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시장에만 쏠린 유동성 … 소비·고용 등 실물 경제지표 여전히 찬바람

GDP규모 2배 달하는 기업·가계부채 … 금융권 대출채권증가율 주목해야

2021년 증시 개장 첫날 코스피 지수는 또다시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3000선에 바짝 다가섰다. 유럽 주요국 증시도 백신발 낙관적 경제전망에 대부분 상승 마감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일 만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사상 최대로 늘어난 유동성이 실물경제를 견인하는 데 쓰이지 않고 자산시장에 투입되면서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간의 괴리가 점점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정부 기업 가계 등 각 경제주체가 소득 대비 과도한 수준으로 부채를 증가시킨 점은 더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급격하게 늘어난 부채의 역습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금리 등 풍부해진 유동성에 증시 급등 =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일 코스피 지수는 지난해 말보다 70.98p(2.47%) 오른 2944.45에 마감하며 역대 처음으로 2940선을 넘어섰다. 해를 넘어 6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 행진이다.


지난해 글로벌 증시는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고치 행진을 거듭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사상최저 수준의 금리와 사상최대 규모의 유동성 덕분이라고 평가했다. 각국 정부는 지난해 초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 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한국 또한 기준금리를 1.25%에서 0.50%로 75bp 인하했고 금융업권은 한계업종 차주에게 신규 대출 및 보증과 만기연장 등 261.1조원을 지원했다. 각국 중앙은행의 대폭적인 기준금리 인하와 정부 차원의 막대한 유동성 지원에 힘입어 글로벌 금융시장은 신속히 회복됐다. 그 결과 주요 국가의 주가지수는 2~3분기 중 대부분 코로나19 확산 이전 수치로 돌아갔고, 이후에도 상승세를 지속, 사상최고치 경신을 거듭했다. 미국은 4분기 중 다우존스와 S&P500, 나스닥 등 3대 주가지수가 모두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고 한국도 주가지수와 주식거래대금 모두 사상 최고 치를 경신했다.

문제는 실물경제가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각국 정부가 팬데믹 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금융시장에 공급한 막대한 유동성이 실물경제를 견인하는데 쓰이지 않고 자산시장에 투입되면서 주가와 집값만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실물-금융 간 괴리가 비생산적 부문으로의 자금쏠림을 유발해 실물경기 회복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코로나19 충격이 금융부문까지 전이되는 상황까지도 발생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코로나19 위기 이후의 성장불균형 평가' 보고서에서 '고용없는 경기회복'에 대한 경고와 함께 실물-금융간 괴리가 장기지속 될 경우 자산가격 붕괴로 금융위기로 전이될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박창현 한국은행 조사국 조사총괄팀 과장은 "실물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최근과 같은 자산시장으로의 자금쏠림 현상은 '실물-금융 간 괴리 심화 → 소비 제약, 생산적 부문으로의 자원배분 기능 약화'를 통해 실물경기의 회복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만약 코로나19 장기화로 취약계층의 부진은 심화되고 실업이 크게 늘어나는 가운데 시장의 기대도 빠르게 조정되어 자산가격이 하락할 경우에는 금융부문으로까지 충격이 전이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자산시장으로의 자금쏠림이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 경기회복 지연으로 시장의 기대가 급격히 조정될 경우에는 자산가격이 급락하면서 가계부채가 부실화될 우려가 있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물경제는 2008년 이후 고령화 저성장 기조의 기저질환을 보이는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경기위축이 가세되면서 빠른 회복세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설령 코로나 사태가 해소되더라도 실물경제가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기 어려워 금융시장에서 자산가격 상승만 지속될 가능성이 커 GDP 수준이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소득대비 과도한 수준의 부채 = 정부와 기업, 가계 부채는 소득 대비 과도한 수준으로 증가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기업신용은 경제활동에 비해 가파른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정화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명목GDP 대비 산업대출금의 비율은 2017년말 49.9%에서 2020년 9월말 62.4%로 빠르게 증가했다"며 "코로나19 충격 이후 정책금융 프로그램이 적극적으로 운영됨에 따라 경제활동과 산업대출 증가율 간의 괴리가 더욱 확대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가계대출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682.1조원으로 전년대비 82조원 늘어 이미 국내 전체 경제규모를 앞질렀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신용비율은 101.1%로 가계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넘은 것이다. 기업대출을 포함한 전체 민간신용은 거의 GDP의 2배에 달한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정부의 부양 정책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며 급격하게 늘어난 부채의 역습에 대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평가본부장은 금융업권의 대출채권증가율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본부장은 "지난해 경제성장률과 금융회사 대출채권증가율 사이에 나타난 괴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며 "경제성장률과 대출채권증가율간 괴리가 확대되면 과잉 유동성으로 인해 금융시장과 자산시장에는 버블이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3년 신용카드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사례로 들었다.

◆세계 석학들의 경고 잇따라 =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간 괴리는 비단 한국 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적 현상으로 나타나면서 세계 석학들의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현지시간으로 3일부터 5일까지 진행되는 전미경제학회(ASSA)에서 세계 주요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록다운(봉쇄) 기간에 억눌린 수요와 생산 차질, 무제한 돈 풀기로 상대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거시경제학자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와 증권투자회사 도지앤콕스의 호세 우르수아 이코노미스트 등은 "팬데믹이 경제활동 감소와 인플레이션 상승을 초래했다"며 "높아진 인플레이션이 떨어지지 않고 지속될 가능성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카르멘 라인하트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위기는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변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2021년 기업과 가계는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며 "디폴트가 경기 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코로나19가 전염병 사태에서 금융위기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팬데믹으로 인한 재정적 여파는 지역이나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나타나고 특히 금융회사들은 부실채권의 뚜렷한 증가세에 직면하고 있다"며 "위기 확대를 부채질하는 것은 신용확대와 부채 증가로 부동산과 주식,채권 등의 자산가격에 거품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라인하트는 "각국 정부는 코로나 위기 상황에 귀중한 경기부양 수단을 제공했지만 올해는 유예기간이 끝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후 수많은 기업과 가계가 직면한 문제는 유동성 부족보다는 채무불이행"이라고 강조했다.

제프리 클라인톱 찰스슈왑 선임부회장 또한 주요국 재정·통화정책 긴축 리스크를 우려했다. 그는 "시장은 내년에도 완화적인 재정·통화정책이 이어질 것이란 기대에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데 주요국이 시장 예상보다 일찍 완화적 재정·통화정책을 거둬들이기 시작하면 경기회복을 늦추고 증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각국이 부양책 등으로 폭증한 재정적자를 줄이려는 방안을 모색하는 등 완화적 정책이 끝날 조짐이 보이면 증시가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2021년 글로벌 증시 리스크 점검" 연재기사]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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