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민원 매년 7만~8만건, 금융분쟁 '부실 사모펀드 영향' 증가 … 금융교육 확대 필요성 커져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4월 금융소비자보호 종합방안을 발표했지만 하반기에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 사모펀드 사건이 터지면서 감독 부실에 대한 질타를 받았다.

금융회사들은 금융당국의 금융소비자보호 종합방안에 겉으로는 동의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1일 금융당국 관계자는 "DLF와 라임 사건이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회사들의 실질적 변화에 중요한 모멘템이 됐다"며 "은행장 중징계 등 금융회사들의 내부통제 부실 운영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물은 것은 결정적"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 내부에서 DLF 제재와 관련해 다소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법적 권한에 따라 금융위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에 각각 190억원, 160억원 수준의 과태료를 부과했고, 금감원은 은행장에 대해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확정했다.

금감원은 지난해 발표한 금융소비자보호 종합방안을 토대로 '2019년 금융회사들의 소비자보호 실태' 전반에 대한 점검을 조만간 진행할 예정이다.

◆소비자보호 강조, 금융민원은 증가 =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해마다 금융소비자보호를 강조했지만 전문가들은 그동안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건전성 감독에, 금융회사들은 실적 향상을 위한 영업에 중점을 뒀다고 지적했다. 금융소비자보호는 구호에 그쳤다는 것이다.


실제로 금감원에 접수된 금융민원은 지난해 8만2209건으로 2015년 7만3094건 대비 12.4% 증가했다. 2018년 8만3097건에서 2019년에 1000건 가까이 민원이 줄어든 것은 P2P투자 피해와 관련한 신청이 급감한 게 이유다. 2018년 P2P투자피해 신청이 몰렸지만 P2P업체는 금감원의 감독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투자자들이 민원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민원 중 분쟁조정 신청건수도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DLF와 라임 등 부실 사모펀드 피해자들의 분쟁조정신청이 급증했다. 지난해 분쟁조정신청은 2만9622건으로 2015년 2만2974건 대비 28.9% 증가했다.


◆미스터리쇼핑 결과, 끝까지 개선 확인 = 금감원은 2008년 12월부터 펀드 불완전판매 방지를 위해 미스터리쇼핑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2018년 파생결합증권(ELS, DLS, DLF 등) 판매와 관련해 판매실적이 많은 증권사 15곳과 은행 14곳에 대해 미스터리쇼핑을 실시했다. 당시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각각 미흡(60점대)과 저조(60점 미만) 등급을 받아 거의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평가항목은 적합성원칙, 설명의무, 녹취의무, 고령투자자보호제도 등이다.

금감원은 이들 회사에 대해 자체적인 판매관행 개선과 이행계획을 서면으로 제출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DLF사태가 터지면서 금감원에 제출했던 내용들이 대부분 이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 관계자는 "서면으로 제출받았던 내용들이 이행되지 않았지만 현장점검을 하지 않아 알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미스터리 쇼핑 결과와 후속조치를 계속 확인해서 개선이 이뤄지는지 끝까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력한 제재 필요, 영구 퇴출시켜야" = 최 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금융회사들이 소비자보호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려면 금융당국의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며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더 이상 금융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영구퇴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1월 미국 통화감독청청(OCC)은 존 스텀프 웰스파고 전 최고경영자(CEO)를 업권에서 영구 퇴출시켰다. 일부 웰스파고 직원들은 2011년부터 고객의 동의 없이 300만개에 달하는 입출금 및 신용카드 유령계좌를 개설해 실적을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웰스파고 이사회는 스텀프에게 지급했던 4100만달러의 스톡옵션을 몰수했으며 OCC는 영구퇴출과 함께 1750만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OCC는 "불합리한 영업목표를 설정해서 직원에게 목표 달성의 압력을 가한 것이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그동안 금융권에서 사고가 잇따랐고 그때마다 대책이 나왔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금융회사들이 제재를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영업으로 벌어들인 이익보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회사가 입게 될 손실이 더 크다고 생각하면 금융소비자보호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금융사고로 회사에 손실을 입힌 CEO 등 주요 경영진에 대해 이사회와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책임을 묻는다"며 "국내 금융회사들은 이사회와 주주가 책임을 추궁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오히려 경영진을 감싸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형식적 금융교육 탈피해야" =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금융교육이 질적으로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은 보다 수익률이 높은 상품에 눈을 돌리고 있지만 그 만큼 위험이 크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금융지식이 부족하면 금융회사들이 아무리 공시를 확대하고 상품설명서를 상세히 적시하더라도 제대로된 판단을 하기 어렵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한국금융소비자학회 정책 심포지움에서 "금융소비자 교육은 규제기관의 공시 확대 개입의 기본 전제인 금융지식 강화를 유효하게 만들어 준다"며 "정보와 지식이 없는 금융소비자의 실패는 소비자 개인의 후생을 감소시키고 부의 축적에 있어 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금융기관이 금융소비자의 약점을 이용하는 행태가 반복되면 금융에 대한 불신이 제도와 경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경제 성장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들은 최근 몇 년간 금융교육을 이어오고 있지만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천규승 한국금융교육학회장은 "금융회사들이 1사1교로 진행한 금융교육은 강사에 따라 교육의 질과 내용이 전혀 다르고 금융교육이지만 마케팅적인 요소가 컸다"며 "학교에서 배우는 금융교육과 1사1교의 금융교육이 서로 연계가 돼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는 이달초 '금융교육 개선 기본방향'을 발표했다. 학교 정규교육에서 금융교육을 강화하고 청소년과 고령층, 취약계층과 직장인 등을 상대로 실용적인 교육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양질의 교육인력 확보와 교육 콘텐츠의 체계적 관리와 전달채널을 다양화하기로했다. 금융위는 금융교육협의회 등과 함께 기본방향에 대한 세부 실천과제를 발굴·시행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금융소비자보호 패러다임을 바꾸자" 연재기사]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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