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체 의지·노력 관건 … 백신 나와도 '회귀' 안될 것

"흑사병이 중세를 바꿨다고 말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당시 사회 문제를 고치려는 수많은 사람들 노력이 있지 않았을까요? 전염병이 사회 변화를 만든 진짜 동력일까요?"

지난 여름, 코로나 이후 우리 사회와 도시의 변화를 연구하기 위해 모인 서울연구원 연구원들 앞에 질문이 놓여졌다. '코로나 때문에 한번도 보지 못한 세상이 왔다', '흑사병이 중세를 바꿨듯 코로나가 현대인 삶과 사회를 바꿀 것'이라는 예측이 넘치던 때였다.

미래 도시에서는 기존 도로 주차장 등을 보행 자전거 PM(개인용 이동장치)을 위한 공간과 생활권 녹지로 활용할 수 있다. 자전거/PM 전용도로 상부와 건물벽면엔 태양광 시설이 설치, 운영될 수 있다. 사진 서울연구원 제공


하지만 황민섭 서울연구원 도시경영연구원 연구위원 등은 다르게 생각했다. 사회 변화를 이끄는 주된 힘이 흑사병 코로나 등 감염병인가 아니면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분투와 고민인가.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도시의 미래가 전혀 달라질 것이라 판단했다. 연구의 방향도 전염병 자체가 아닌 우리 의지가 만드는 변화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치료제 나오면 이전으로 돌아갈까 = 일각에선 백신과 치료제가 나오면 우리 일상이 팬데믹 이전으로 빠르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연구팀의 결론은 다르다. "코로나 이전으로 단순 회귀는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언택트 시대는 코로나19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사회가 움직이는 기반이 바뀐데 원인이 있다. 커다란 공장에 모여서 일하는 방식은 산업혁명시대에서 출발했다. 산업혁명의 기반은 '엔진'이다. 증기기관 같은 엔진을 중심으로 모이고 일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 사회다.

흩어져서 일하는 방식은 이미 오래 전에 우리 앞에 다가왔다. 팬데믹이 그같은 방식을 확산하고 선택사항이었던 '언택트'를 필수조건으로 바꿨을 뿐이다. '오토매틱(Automatic)' 사례가 대표적이다. 회사는 2005년 워드프레스라는 웹사이트 제작 도구를 개발해 설립됐다. 월간 어플리케이션 순방문자수가 1억4800만명으로 해당 분야 시장선두기업이지만 전 세계 75개국 1176명 직원이 모두 원격으로 근무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원격근무의 효율성과 성과를 계속 검증해왔고 이미 정착한 사례다.

◆일하는 방식 가장 크게 변할 것 = 원격, 언택트 외에도 도시 변화의 가장 큰 모습은 일하는 방식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게 연구팀 주장이다. 특히 이에 따른 새로운 노동문제가 사회 갈등의 또다른 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시간이 흘러도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 생산직이 그렇다.

필수근무인력도 있다. 안전·방역분야 인력은 감염병 시대, 되레 일이 늘어난다. 노동자들은 재택·원격근무 혜택을 볼 수 없는 이들과 일자리 걱정은 없는 대신, 과중한 노동시간으로 삶의 질이 계속 떨어질 이들도 있다.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일자리가 분화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고민이 생겨날 수 있다.

산업구조 변화의 또다른 큰 흐름은 플랫폼 노동·플랫폼 노동자 양산이다. 배달앱, 대리기사, 공유택시 등 새로운 유형의 노동과 노동자는 이미 그 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고 코로나로 인해 증가 속도와 규모가 더 커졌다. 이들을 사회와 기존 산업 구조가 어떻게 보호하고 자리매김하느냐에 따라 노동과 사회 문제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 이야기다.

◆안보 주체, 국가에서 도시로 = 팬데믹 이후 도시 변화에서 새로 떠오른 화두 중 하나는 '안보'다. 전통적으로 안보는 국가차원 문제였다. 주체뿐 아니라 대상도 국가였다. 하지만 팬데믹시대엔 사람이 안보 대상이 된다. 바이러스로부터 사람, 시민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도시 공동체의 역할로 부상한다. 하지만 기존 국가중심 안보개념에선 그 간극이 너무 크다. 중간에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단위, 도시가 그 기능을 해야 한다.

코로나 국면에서 우리는 도시의 역할을 목도했다. 중앙정부의 팔, 다리 구실을 하고 세금의 중간 통로 정도로 생각했던 도시, 지자체들이 저마다 창의적 방법으로 감염병과 싸웠다.

기초지자체, 다시 말해 지방 소도시들은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감염병으로부터 인간 안보를 맡았다. 선별진료소를 만들고 드라이브 스루 검사소를 만들고 급기야 찾아가는 이동식 검사소도 만들었다. 학교를 폐쇄하고 회사 문을 닫고 지자체 업무를 중단하는 등 자율적으로 대처했다. 동네 사우나, 방판업체 방역 및 단속, 우리 지역 확진자 동선 파악 등은 국가가 아닌 지자체가 잘 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다.

◆우리 앞에 남겨진 질문들 = 서울연구원 19명 연구위원은 이같은 고민과 질문을 모아 '감염병 시대 도시의 미래'라는 단행본을 펴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도시 변화에 대한 성찰, 실천 방안을 한권의 책에 담은 셈이다. 사회가치, 도시공간 변화는 물론 사회안전망·예술과 교육·경제·외교 등 분야별 고민과 바람직한 변화 방향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연구를 총괄한 황민섭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 특히 도시를 배경으로 한 변화는 예측이 어렵다"며 "이면이 복잡하고 도시 곳곳이 이미 수많은 관계들의 집합으로 얽혀있는 만큼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변화의 양상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로 인해 도시 변화가 당연히 주어지는 것처럼 인식하는 흐름이 있지만 이는 오판"이라며 "감염병은 촉매일 뿐 변화의 방향은 결국 그 사회 구성원의 지혜와 성찰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내일신문-서울연구원 공동기획] 도시 변화의 방향은" 연재기사]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이제형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