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코노미스트 스페셜리포트 Ⅳ

지난 연말 중국 기술기업 '원커넥트'(OneConnect) 경영진이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들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 뉴욕에 도착했다. 당시 미 의회는 화웨이를 금지하려던 참이었다. 미국 기관들에 장비를 공급하면서 중국 정부를 위해 스파이 행위를 한다는 혐의를 걸었다.

하지만 원커넥트는 방미 목적을 달성했다. 12월 13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해 3억1200만달러를 조달했다. 총발행주식을 기준으로 하면 37억달러 가치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원커넥트의 주가가 1년 내 70% 이상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원커넥트 전략수석인 다이케는 "우리는 디지털화를 지향하는 금융사에 인공두뇌와 신경조직을 공급한다"고 말한다. 이 기업은 중국 최고 수준 금융사와 그 아래 단계 금융사의 99%를 고객으로 두고 있다. 아시아에서 사세를 확장하고, 연구소를 운영하는 미국에서 인재를 채용한다. 하지만 원커넥트를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궁극적으로 인터넷은행을 넘어 가상은행을 구축하려는 새로운 종류의 기업이다. 가상은행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컴퓨팅, 모바일인터넷, 5G,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이용해 고객모집과 투자 및 상품설계, 운영, 대출 등 은행의 모든 서비스를 대체한다는 개념이다. UBS의 휴 반 스티니스는 "이들 기업은 미국의 거물 은행들을 상대로 대리전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중국 등 경쟁국에 유동성 수도꼭지를 잠그며 견제하자 중국은 시간과 돈을 대거 투입, 민간트랙을 구축하며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또 '국제은행간 통신협정'(SWIFT)을 보완하기 위해 자체적인 통신협정을 만들었다. 언젠가 SWIFT를 능가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씨티그룹 최고경영진 파코 이바라는 "중국 기술기업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병행 금융시스템'(parallel banking systems)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은 각각 10억명 이상의 전자지갑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웹내 결제의 절반, 온라인 상거래의 3/4을 차지한다.

더욱 깊어진 금융배관 등장

결제시스템은 돈보다는 정보를 옮긴다는 편이 더 적절하다. 그 과정의 양쪽 끝엔 대개 은행이 있다. 은행들은 송금자의 신원이나 이용가능한 자금 등의 정보를 교환한다. 한 나라 내에서 은행들은 동일 언어로 의사소통한다. 그리고 송금이나 이체는 중앙은행 장부에 상계하면서 청산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간 결제는 복잡하다. 규정과 기준이 서로 다르다. 세계 공통의 중앙은행이 없기 때문에 돈의 이동을 기록할 글로벌 원장이 없다.

거액의 송금을 위해 금융권의 일반적인 해결책은 외환결제 제휴(correspondent) 시스템이다. 상호협정을 통해 A나라의 a은행은 B나라 b은행의 예금을 맡아둔다. b은행 고객이 A나라의 누군가에게 송금하고 싶다면, b은행은 a은행에 예치한 예금을 활용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많은 은행들이 그같은 협정을 맺고 있지 않다.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돈이 두 은행 사이에 잠시 머물러야 한다. 이를 위해 각 은행들의 ID와 상호간 데이터통신, 동일 언어가 필요하다.

SWIFT는 이 모든 것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수십년에 걸쳐 구축된 SWIFT의 네트워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여기에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정치적인 이유다. SWIFT는 벨기에 브뤼셀에 있지만, 사실상 미국의 입김을 강하게 받는다. 미국은 SWIFT를 움직여 우방을 압박하고 적국을 고립시킨다. 2018년 미국은 '이란 은행들을 시스템에서 배제하지 않으면 행동에 나서겠다'고 위협하자, SWIFT는 즉각 이를 따랐다.

하지만 SWIFT 네트워크가 워낙 복잡한 탓에 국가간 자금이동 속도가 둔화된다. 비용도 많이 든다. 고객이 범죄자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등의 많은 업무는 중복된다. 또 은행들은 예상 인출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상당한 유휴자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약 10조달러가 그런 용도로 묶여 있다. 게다가 해킹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2016년 북한의 해커들이 도난당한 SWIFT 식별자를 활용해 방글라데시중앙은행의 뉴욕 계정에서 8100만달러를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같은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 기업 '리플'은 다른 통화를 운용하는 국가들이 사용할 수 있는 암호화폐를 만들었다. 각국 정부들 역시 암호화폐 개발을 고심중이다. 중국이 가장 앞서 있다. 120개 이상의 관련 특허를 신청했다. 중국에 비판적인 매파들은 '일대일로 프로젝트 참여국에 디지털화폐 사용을 강제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전임 NSC 유럽·러시아 담당 고문 팀 모리슨은 "미국의 가치가 위험에 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은 국내적 목적에서 이를 추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은 현금없는 사회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기존의 지급결제 시스템이 중대한 고장을 일으킬 것에 대비해 디지털화폐를 대안으로 실험하고 있다. 중국은 또 페이스북이 출시하려고 하는 디지털화폐 '리브라'보다 앞서 관련 시장을 선점하려 한다.

다른 나라들도 돌아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에 나섰다. 홍콩과 태국, 싱가포르와 캐나다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가 국가간 거래하는 상업은행들에게도 활용될 수 있는지 공동으로 실험했다. 실험은 성공적인 것으로 입증됐다. 하지만 이에 참여한 공학자들은 해당 시스템이 거액의 자금이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더 멀리 나아가는 중국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나라들은 디지털화폐를 무역에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무기수입 자금을 대기 위해 암호화폐 거래소를 해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2016년 미국 민주당 서버를 해킹한 인프라에 돈을 대기 위해 비트코인을 활용했다. 하지만 암호화폐 지하경제는 협소하다. 블록체인분석회사 체이널리시스의 조너선 레빈은 "베네수엘라가 만든 암호화폐 '페트로'와 관련한 거래는 2019년 4분기 800만달러로 정점을 찍었다"고 말했다.

유럽은 물물교환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는 지난해 '인스텍스'(Instex)를 출범했다. 이란으로부터 원유나 식량을 사들이는 기업이 지급해야 할 액수를, 이란에 판매하는 유럽 기업의 영수액과 일치시키는 시스템이다.

원리상 상품은 돈 거래 없이 교환될 수 있다. 그러나 인스텍스가 첫 번째 거래를 성사시키기까지 14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이란보다 미국과 거래량이 훨씬 많은 유럽 기업들로선 미 정부의 제재대상에 오를 것을 두려워한다.

중국은 더 멀리 나아가고 있다. 2015년 '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s System)를 출범했다. 위안화를 기반으로 한 국가간 은행 지급결제 시스템이다. CIPS 역시 SWIFT처럼 타국의 지급결제 시스템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다. 현재 950개 은행이 이를 사용한다. SWIFT 가맹 은행 수의 10% 미만이다. 하지만 코넬대 에즈워 프래새드 교수는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CIPS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금융혁명은 소액 송금에서 일어나고 있다. SWIFT와 마찬가지로 미국 신용카드 시스템 네트워크는 대체가 어렵다. 회원 은행과 상거래 기업은 서로를 신뢰한다. 검증된 규정을 고수하기 때문이다. 은행과 기업은 카드시스템이 가진 결제플랫폼의 편리성을 높이 평가하다.

이 플랫폼은 모든 은행들 사이에 순포지션(net positions)을 계산한다. 그날 막판에 셈을 치러 주고받을 것을 상계한 뒤 잔여분을 배분한다. 따라서 경쟁 시스템이 뚫고 들어갈 여지가 적다. 2014년 미국의 제재로 미국 카드 시스템에서 배제될 것을 우려한 러시아는 자체 카드 시스템을 만들었다.

러시아 국내 카드의 17%가 이를 이용한다. 하지만 러시아 카드 총 발급수는 7000만장 정도다. 비자와 마스터카드의 50억장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규모를 중시한다면, 중국 국영 신용카드 유니온페이가 단연 압도적이다. 현재까지 발급된 카드가 76억장 정도다. 하지만 중국 밖에서 발급된 카드는 1억3000만장에 불과하다. 대개 해외를 여행하는 중국인 여행객들이 사용한다.

더 강력한 위협은 결제시스템에 대한 국가 주도의 개혁에서 비롯된다. 전 세계 약 70개국이 핵심 인프라를 통제하기 위해 스마트폰 스크린 터치만으로 실시간 자금이체를 가능케 하는 금융배관을 재구축했다. 유럽이 가장 진일보했다. 각국의 네트워크를 융합해 35개국 5억명 이상의 인구를 포괄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역시 시스템 융합에 사활을 걸었다. 올해 3월 5일 인도와 싱가포르는 각자의 결제시스템을 사상 처음 연계했다.

중국은 이웃 나라들과의 금융배관 연계 측면에서 뒤처지고 있다. 하지만 그리 중요하진 않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아태 지역의 무역 거대국가로서, 다른 국가의 발전에 무임승차할 수 있다. 비자USA 전 회장인 필 히즐리는 "일단 말레이시아가 자국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출범하면, 중국과 합작하는 방법을 찾아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5년 전만 해도 중국 제2선 도시에서 쇼핑하는 건 단조로웠다. 카드를 받는 상점이 거의 없었다. 상점 주인들은 카드수수료를 싫어했다. 단말기 접속 커넥션도 부족했다. 하지만 중국 전역에 스마트폰이 급속 확산했다. 이는 대다수의 고객이 미니단말기를 휴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QR코드의 개발도 결제 간편화에 크게 기여했다.

스마트폰과 QR코드의 결합은 쇼핑 혁명을 낳았다. 지난해 중국 소비자들은 모바일 구매에 347조위안(49조달러)을 썼다. 2013년 대비 35배 늘었다. 텐센트와 알리바바 두 거물기업이 시장의 92%를 양분한다. 텐센트 소유의 위챗페이는 P2P 금융서비스의 지배자다. 알리바바의 금융 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의 알리페이는 기업 지급결제 부문을 지배한다. 위챗페이와 알리페이의 전자지갑으로 못할 게 거의 없다. 택시요금과 진료예약 대금 등 거의 모든 것을 결제할 수 있다. 사용자에게 수수료를 부과하지도 않는다.

이들 기업은 중국 내 시장을 장악한 데 이어 이젠 글로벌 확장을 꾀하고 있다. 알리페이는 전 세계 56개국 상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또 아시아 9개국 전자지갑 기업의 지분을 사들였다.

앤트파이낸셜 국제화 수석간부 더글러스 피긴은 "다른 나라의 전자지갑 기업에 투자하고 있지만, 우리의 우선순위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일각에선 알리페이가 투자한 나라의 전자결제 시장이 임계질량에 이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닌가 의심한다. 컨설팅기업 '캐프러네이시아'의 제논 캐프런은 "꼭 앤트파이낸셜의 브랜드를 다는 건 아니겠지만, 그들의 목적 중 하나는 결국 국제적으로 각국의 전자지갑 플랫폼을 연계해 구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히려 상대국에서 중국 거물기업과의 연계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유럽의 전자지갑 기업 6곳이 알리페이의 QR 포맷을 채택했다.

물론 중국의 핀테크가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일부 시장에서는 여전히 신용카드 또는 은행간 기존 시스템이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지급결제 방법을 둘러싼 싸움은 더 큰 전쟁을 감추고 있다. 디지털 혁명의 기반이 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전쟁이다. 이 지점에선 확실히 중국이 승리하고 있다.

저금리에다 디지털화에 들어가는 높은 고정비에 압박을 받는 아시아 전역의 은행들은 클라우드 서비스로 이동하면서 규모를 빌리려 한다. 이들은 전문적인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기업이 소유한 방대한 서버에 자신의 데이터를 저장한다. 시장조사기업 '포레스터'의 데이브 바톨레티는 "아시아는 금융 클라우드 서비스 부문에서 유럽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전쟁터"라고 말했다. 하드웨어와 관련해선 알리바바가 최고의 기업이다. 이 기업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클라우드 인프라 중 1/5을 공급한다. 2, 3위 기업인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를 합친 것보다 많다.

중국 기술기업들은 소프트웨어도 장악하고 있다. 앤트파이낸셜과 텐센트는 방대한 양의 거래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자동화와 인공지능, 기계학습, 산더미같은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알리페이는 지난해 11월 11일 중국의 연례 온라인쇼핑 축제인 광군제에서 44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초당 최대 54만4000건의 주문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서버 다운없이 모든 주문·결제·배송을 클라우드에서 문제없이 소화했다. 텐센트 자회사인 '위뱅크'의 헨리 마는 "안면인식 도구의 오류 가능성은 100만분의 1"이라고 말했다. 사람의 눈은 1% 정도 된다.

두 거물기업이 거느린 디지털은행은 급속 성장하고 있다. 앤트파이낸셜의 자회사인 '마이뱅크'는 중국 1억개 중소기업 중 2000만곳에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200개 은행에게는 자사의 디지털장비를 대여해준다. 앤트파이낸셜은 최근 투자설명회에서 1500억달러 가치를 인정받았다. 텐센트의 위뱅크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자사가 만든 인프라를 오픈소스 기반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 외국계 은행들을 자사 플랫폼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준 가장 거대한 충격은 다른 거물 기업들에 경각심을 줬다는 것. 자산 1조달러로, 중국 1위 종합보험사인 평안보험의 최고혁신경영자 조너선 라센은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금융에서 급성장한 것을 지켜본 이후 우리도 클라우드 기업이 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평안보험은 지난해 매출 1640억달러의 1%를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자국의 안방시장에서 연마한 기술을 수출하기 위해 32개의 자립형 기업을 만들었다.

그 자회사 중 하나로, 가장 전략적으로 키우는 곳이 원커넥트다. 지난해 12월 뉴욕에 상장한 원커넥트는 클라우드 기반 금융서비스를 제공한다. 백오피스에서 고객대면 업무에 이르기까지 은행이 하는 모든 영역을 커버한다. 원커넥트의 첫 번째 외국 지점은 2018년 싱가포르에 문을 열었다. 현재 200명의 직원을 가진 기업으로 성장했다. 원커넥트는 유럽과 태국 등 해외 16개 시장에서 47곳의 고객사를 보유하고 있다. 태국의 경우 1~3위 신용카드사 모두가 원커넥트에 금융디지털화 책임을 맡겼다.

코로나19도 역풍이 아니라 순풍이 되고 있다. 직원들의 자가격리 등을 고려해 전 세계 수많은 은행들은 리스크관리와 같이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한 프로세스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원커넥트는 해당 시장을 잡기 위해 적극적인 매력공세를 펼치고 있다. 지난 연말과 달리 이번엔 비행기에 탑승할 필요가 없다는 후문이다.

내일자(15일) '영국 이코노미스트 스페셜리포트 V'로 이어집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스페셜리포트" 연재기사]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김은광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