 스스로 끊임없이 내부통제 혁신을 가져올 수 있도록 감독당국이 지속적으로 내부통제 관련 규제 체계와 감독기업을 재검토하고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강화 방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회에 계류 중인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내부통제 혁신 TF가 내놓은 방안보다 후퇴했고 그마저도 법안 통과가 어려운 실정이다.

금융회사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라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이사회의 독립성 강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지배구조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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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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