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부족 방치로 백약이 무효 … "간호사 인권침해는 환자안전 위협, 공적대응 필수"

간호사 간 괴롭힘(태움)이 일반 직장 내 괴롭힘과 성격이 다른 점은 그 후유증이 환자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심각성에 있다. 보건복지부는 태움이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관련이 있다는 판단 하에 2018년 3월 20일 정부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병원업계도 자정 노력을 선언하는 등 여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간호 현장에서는 태움이 여전하다. '태움'이 병원 내 간호인력의 부족과 연관돼 있는데, 정부 대책에서 이 부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 … '아직도'│고 서지윤 간호사 사망사건시민대책위와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사건 공동대책위,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관계자들이 15일 서울 청와대 앞에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경력 28년차 서울지역 K대학병원 K간호사는 "태움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면서 "이는 간호사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간호인력 부족 등 병원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7년 경력 Y종합병원 G간호사도 "병원 내 괴롭힘 행동을 줄이자는 여러 이벤트들이 있었고 노조 상담 등 개선 노력도 있어왔다"며 "하지만 열악한 근무환경과 인력 부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그 효과는 유명무실하다"고 말했다.

◆ 간호계 병원계 자정노력 불구 성과 한계 = 보건복지부는 2018년 3월 태움 근절 등 인권침해 방지안을 담은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당시 복지부는 "의료현장의 특성상 의료인 간 인권침해가 환자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 이를 엄중대처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대책으로 의료기관 내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대응체계를 마련하고 전문의료인으로서 인권교육 및 신규간호사에 대한 교육지원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대한간호협회도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인권침해 근절과 병원 내 괴롭힘 예방 활동을 진행해 왔다. '모든 간호사를 동등한 동료로서 상호존중하고 언어적 물리적 폭력 등 비인권적 행위 금지와 경직된 문화 혁신'을 우선 실천과제로 자정노력을 제시했다. 또한 '행복한 간호사, 국민건강권이 첫걸음입니다' 등 포스터와 뱃지 제작 배포, 신규간호사데이 진행, 일하기 좋은 조직문화 조성 캠페인과 간호사 대상 인권교육, 간호사전용 열린콜센터 '널스톡' 운영, 회원 고충사례 홈페이지 접수 등 활동을 진행했다. 나아가 협회는 정부에 간호인력 확충을 요구했다.

병원들도 상담소를 열고 지지활동을 하거나 교육을 통해 간호사 간 협력과 소통을 다지는 노력들을 진행했다. 그러나 2년 지난 지금까지 각계의 태움 근절활동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는 나오지 않았다.

현장 간호사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다. 우선 태움의 빌미를 제공하는 간호사 부족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고 신규 간호사의 부실한 현장적응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간호협회에 따르면 간호대학과정에 1000시간의 실습시간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임상현장이 워낙 빠른 속도로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어서 병원 취업 후 자신이 담당하게 될 분야에 대한 보충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부 병원에서는 신규 간호사를 일정기간 교육훈련하는 '프리셉터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기간이 수주부터 2개월 이내로써 충분하지 않고, 일반 경력간호사가 환자를 담당하면서 신규간호사 교육을 병행하다 보니 실습다운 실습을 받지 못한 채로 환자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G간호사는 "사소한 실수가 환자안전으로 이어지는 간호업무의 특성 상 긴장도가 높고 아직 미숙한 신규간호사는 스스로 위축되고 실수할 가능성도 높다"며 "이 때문에 프리셉트 간호사는 자신이 돌보는 환자들 챙기랴, 신입 간호사 교육하랴, 책임감만 높아져 더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태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신규간호 교육전담 간호사 배치 인센티브 필요 = 병원 내 신규간호사 교육을 전담하는 경력간호사 배치의 필요성이 다시 강조된다.

윤석희 여주대 교수는 "신규간호사의 초기 적응과 임상수행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프리셉터의 역할이 중요하다. 프리셉터를 통해 직무태도 가치관까지 배울 수 있으므로 프리셉터의 선발절차, 프리셉터의 훈련프로그램 개발 및 역할 훈련이 요구된다"며 "교육전담간호사 배치를 위한 인센티브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6개월~1년까지 신규간호사에게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임상적응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경우 2018년부터 신규간호사의 1년간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 신규간호사의 취업지속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경력간호사가 늘고 이들이 의료현장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한편 간호계의 엄격한 위계질서 문화도 태움의 일부 요인으로 작용한 측면을 고려해 간호대 교육과정에서 태움 예방교육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교수는 "간호사는 협업을 통해 환자에게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므로 조직원간의 의사소통과 신뢰가 중요하다"면서 "간호대학은 간호사들이 학생 시기부터 서로 격려하고 힘듦을 나누는 공감력과 소통능력을 향상시키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간호협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신규간호사 이직률은 45.5%, 간호사 평균 근무 연수는 5.8년에 불과하다. 전체 면허자 수 대비 임상활동 간호사 비중은 51.9%로 OECD 회원국 평균 70%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지표들은 간호사들의 근로환경이 얼마나 열악한 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이런 근로환경에서는 간호사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여유를 누릴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나아가 개인의 삶까지 파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2017년 간호협회가 7275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2017년 12월 28일∼2018년 1월 23일)에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우가 2975건으로 40.9%로 나타났다.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폭력 경험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경우가 18.9%나 됐다. 생리휴가를 부여하지 않은 경우가 926건, 임산부 간호사의 동의 없이 연장 및 야간근로를 시키는 경우가 635건으로 나타났다.

간호협회는 태움 등 간호사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의료가 시장경제 논리로만 흘러가지 않도록 관련법령의 준수 및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 등을 통해 임상간호사의 적정배치가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건강 최전선 '간호환경' 개선 시급" 연재기사]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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