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반행위로 얻은 수입의 50% 불과 … '금융혁신상품, 분쟁조정 실효성 강화' 법에 담아야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이 8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금융회사 위법행위에 대한 과징금 부과액 규모는 '징벌'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웃긴다. 부과액이 위법행위로 얻은 수입의 10~20배는 돼야 한다."

26일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금소법에 담긴 '징벌적 과징금 제도' 도입에 대해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3월 금소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금융회사에 대한 금전적 제재 방안으로 '징벌적 과징금 제도'가 도입됐다고 밝혔다.


해당조항은 금융상품 판매·자문업자가 불완전판매 행위 등으로 얻은 수입의 50% 이내에서 금융당국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내용이다.

금융소비자단체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요구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해당조항이 삭제됐다. 분쟁발생시 금융소비자에게 유리한 '입증책임 전환' 문제도 '설명의무 위반'에 한해서만 적용되는 등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금융회사가 내는 과징금은 정부에 귀속되고 피해자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며 "피해자들이 민법상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승소하더라도 피해액의 일부만 배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펀드 사건 등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금융사고에 대해 향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 소비자보호를 등한시 하는 금융회사들의 영업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다시 논의해야 =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 발의한 금소법 제정안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포함돼 있었다. 금융상품 판매업자 등이 금소법을 위반해 금융소비자에게 손해를 발생시키면 손해를 배상하지만, 피해가 광범위하게 양산되는 등 위법성이 큰 경우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민법은 기본적으로 손해의 한도 내에서 배상하도록 돼 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은 징계의 의미를 담아 손해액의 3배까지 금융상품 판매업자에게 책임을 지우겠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된다고 해도 많은 사건들이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금융회사들이 금융사고에 따른 배상책임을 우려해서 불완전판매 등을 스스로 제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함께 금소법 제정 과정에서 쟁점이 된 것은 '입증책임의 전환'이다. 민법은 '주장하는 자에게 입증책임'이 있다는 점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금융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소비자에게 입증책임이 있다.

다만 복잡하고 전문적인 금융상품의 특수성을 고려해 금소법은 금융회사의 설명의무 위반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시 고의·과실의 입증책임을 금융회사가 지도록 했다. 당초 정부가 내놓은 법안과 최 의원 발의안, 이종걸 의원이 발의한 금소법 제정안은 설명의무 뿐만아니라 '적합성원칙과 적정성원칙 위반'에 대해서도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금소법은 금융소비자에게 부적합한 금융상품 계약체결의 권유를 금지하는 '적합성 원칙'과 금융소비자가 자발적으로 구매하려는 금융상품이 소비자의 재산 등에 비춰 부적정할 경우 이를 고지·확인하는 '적정성 원칙' 등을 판매원칙에 명시하고 있다.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한국금융소비자학회장)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입증책임전환의 문제는 민법의 기본원칙과 대립하는 측면이 있어서 이를 어떻게 조율하고 보완할지 검토가 필요하다"며 "향후 이같은 쟁점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정의연대·참여연대·경제개혁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금소법 개정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핀테크 규제완화, 소비자보호 방안도 = 금소법은 개별 법률에서 일부 금융상품에만 적용해왔던 '6대 판매규제'를 모든 금융상품에 적용시켰다. '6대 판매규제'는 △적합성원칙 △적정성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광고규제 등이다.

하지만 적용범위를 핀테크 등 금융혁신 분야로 확대 적용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금융혁신 분야는 핀테크 생태계 조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규제를 확대시켜왔다는 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를 방안을 마련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지급결제 수단이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지만 착오송금 등에 대한 법적 처리 방안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며 "핀테크와 결합한 새로운 금융상품들의 경우 금소법 적용대상의 범위에서 빠져있다"고 말했다.

이후록 법무법인 율촌의 수석전문위원도 금융감독원이 발간하는 금융감독연구에 금융소비자보호 관련 논문을 게재하면서 "금융업과 무관한 비금융업자의 금융산업 진입의 경우 규제 사각지대에 있어 전자금융보조업자 및 신종 금융회사, 신종 금융서비스업자의 소비자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권의 로보어드바이저의 경우 자산운용 알고리즘에 오류가 발생하거나 인위적인 조작 등이 있는 경우 다수의 투자자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보험의 경우 운행거리 연동보험 판매에서 빅데이터 분석 오류 등으로 인한 보험료 산출의 부정확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금소법의 금융상품 정의를 보면 은행법에 따른 대출, 보험업법에 따른 보험상품, 자본시장법에 따른 금융투자 상품 등으로 기존의 전통적인 금융상품으로 한정해 정의 및 규제를 하고 있어서 새로운 금융상품을 금소법 규제 대상으로 포섭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소액 분쟁은 금융당국 종결절차 필요" = 금융민원이 발생했을 때 금융당국이 분쟁을 조정하는 절차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소비자보호를 위해 필요하다.

금소법은 분쟁조정이 진행 중인 사건에서 금융회사가 소송제기를 통해 조정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정이탈금지제도'와 '소송중지제도'를 도입했다.

조정이탈금지제도는 소액분쟁(2000만원 이하)의 분쟁조정 절차가 완료될 때까지 제소를 금지하는 것이고, 소송중지제도는 분쟁조정이 종료되지 않은 사건의 소송이 제기되면 법원이 소송을 중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금융회사들이 금융당국의 분쟁조정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소송으로 가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소송에서 양측이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겠지만 금융소비자들이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법적다툼을 벌이는 것은 시간과 비용측면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일각에서는 일정 금액 이하의 사건에 한해 금융회사들의 소송을 제한하고 있는 영국의 사례처럼 '편면적 구속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편면적 구속력'은 금융당국의 분쟁조정시 조정 결정에 대해 투자자는 소송제기가 가능하지만, 금융회사는 수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다만 이같은 제도는 금융회사의 재판 청구권을 침해할 수 있어 위헌 소지 가능성이 있다.

지난 2006년 헌법재판소는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 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해당 조항은 징계를 받은 교원이 불복해 교원소청심사위에 재심을 청구할 경우, 심사위 결정에 대해 교원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법인은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헌법재판소는 학교법인에 대한 '재판 청구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이 사안을 금소법에 그대로 대입할 경우 '편면적 구속력'은 위헌 소지가 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아니라 2000만원 이하의 소액사건에 한정하는 등 일정 조건을 부과할 경우 위헌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

정 교수는 "편면적 구속력을 통해 금융소비자들을 보호하는 측면과 금융회사의 재판 청구권이 침해되는 부분을 비교해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소액사건으로 대상을 제한하면 위헌 소지가 줄어들고, 금융분쟁 사건의 상당부분이 소액사건이라서 금융소비자보호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분쟁조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당국에 종결권을 줄 필요가 있다"며 "금융감독원의 소비자보호 조직을 보다 확대하고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소비자보호 패러다임을 바꾸자" 연재기사]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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