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진, 의원 한마디에 직장 잃는 '파리목숨'

채용·면직때 원칙·기준 없고 감시도 사각지대

52시간제·직권면직제한 예외, 고용환경 열악

코로나19로 고용상황이 크게 악화돼 문재인정부가 고용유지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국회 의원회관에서도 고용대란이 예고돼 있다.

21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국회의원 회관에서는 보좌진들의 대이동이 한창이다. 낙선한 의원들이 적지 않고 새로 들어온 초선의원들도 152명에 달한다. 일자리를 찾는 보좌진들은 여기저기 지원서를 넣기 바쁘다. 하지만 의원의 낙점을 받아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언제 의원이 '그만두라'고 할지 모른다. 가시밭길이다.

박수치는 민주당 초선 당선인들 | 더불어민주당 송재호(왼쪽부터), 이소영, 민형배, 김영배, 이해식 초선 당선인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그린뉴딜' 토론회에서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12일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현재 보좌진 중 90%정도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다"며 "별정직의 경우엔 고용보험이 선택인데 이렇게 많은 규모가 고용보험에 들고 그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점은 현재 보좌진 고용이 매우 불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 입법지원기관인 예산정책처 등의 전문인력은 임기동안 고용이 보장되기 때문에 굳이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면서 "보좌진 고용불안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사무처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지난해 10월말까지 3년5개월동안 1542명이 면직됐다. 월평균 38명이 그만두는 셈이다. 이는 18대 1154명(월 24명), 19대 1342명(월 28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당연퇴직을 뺀 의원면직 임명취소 직권면직을 합한 규모다. 20대 국회에서 4급 보좌관과 5급 비서관을 20번 이상 바꾼 의원이 세 명에 달하기도 했다.

내일신문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20대 국회의원 보좌진 임면 현황'을 확인한 결과 2016년5월30일부터 지난해 4월30일까지 35개월간 298명의 현직 국회의원이 채용한 9급 이상 보좌진(의원실당 8명)은 5877명이었고 의원실마다 19.7명씩 채용했다. 보좌진 전체를 한번이상 바꿨다.

보좌진 고용구조는 이중적이다. 의원이 채용과 면직을 임의대로 할 수 있지만 실제 행정은 국회 사무총장에 의해 이뤄진다. 행정상으로 국회의원은 채용과 면직 책임이 없지만 가장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는 셈이다.

채용과 면직은 주로 의원과 선임보좌관에 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기준이나 원칙은 없다. 갑질이 풍부하게 나올 수 있는 좋은 토양이다. 의원실 내에서 '미투(Me Too, 나도 고발한다)'가 적지 않게 확인된 것도 같은 이유로 해석된다.

견제장치도 없다. 고용계약서는 작성하지 않는다. 입법공무원이지만 신분 보장이 안 되고 주 52시간제 적용대상에서 제외됐다. 국가공무원법에서 규정한 엄격한 직권면직 대상에서도 빠져있다.

채용은 공개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미리 뽑을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서 공채라는 요식행위를 거치는 '말로만 공채'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지원자들의 불만사안이다. 휴일, 주말, 휴가 역시 제대로 못 챙길 때에 호소할 곳이 없다. 의원이나 선임보좌관의 기분과 성품, 기호에 맞추느라 겪게 되는 어려움은 때론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보좌진들의 익명 게시판인 '여의도옆 대나무숲'에는 최근에도 수많은 의원과 선임보좌관의 갑질에 대한 울분이 켜켜이 쌓여있다.

보좌진들은 '면직예고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면직 30일 전에라도 통보해달라는 얘기다. 최소한의 요구다. 홍기돈 더불어민주당보좌관협의회 부회장은 "국회의원 보좌진은 별정직 공무원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말 한마디 해고에도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협받는 직장인이기도 하고 국회의원의 동반자에서 졸지에 타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며 "경제활동의 예측가능성과 재취업 등의 준비를 위한 기간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회의원과 보좌진간의 근로협약이나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목소리도 있다.

김숙정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변호사는 "국회의원 보좌직원에 대한 면직예고제도 등은 국회 사무처나 각 국회의원의 결단에 따라 근로협약을 맺는 방식 등으로 빠른 시간 안에 시행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다만 면직예고 기간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일정기간의 임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법률을 개정하는 것이 면직예고제도의 실효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민주당 모 중진의원은 "지금도 면직해야 할 때는 예고를 하고 있는데 표준계약서 같은 것을 사무처에서 만들어 이것을 기준으로 각 의원실마다 고용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고용관계를 정상화하는 방법 중 하나"라며 "국회의원실이 민주화되지 않거나 고용관계가 주종관계가 된다면 좋은 정책이나 입법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1대 국회 이것만은 바꾸자"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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