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운영위서 논의 없이 폐기

혁신자문위 "의원소개 폐지"

임기말 폐기 규정 바꿔야

국회가 사실상 국민발안제와 같은 성격의 전자입법청원인 국민동의청원제도를 도입한 데 이어 국민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문턱을 낮추려고 했으나 운영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아 실패했다.

20일 국회 운영위에 따르면 국민동의청원이 국회 상임위로 직행하기 위한 조건인 '한달간 10만명 동의'를 '석달간 5만명 동의'로 바꾸는 내용의 '국회청원심사규칙 일부개정 규칙안'이 20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된다.

운영위 제도개선소위 일정이 잡히지 않았고 20대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끝으로 사실상 문을 닫을 예정이다.


이 규칙안은 "국민동의청원제도를 시행해 본 결과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조직화되지 않은 개인의 청원권을 보장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였고 정략적 오용 방지를 위해 엄격한 요건을 정한 당초 취지와는 달리 이슈 중심의 내용 위주로 동의 요건을 충족해 정치적 쟁점화에 이용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면서 "독일은 4주간 5만명 동의, 영국은 6개월이내 10만명동의로 규정하고 있는 해외사례를 감안해 국민동의청원의 성립 요건을 '30일이내 10만명이상'에서 '3개월이내 5만명이상'으로 완화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청원규칙을 처음 만들 때에 이같은 기준을 제시했으나 국회의원들은 국회 운영위 심의과정에서 '청원 남발'을 우려해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지난해 7월 이후 10개월간 운영해본 결과 오히려 일부 정치세력의 집단행동을 부추길 뿐 소수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의원소개제도 폐지하고 청원국 설치" = 국회의장 직속 혁신자문위원회는 또 입법청원제도 활성화를 위한 제도개선방안으로 '의원소개 제도 폐지'를 내놓았다. "지금처럼 국민들의 직접 참여욕구가 큰 시대에 의원소개제도는 적합하지 않다"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처럼 누구든 청원을 제기할 수 있고 일정요건을 갖추면 곧바로 정식 입법청원으로 접수될 수 있는 절차를 제도로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는 우선 의원소개제도를 유지한 채 전자입법청원을 운영하기로 했다.

전자입법청원이 활성화되고 의원소개에 의한 청원이 사실상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면 의원소개제도를 폐지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20대 국회들어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의원소개 청원은 지난해 5월의 '군소음 관련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었다. 정장선 외 11명이 김진표 의원 외 17명의 소개로 제출했다. 전자청원이 7월 17일부터 가동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많은 입법청원이 의원소개 대신 전자청원으로 옮겨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또 혁신위는 의원 소개 절차를 밟는 데는 입법 지원이나 남발차단 취지도 있는 만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청원국 설치를 주문하기도 했다. 혁신위는 "입법청원 의원소개제도가 없는 독일에서는 국회에 청원국을 두고 청원국 내에 정책영역별 전담부서를 두어 청원안을 1차로 거른 뒤 의장이 소관위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회 사무처가 제출한 규칙안에는 "국민동의청원의 내용이 둘 이상의 위원회에 관련된 경우 청원의 내용을 나누어 둘 이상의 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청원사항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부작용을 해소하고 충실한 심사가 이뤄지도록 하는 등 제도운영에서 나타난 미비점을 개선하려는 취지"다. 또 "의장은 국민동의청원의 청원자에게 통지한 내용을 그 동의자에게도 통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도 넣아놨다.

◆"임기말 폐기는 청원권 제한" = 국민들의 동의로 만들어낸 청원을 국회의원 임기에 맞춰 폐기하는 규정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통합당 이주영 의원은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일괄적으로 의안과 마찬가지로 자동 폐기하는 것은 국민의 청원권을 불필요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운영위 검토보고서를 "청원은 일반 법률안처럼 국회의원이나 정부가 제출한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이 제기한 민원의 일종"이라며 "국회의원의 임기가 만료되더라도 청원을 폐기하지 않고 계속 심사하는 경우 청원심사의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중영 의원의 청원폐기 금지)개정안의 취지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21대 국회 이것만은 바꾸자"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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