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위험요인 고도화·전문화·복잡화 추세 … 현 물량위주 행정 "걸림돌"로 작용

문재인정부가 산재사망자 절반감소를 목표로 인력과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산재사망자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4월 29일에는 경기 이천 물류창고 공사현장 화재참사로 38명이 노동자가 사망했다. 2008년 1월 이천 냉동창고 화재참사 이후 12년 만에 비슷한 사고가 또 발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모델인 영국에서 배울 것은 처벌만이 아니라 전문적인 행정조직이라는 지적이다.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역량있는 산재예방행정을 위해서는 고용노동부로부터 독립된 외청 조직인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2회에 걸쳐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필요성과, 설립방안에 대해 알아본다.


문재인정부는 산업안전보건 근로감독관 인력을 2배 이상으로 증원했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은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 시스템"이라며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역량있는 산재예방행정이 되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로부터 독립된 외청 조직인 '산업안전보건청'이 설립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주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영등포갑) 주최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이 우선이다'란 주제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입법공청회'가 열렸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이날 공청회 기조발제에서 "노동자수 대비 산재예방 행정인력 비율로 보면 우리나라가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면서 "유해위험요인이 고도화·전문화·복잡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물량위주의 행정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오히려 산업안전보건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48년 사회부 노동국 기준과에서 출발 = 우리나라 산업안전행정업무는 1948년 11월 보건사회부의 노동국 기준과에서 출발했다. 1963년 8월 보건사회부 노동국이 외청인 '노동청'으로 승격한 뒤 1966년 12월 노동국 산업안전과가 신설됐다. 1976년에는 노동국에서 근로기준관 업무로 변경됐다. 1981년 4월 노동청이 '노동부'(현 고용노동부)로 승격되면서 근로기준국 산업안전과에서 안전업무를 수행했다. 1989년 1월에는 노동부에 산업안전국(현 산재예방보상정책국)이 신설되면서 산업안전보건행정을 비로소 노동부 내 국 단위에서 담당하게 됐다.

지방행정조직의 경우에는 지방노동관서의 근로감독과에서 일반근로기준 업무와 함께 담당하던 것을 1987년부터 산업안전과(현 산재예방지도과)를 신설해 전담하게 했다.

한편 1987년 12월 노동부 외곽조직으로 공공기관인 한국산업안전공단(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공단)을 설립했다. 1977년 4월 설립된 국립노동과학연구소 기능은 점진적으로 공단으로 이관됐다.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행정조직은 확대·발전되면서 외양적으로는 상당한 규모와 기본적인 형태를 갖춰왔다. 하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오래 전부터 행정조직 안팎에서 전문성 부족 문제가 제기됐다.

정 교수는 "조직적 능력, 행정시스템 개선 없이 양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한마디로 '고비용 저효과' 행정구조"라고 비판했다.

◆'고비용 저효과' 행정, 산재예방 매우 제한적 = 산업안전보건에서 현재 요구되는 △전문성 △효율성(효과성) △특수성 △독립성(자율성) △능동성을 실현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현행 행정조직은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산업안전보건업무에 범용인재를 채용해 고용부 내의 모든 업무를 대상으로 순환보직을 시키는 등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지 않는 구조라는 것이다.

전문성 부족 때문에 비효율적인 업무처리가 구조화돼 있고. 능력과 성과에 따른 인사가 이뤄지지 않는 등 산업안전보건행정의 효율과 효과가 떨어진다.

또 산업안전보건업무의 특수성과 이질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인사·조직관리, 업무처리 등이 산업안전보건행정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산업안전보건행정 담당직원의 채용, 직무교육, 경력관리 등에서 독자적인 채널과 운영체제를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능동적이고 선제적인 행정보다는 제재 위주의 단기적이고 현상적인 접근이 산업안전보건행정의 주된 기조를 이루게 됐다.

정 교수는 "이러한 행정조직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점점 전문화·고도화·복잡화돼 가고 있는 안전보건환경·기술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가기는커녕 외부의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경직적 대응으로 산재예방의 기대효과가 매우 제한된다"며 "고용부로부터 독립한 외청 조직인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해야 한다"고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산업안전보건청의 설립과 강화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정 교수는 "일차적으로는 산업안전보건청을 고용노동부의 산재예방조직과 기능을 그대로 이관하는 형태로 조속히 출범시켜야 한다"면서 "그 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행정체제로 갖춰나가는 수순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행정 개편할 때다" 연재기사]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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