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정치상실시대' 지속, 협치는 말뿐

서로 고소 고발 남발, 정치의 사법화 부추겨

"권한 가진 여당·다수당이 많이 내놓아야"

'정치 상실 시대'.

20대 국회의 주요 특징 중의 하나였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교과서가 사라지고 '힘겨루기' '기싸움' 등으로 메워진 여야간, 진보-보수간 긴장관계만 높아갔다. 신뢰가 사라진 자리엔 고소와 고발이 뒤덮였고 이는 서로의 생채기만 다시 뜯어내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야기 나누는 김종인과 강기정 |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의 예방을 받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협치'는 말뿐이었고 청와대 회동은 형식에 그쳤다. 여야의 비타협 행태는 사법부에 정치적 판단을 맡기는 '정치의 사법화'로 번져 나갔다. 강자는 '법대로'를, 약자는 장외를 선택했다. 국회가 아닌 곳에서 지지층을 결집해 대리전을 치르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3일 여당 모 중진 의원은 "정치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이 이뤄져야 하며 대화와 타협은 가진 쪽에서 먼저 내놓는 데서 시작한다"면서 "여당이나 다수당이 여당이나 소수당에게 권한을 줘야 대화가 되고 타협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여당은 갖고 있는 권한을 놓지 않으려 하고 야당은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한다"면서 "서로 적절한 선을 넘지 않으면서 신뢰를 지켜야 하는데 그런 것을 하기에 불신의 골이 너무 깊어졌다"고 말했다.

◆너무 깊어진 불신의 골 = 지난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사태는 여야 모두에게 불신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거친 몸싸움은 대규모 고소고발로 이어졌다. 여야는 서로 체증한 자료를 검찰에 제출했다.

거친 말들도 오갔다고 한다. 보좌진들이 전면에 나섰다. 그러면서 여야 보좌진들간에도 서먹해졌다. 친교 모임이 사라졌고 심지어 21대 보좌진 채용에서 상대당 출신에 대한 검증을 요구하는 공문이 나오기도 했다.

모 보좌관은 "패트때가 주요 분깃점이었던 것 같다"며 "감정이 상한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보좌진은 서로 교류를 하지 않게 됐다"고 했다. 과거엔 여야간 보좌진 이동이 종종 있었지만 21대 들어서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신의 고리는 정상적인 '대화와 타협'을 어렵게 만든다.

21대 첫 원내대표 지도부의 협상이 제대로 안 되는 것 역시 '불신'에서 찾을 수 있다. 원내대표 지도부 첫 회동이후 김성원 미래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자들에게 "상임위원장 정수는 11대7로 정해졌다"면서 "위원장은 상임위 7개 배분이 끝난 다음에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언론플레이'라고 불쾌해 했다. "회동에서 숫자까지는 나오지 않았다"고도 했다. 여당 핵심관계자는 "몇 번 만나보니 협상하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신뢰를 갖기 어렵고 앞에서 말이 다르고 뒤에서 말이 달랐다"고도 했다.

이후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원내대표들을 초청한 청와대 회동, 원내수석부대표뿐만 아니라 원내대표들의 소주 만찬 등 수차례 모임과 협상이 이어졌지만 이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평행선만 달렸다. 그러곤 여야는 상대방을 '나쁜 관행'을 고집하는 과거식 정당, 법대로를 주장하는 독재 정당이라며 으르렁댔다.

◆불신의 끝은 고발 =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공개적으로 불신을 거론했다. 김 원내대표는 법사위원장 자리를 야당이 가져가면 체계 자구심사를 명분삼아 주요 법안을 붙잡아놓는 '나쁜 관행'을 반복할 것으로 봤고 주 원내대표는 상임위 배분 협상에 앞서 국회의장을 먼저 선출하면 상임위원 선임권을 활용해 여당출신 국회의장 주도로 '상임위원장 전석을 가져가겠다'는 엄포를 실행에 옮길 것으로 우려했다.

불신은 '대화와 타협'을 '굴복과 종속'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강경파가 득세하게 되고 상대방에 대한 말부터 거칠어진다. 강대강으로 치닫는 축적의 시간이 완료되면 삭발정치, 단식정치, 장외정치, 정치의 사법화로 이어져 왔다.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불거진 고소고발전은 여야 의원 28명의 기소로 이어졌다. 21대 총선과정에서도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 대표 등이 검찰고발됐다. 여든 야든 불리한 보도에는 '검찰고발'로 재갈을 물리려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의 사법화와 정치 실종은 지지층에만 쏠려 있는 정치지형의 현주소"라며 "당내 민주화 등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구조와 여야가 좀더 신뢰를 구축할만한 리더십, 허심탄회한 대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력은 여당이 풀어야 한다"며 "민주당이 177석으로 절대과반을 갖고 있지만 협치는 '올 오어 나씽'이 아닌 주고받는 것이고 그래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했다.

["21대 국회 이것만은 바꾸자"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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