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가족 연관 상임위 미배정 규정 '사문화'돼

'공정 기할 수 없는 뚜렷한 사유 인정 때' 불명확

검찰조사·재판중 의원, 법사위서 검찰 압박

이해상충 판단 기구, 의원·가족 정보공개 필수

행정부나 사법부 공직자 또는 공공기관 고위임원과 달리 국회의원들의 이해상충 행위 차단장치에 사각지대가 상당히 넓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의원 되기 직전에 있었던 직장 또는 업무와 연관된 상임위에 배정되거나 개인 신상과 직접 관련된 부처를 감시, 감사하는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등의 일이 전문성이라는 이름으로 비일비재하다는 지적이다. 의원 또는 이해관계자의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아 이해상충관계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2일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헌법 제46조 제3항과 국회법 제29조의2(영리업무 종사금지),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2(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의무)에서 국회의원의 이해충돌방지를 규정 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있어서 이해충돌을 실질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법상으로는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된 지 9일째 되는 오는 7일까지는 상임위원 배정이 완료돼야 한다. 각 교섭단체에서 상임위원별 명단을 제출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에게 선임권이 넘어간다.

윤미향 의원실 찾은 정청래-이수진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과 이수진 의원이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윤미향 의원실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일각에서는 21대 총선에서 적발되거나 고발된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의원들이 법사위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각 정당이나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됐거나 지난해 패스트트랙(신속안건지정) 처리과정에서의 몸싸움으로 재판이 진행중인 경우에도 법사위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사법부, 검찰, 경찰, 정부부처, 공공기관 등의 주요임원에서 곧바로 관련 상임위에 들어오는 경우도 많은 문제를 낳곤 했다. 전 직장과 업무를 옹호하거나 권한과 권리를 챙기려는 경향이 적지 않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각 기관에서는 출신의원들을 주요 로비대상으로 삼아 법안, 감사 등에서 우호적인 인사로 만드는 데에 전력을 쏟기도 한다.

의원 개인뿐만 아니라 존속 또는 비속 가족들과 연관된 부분은 아예 정보 자체가 공개되지 않아 이해상충 여부를 따지기도 어렵다.

국회법의 제척규정은 효력을 상실하고 있다. 이 규정을 근거로 제외된 상임위원은 거의 없을 정도다. 국회법 48조는 "의장과 교섭단체 대표의원은 의원을 상임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임하는 것이 공정을 기할 수 없는 뚜렷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해당 상임위원회의 위원으로 선임하거나 선임을 요청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교섭단체 원내대표는 '공정을 기할 수 없는 뚜렷한 사유가 있을 때'에 선임을 요청하면 안된다. 의장은 원내대표가 요구하더라도 같은 기준에 따라 선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기준이 불명확하다. 원내대표와 의장이 차단했을 경우 국회의원들의 반발을 막아설 만한 '뚜렷한 사유'가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직속 혁신자문위에서는 "공직자였던 사람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후 3년간은 근무했던 기관과 관련된 상임위의 위원으로 임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부동산 정책 결정과정에서 부동산 보유 의원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위원회 운영과의 이해관계충돌 방지를 위해 공직자윤리법과 국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국회의원의 이해충돌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제19대 국회에서 제출된 '부정 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안'에서 삭제됐던 공직자 일반을 대상으로 하 는 이해충돌방지 관련 내용을 법 개정을 통해 다시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국회법을 개정하여 위원회의 위원선임과정에서 이해충돌방지를 위한 제척·회피 방안을 마련하고 이해충돌의 판정 주체를 의원이 아닌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중립적인 국회의장 직속의 심의기구로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독립기구는 의원 개인의 영리행위 판정, 위원 선임과정에서의 이해충돌방지 심의의 사전적 기능 수행뿐 아니라 공직자재산공개제도에 따른 변동사항의 정보공개 및 관리업무를 포괄하는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고도 했다. 누구나 이 기구에 의원 개인이나 위원회의 이해충돌방지 관련 문제제기를 할 수 있고 기구는 이를 접수해 심의를 진행해야 한다. 기구는 또 심의결과에 대해 독자적인 정보공개권한도 갖게 된다. 영국 하원의 하원윤리규범'에서는 의원당선 1개월 이내에 의원의 모든 재정적인 이해관계를 의회에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의원이 등록해야 하는 이해관계는 총 10개의 범주로 상세하게 규정돼 있다. 의원은 본회의 및 위원회에서의 의정활동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된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사전에 이를 공표할 '의무'도 있다. 의원의 의정활동과 사적인 이해관계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문희상 전 의장은 20대 국회 말미에 국회법 개정안을 냈다. 이 개정안은 국회의원의 이해충돌 방지를 위한 의무규정과 표결 등에 대한 회피의무, 가족관계 및 재산현황 등에 대한 사전신고 의무를 새롭게 넣는 게 핵심이다.

국회법에 16장(국회의원의 이해충돌 방지)을 신설할 것을 요구했다. 사적인 이해관계를 '민법에 따른 가족, 그 가족이 소속된 기관·단체, 의원 또는 그 가족이 국회규칙으로 정하는 비율이상의 주식·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법인·단체 및 당선 전의 업무활동 관계인' 등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규정하고는 표결, 발언, 질문·질의, 상임위 배정을 차단하도록 했다. 사전신고 의무엔 '민법에 따른 가족 관계(생계를 달리하는 가족 포함), 가족의 직업과 소속기관 또는 기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등록하지 아니한 혼인한 직계비속 여성 및 고지거부 허가를 받은 직계존속·직계비속'의 등록대상 재산의 현황과 함께 당선 전 3년 이내의 취업, 사업 등의 업무활동 내역까지 포함시켰다. 또 매년 1월말까지 신고사항의 변동내역을 신고하도록 했다.

["21대 국회 이것만은 바꾸자"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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