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법원·헌재는 불용 … 감사원은 편성 안 해

국회 예산심사 때 사전검증 '예외', 감시 사각지대

감사원 "연례적, 예측 가능 경비로 집행 안돼" 지적

5대 헌법기관에는 별도의 쌈짓돈이 있다. '예비금'이다. 기획재정부에서 통제하는 예비비와는 다소 다르다. 다른 부처는 필요한 경우에 기재부로부터 받아 쓰지만 헌법기관들은 예산을 편성할 때 별도로 배정받는다. 물론 사용하기 전에는 기재부와 승인절차를 거치기는 하지만 그리 까다롭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국회에 제출된 '2019년 회계연도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예산을 편성때 들어간 예비금이 23억8500만원이었다. 국회가 받아놓은 예비금이 13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대법원은 6억원, 중앙선관위는 4억6000만원, 헌법재판소는 2500만원을 예산에 포함시켰다. 감사원은 아예 배정받지 않았다.

기획재정위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 | 기동민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 위원장이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성철 기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전액 불용처리했다. 전혀 쓰지 않은채 국고로 반납했다는 얘기다. 남은 기관은 국회와 중앙선관위다.

◆국회 예비금 13억원 관행 편성 = 국회는 13억원의 예비금을 특수활동비에 6억5000만원, 업무추진비에 3억2500만원, 직무수행경비에 3억2500만원을 배정했다.

국회는 같은 2019년 예산에서 국회 특수활동비를 전년 62억7200만원에서 9억8000만원(84.4%)나 줄였지만 다른 곳에서 일부 보충한 셈이다.

당시 유인해 사무총장은 "외교, 안보, 통상 등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 외에 모든 특수활동비를 반납하고, 내년도 특수활동비도 대폭 감축하기로 했다"며 "교섭단체와 상임위원회 운영지원비, 국외활동 여행경비와 식사비 등 관행적으로 집행되던 특수활동비를 모두 폐지한다"고 했다.

예비금의 특수활동비는 '관행 집행 특수활동비'의 예외였다. 2018년 편성된 13억원의 예비금은 특수활동비에 4억8750만원, 업무추진비에 1억6250만원, 직무수행경비에 6억5000만원이 나눠 배정되는 등 관행적인 특수활동비 사용이 이어졌다. 올해와 내년에도 '헌법기관의 자율성 보장과 입법활동 지원' 명목으로 13억원이 예비금으로 들어가 있다. 2017년에는 13억원을 특수활동비 6억5000만원, 직무수행경비 6억5000만원으로 나눴고 2016년에도 같은 금액을 같은 액수로 분배한 것을 보면 통상적으로 특수활동비와 직무수행경비로 '관행'처럼 활용해 온 것으로 보인다.

국회 관계자는 "예비금에서 특활비를 쓴 것은 오래됐다"며 "국회라는 곳의 정치적 특수성을 감안해달라"고 했다. "예비비를 배정해 쓸 때도 기재부의 승인을 받고 있다"고도 했다.

◆선관위 "선거구획정위 운영비" = 중앙선관위는 2019년에 선거구획정위 운영비와 제2회 동시조합장선거 내부 평가 등을 이유로 4억6000만원을 배정받아 운영비에 1억5903만원, 여비에 5400만원을 지원했다. 업무추진비는 1억6358만원, 직무수행경비는 500만원이었다. 연구용역에는 5200만원, 유형자산 구입에는 2638만원이 제공됐다. 2018년에는 재보궐선거 소요경비를 충원하는 데 썼다고 했다. 4억6000만원으로 운영비 1억원, 업무추진비 2억2000만원, 직무수행경비 1억4000만원이 지원됐다.

2017년에는 조기 대선관리 등으로 1504억원을 배정받았다. 2016년에는 4억6000만원을 운영비(1억원), 업무추진비(2억원), 직무수행경비(1억6000만원)로 나눠 썼다.

대법원은 2016년에 국가배상금 1579억원, 국제투자분쟁 14억원 등 1855억원을 배정받았다. 2017년에 '사실심 법원구조 개편을 위한 활동비'로 쓰기 위해 6억원을 예비금으로 확보, 업무추진비와 직책수행경비로 각각 3억원씩 배정했고 이중 직책수행경비는 모두 사용한 반면 업무추진비는 거의 쓰지 않은 채 2억9800만원을 불용처리했다. 2018년에는 2275억원을 국가배상금, 최순실특검과 드루킹특검 운영비로 썼다.

헌재는 2016년에 도청장치 구입비로 2500만원을 썼으며 2017년에는 같은 금액이 배정됐으나 불용했다. 이후에도 헌재는 동일한 규모로 '관행적으로' 배정받았지만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한편 예비금은 예비비와 함께 사전 심의가 이뤄지지 않은 '입법부 예산심의권 사각지대'에 있다는 점에서 헌법상 독립기구라고 하더라도 관행처럼 일상적인 경비로 집행할 경우엔 '쌈짓돈'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지난 2013년 예비금 감사를 통해 법무부 법원행정처 등에 대해 "앞으로 예비금을 연례적으로 발생하여 예측이 가능한 일상적·경상적 경비로 집행하는 일이 없도록 예비금 집행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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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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