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년 전 고수익 상품투자로 투자자 손실 급증 … 금융소비자 행동특성 연구해 감독에 반영

라임사모펀드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등 부실 사모펀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적 이슈로 불거졌지만 파생상품의 피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저금리 시대를 먼저 겪은 해외 주요국가들은 10~20년 전에 이미 고수익을 얻기 위해 복잡한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투자자보호를 위한 규제장벽을 세웠다. 또한 금융상품 불완전판매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행동경제학을 활용해 감독업무에 적용하고 있다.


2일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영국은 2001년부터 2002년 사이에 3~5년 만기까지 10% 정도의 고수익을 지급하는 일명 'Precipice bond'(절벽 채권)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해당 채권은 세계 주요 증시지수와 복잡하게 연계돼 이들 지수가 일정 수준이하로 떨어지면 원금손실이 급격히 일어나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예를 들어 유로스탁스50 지수가 20% 하락할때까지는 원금이 보장되지만 지수하락이 20~30%에서 지수가 1% 하락할때마다 원금이 1%씩 손실을 입고 지수가 30% 이하로 하락하면 지수가 1% 하락할때마다 2%씩 손실이 가중되는 구조다.

해당 채권 투자자는 25만명, 투자금은 50억파운드(약 7조6000억원)에 달했다. 투자자의 평균 연력은 60세 전후로 금융지식이 낮은 은퇴자가 많았고 목돈을 투자한 사례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대부분은 전화나 메일을 통해 전문가 조언없이 투자를 결정했고 금융당국의 감독권이 미치지 않는 외국금융회사가 관여된 경우가 많았다.

◆복잡한 금융상품, 각국에서 사회문제로 = 금융상품 중 복잡한 구조를 가진 파생금융상품은 일반 투자자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구조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고객에 대한 금융회사의 설명의무와 적합성 원칙 등이 지켜지지 않고 불완전판매된 사례들이 주요국에서 잇따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미국은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서 발생한 '절벽 채권' 사건과 같은 주가연계증권 불완전판매가 불거졌고 2000년대 중반에는 모기지 파생금융상품(채권) 사례가 발생했다.

미국 주요 상업은행들의 투자권유인들이 소매 투자자들에게 모기지 채권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손실 위험이 없는 상품처럼 설명한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법무부는 모기지 채권을 판매한 주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에게 100억달러(약 12조원) 이상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씨티그룹과 JP모건이 각각 약 100억달러, BOA가 167억달러의 과징금을 내는 것에 합의했다.

노르웨이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15만명 가량의 일반투자자가 70억달러 이상의 구조화상품에 투자해 큰 손실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판매된 상품은 은행의 예금이자보다 높은 이율을 지급했다. 판매은행은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대출해주는 마진대출의 형식으로 구조화상품의 판매수익과 함께 대출로 인한 수수료 수입을 함께 얻었다.


투자자에게 판매된 350개 상품 중 218개가 이같은 마진대출 형태였으며 노르웨이 금융당국의 조사결과 해당 상품 투자자들은 평균 2%의 수익을 얻었지만 제반 비용을 빼면 손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원금손실이 발생한 투자자는 은행으로부터 대출상환 부담에 시달렸다.

해당 사건 이후 노르웨이 금융당국은 전문투자자가 아닌 투자자에게 복잡한 구조의 상품을 팔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을 채택했다. 벨기에도 2011년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화상품을 개인투자자에게 판매하는 것을 중지시켰다.

◆홍콩, 투자자 3만명에 보상 명령 = 홍콩에서는 2003년부터 리먼브라더스가 발행한 '미니본드'라는 구조화상품이 퇴직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해당 상품은 우량한 기업과 금융회사들을 준거 자산으로 삼은 신용연계채권이다. 자산의 신용등급이 크게 떨어지거나 부도가 발생하지 않으면 예금이자보다 높은 금리의 쿠폰을 지급하지만 신용등급 강등과 부도가 발생하면 원금을 전액 잃게 되는 구조의 상품이다. 문제가 없을 것 같았던 해당 상품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사회적으로 파장이 커졌다. 21개 은행이 3만4000여명에게 판매했지만 126억 홍콩달러에 달하는 투자금이 미상환 상태가 됐기 때문이다. 당시 상품을 판매한 홍콩의 주요 상업은행들은 판매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원금 손실 위험을 정확히 알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홍콩 금융당국은 미니본드를 판매한 16개 은행을 상대로 약 3만명의 투자자에게 1조원을 보상하도록 명령했다. 투자원금의 최소 60% 이상을 강제로 지급하게 한 것이다. 이후 홍콩당국은 투자자보호를 위한 규제안을 발표했다. 규제안은 △핵심투자설명서 교부 △투자전 숙려제도 도입(구조화 상품 가입 후 2일간 취소 가능) △상품의 위험 등에 관한 주의사항과 고객의 소통내역들을 반드시 기록하고 보관 △ 판매업자에게 녹취의무 및 3개월간 보관의무 등이다.

유럽에서도 각종 규제대책이 시행됐으며 이후 유럽 구조화상품 시장은 성장세가 둔화됐다. 또한 보수가 높은 금융상품의 판매보다는 보수가 낮은 상품의 판매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행동경제학 접목해 금융역량 강화 = 주요국들은 금융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금융교육 강화뿐만 아니라 행동경제학을 접목시키고 있다. 지식을 전달하는 금융교육만으로는 소비자피해 예방에 부족하고, 소비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에 주목하면서 정책을 설계할 때 행동편향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행동경제학은 경제학에 심리학, 사회학 등을 결합해서 인간의 의사결정이 완전히 합리적이지만은 않다는 데서 출발한다.

영국 감독당국인 FCA는 행동경제학의 연구결과를 감독업무에 적용시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복잡한 금융상품에 대한 금융소비자의 이성적 판단과 계산에 한계가 있는데, 감독당국이 이를 간과하면서 소비자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FCA는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가 발생한 사건에서 금융회사가 약 20만명의 투자자에게 배상안내 서면을 보내도록 했다. 금융당국은 원문에 7가지를 변경한 안내 서면도 발송했다. 변경 사항은 △금융회사 로고 대신 '읽고 빠른 시일 내에 행동을 취해달라' △편지 상단에 금융당국 로고 기재 △글머리표를 더 눈에 잘 띄게 바꾸고 배상 안내편지를 발송한 이유나 배상청구방법을 개략적으로 제시하기 △본문 마지막에 고객서비스팀이 아니라 해당 금융회사 CEO 서명 기입하기 등이다. 원본 서신의 응답률은 1.5%에 불과했지만 개선된 편지의 응답률은 8배 높은 11.9%에 달했다.

글머리표를 바꾸고 개략적인 설명을 제시한 경우에 가장 효과가 컸다. 금융당국 로고를 넣은 것은 거의 효과가 없었고 CEO 서명을 기입한 안내는 응답률이 오히려 떨어졌다. 이 같은 연구결과를 보면 금융회사들이 금융상품의 정보를 단순히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들의 이해를 높이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금융상품의 공시내용만큼 공시방식이 중요하다"며 "금융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직관적이며 시각화된 위험·수익 정보를 제공하고 특정 펀드가 잘 맞지 않는 유형의 투자자를 적극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행동경제학 연구와 관련해 "영국 금융당국은 소비자의 행동특성 및 금융상품과 금융회사의 영업전략이 소비자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고 전담조직 설치 및 행동경제학의 통창력을 정책 수립과 금융회사 상품분석 등 감독·검사 과정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융소비자보호 패러다임을 바꾸자" 연재기사]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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