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법사위원장 맡기도 … '의석'과 '협상' 따라 달라져

남은 건 '운영위=여당' … 여야합의 개원 관행도 무너져

상임위원장 배정 관행은 사실상 거의 깨졌다. 주로 여당과 야당의 몫으로 나눠 갖는게 '관행'이었지만 의석수 차이뿐만 아니라 각 정당의 무게중심을 둔 가치나 정책에 따라 원하는 상임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여전히 '관행'으로 남아있는 것은 운영위원회 정도다. 운영위는 국회 의사일정과 함께 국회법까지 다루므로 '1당'이 갖는 게 관례일 것 같지만 청와대를 주요 피감기관으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여당'이 맡아왔다. 운영위원장은 대통령 참모들을 불러오는 회의 소집과 대통령비서실의 민정수석 등 증인채택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제21대 국회 첫 본회의 | 제21대 국회 첫 본회의가 열린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의사진행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20대에서 '관행' 보다 '의석' 중요 = 20대 국회에서 '관행'이 대거 파괴된 것은 의석차이 때문이었다. 2016년 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이 123석 대 122석을 얻었다. 단 한 석 차이로 여소야대로 전환했다. 1당인 민주당과 2당인 새누리당이 '관행'이 아닌 '협상'에 의해 상임위원장 자리를 배분했다. 과반의석을 가진 정당이 없는 만큼 국회의장을 어느 당이 가져가느냐까지 협상 대상에 올랐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소수정당이 됐다. 과반을 확보하지 못했고 1당도 아니었다.

전반기 원구성 협상에서 야당인 민주당은 국회의장과 예산결산위원장을 잡았다. 그리고는 전략적으로 환경노동위, 외교통일위, 보건복지위, 국토위를 확보했다. 농해수위와 여성위와 '군기반장' 윤리위도 가져왔다.

새누리당은 여당이라는 이유로 운영위, 정보위, 국방위를 가져갔다. 기재위, 정무위 등 알짜 상임위도 챙겼다. 예결위 대신 법사위를 선택했다. 17대부터 야당이 가져왔던 법사위원장 자리를 여당이 가져간 셈이다. 집권여당으로 게이트키퍼(문지기) 역할을 해온 법사위에서 제1 야당의 돌파를 막아서겠다는 계산이었다.

2017년 정권교체가 이뤄지자 민주당은 곧바로 '관행'에 따라 운영위원장자리를 내놓으라고 야당에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에서 이름을 바꾼 자유한국당은 버텨냈다.

여당이면서 원내 1당인 민주당과 야당으로 전락한 한국당의 2018년 5월부터 시작한 후반기 원구성 협상에서는 국회의장, 운영위원장, 법사위원장, 예결위원장이 관건이었다.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국회의장과 운영위원장을 얻고 법사위원장과 예결위원장을 내줬다. 민주당은 전반기 여당인 한국당이 가져갔던 기재위, 정무위, 국방위, 행안위를 가져갔고 야당으로 전락한 한국당은 국토위, 외통위, 복지위, 환노위를 확보했다.

산업위는 야당 몫으로 굳어졌고 정보위도 원내 3당인 바른미래당이 가져갔다. 국방부, 통일부, 외교부, 국정원 등을 관할 기관으로 갖고 있어 전통적 여당몫이었던 국방위, 정보위, 외통위 역시 야당에서 차지한 셈이다.

◆법사위원장은 야당 몫? = 법사위원장 자리를 야당이 맡기 시작한 것은 17대부터였다. 1987년 민주화이후인 13대 국회부터 15대까지 여당인 민자당과 신한국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독차지했다. 김대중 대통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후 새천년민주당은 16대에서 한나라당에 법사위원장 자리를 양보했다. 민주당 모 인사는 "김 대통령이 협치차원에서 당시 내준 게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확보해 과반 1당이 된 17대에도 야당인 한나라당에 법사위원장 자리를 양보했다. 그러고는 18대와 19대땐 보수진영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민주당이 소수야당으로 떨어지자 민주당이 선례를 들어 법사위원장 자리를 고정적으로 받았다. '관행'이 굳기 전에 수차례 깨진 셈이다.

◆관행을 깨는 협상 = 관행은 시대의 흐름이고 협상은 그 관행을 깨 왔다. 민주당이 20대 후반기에 국회의장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예결위와 법사위를 양보했고 이 선택은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주효하게 작용했다.

정보위 소속 모 여당 의원은 "워낙 투명해져서 정보위, 국방위, 외통위 위원장 자리를 여당이든 야당이든 구가 가져가느냐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서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했다.

위원장의 역할이 법안 상정, 회의 개시 여부 등에 있는 만큼 자동상정, 자동개시를 법에 못박고 법사위 체계자구심사권을 아예 없애거나 일정심사기간(30일정도)을 지나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토록 한다면 상임위원장 배분협상이 지난하게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관행' 주장이 불필요하다는 얘기다. 예결위 역시 '예산 나눠먹기' 의혹이 있는 소위를 공개해 '이권'을 줄이면 원구성 협상이 원활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여당 핵심관계자는 "국회의장마저 법에 따라 제 1당이 아닌 과반표를 확보한 정당의 추천의원이 되는 것처럼 더 이상 관행은 통하지 않는다"면서 "상황에 따라, 정당간 연대 등으로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의 말처럼 '21대에서는 1967년이후 여야간 합의로 열었던 개원'을 절대과반인 177석을 확보한 여당이 단독으로 여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는 모습은 '더이상 관행은 없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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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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