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AI 기술 둘러싼 갈등 → 환경·노동·인권문제로 확대

미국 '반중 연대 압박' … 중국, EU와 투자협정 등 공세 강화

새해 들어서도 코로나19 관련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패권전쟁으로 치닫는 미중 갈등은 글로벌 증시 변동성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증권가 전문가들은 오는 20일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중국의 갈등격화 양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무역전쟁에서 반도체·AI 기술을 둘러싼 기술패권 전쟁으로 치달은 미중 갈등은 환경·노동·인권문제까지 범위를 넓혀 트럼프보다 더 강경하게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다. 중국 상무부는 해외의 부당한 법률과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규정을 공표했다. 지난해 말에는 미국 동맹국인 EU와 7년간의 협상 끝에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중국은 올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쥐려는 꿈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관리국(ODA)의 새 규정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부터 미국 기업과 국민은 차이나텔레콤, 차이나유니콤, 차이나모바일 등에 대한 투자를 할 수 없게 된다 .사진은 차이나모바일, 차이나유니콤, 차이나텔레콤 로고. 사진 연합뉴스.


◆미국, 중국 주식 일부 투자금지 = 12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JP모건체이스 등 미국의 주요 투자은행들은 홍콩증권거래소(SEHK)에 상장된 500개의 구조화 상품을 거래 중지할 예정이다. 전일(현지시간)부터 시행된 미국의 중국 군부 관련 기업 규제에 따른 조치다.

이 규제는 미국 국방부에서 지정한 중국 기업 주식과 채권에 미국계 기관, 연기금, 개인투자자의 투자를 금지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는 화웨이, 차이나모바일, 중화집단공사, SMIC(중국인터내셔널반도체) 등 31개 중국 기업을 군부 관련으로 분류했다. 미국의 중국 군부 관련 기업 지정은 반도체, 통신장비, 5G 관련 기업들로 구성되어있다. 기술 패권 경쟁 구도라는 점에서 향후 군부 관련기업 지정도 기술주가 될 가능성 높다.

이에 따라 지난 7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는 중국 3대 통신사 차이나모바일(CHL)과 차이나텔레콤(CHA)·차이나유니콤홍콩(CHU)을 상장폐지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주가지수 산출업체인 S&P(스탠다드앤푸어스), FTSE(파이낸셜타임즈스탁익스체인지), MSCI(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 등은 세 곳의 중국 이동통신회사를 주가지수 산정에서 제외했다.


문제는 알리바바와 텐센트도 투자금지 블랙리스트에 추가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이들 두 기업은 현재 MSCI, FTSE 러셀 등 주요 주가지수에 포함돼 있으며, 알리바바는 뉴욕과 홍콩에 동시 상장돼 있다. 텐센트는 홍콩에만 상장돼 있지만 글로벌 주가 지수 비중이 높다.

전일까지 미국시장에 상장된 중국 기업수는 265개이고, 전체 시가총액에서 알리바바가 차지하는 비중은 27.1%다. 시가총액 상위 5개기업은 알리바바(온라인소비), 핀둬둬(온라인소비), 징동(온라인소비), 중국이동통신(무선통신), 니오(전기차)순이며 이들이 전체 시가총액에서 51.0%를 차지하고 있다.

증권가 전문가들은 미국의 중국 군부 관련 기업 지정은 기술 관련 패권 경쟁 양상을 띠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중국 기술기업들이 규제 대상으로 지정될 가능성 높다고 예상했다.

◆기술 패권전쟁 장기화 =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기술 패권전쟁은 장기화될 개연성이 높다"며 "트럼프가 추진한 제반 군사관련 기업들과 SMIC·화웨이 등 기술 기업에 대한 제재는 바이든 정부에서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영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기업들의 미국 증시 퇴출이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면서도 "이는 양국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번지며 불안감이 이어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김 연구원은 향후 미국에 상장되어 있는 다른 중국기업들까지 영향을 받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중국 3대 석유기업(페트로차이나, 시노펙, 중국해양석유)도 불안하다. 그 중에서 중국해양석유(CNOOC)는 지난 12월 중국의 군사기업으로 추정된다는 혐의로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 같은 시기 신장 위그루 인권 혐의로 드론업체 DJI와 반도체업체 SMIC등을 블랙리스트에 추가한 바 있다. 이에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중국 기업수는 40~50개 남짓으로 증가했다.

지금까지 미국 상무부가 지정한 중국블랙리스트 기업들은 통신, 에너지, IT, 소프트웨어 및 정보기술, 인터넷서비스, 반도체 등과 일부 공산당원 개인이 포함되어 있다.

◆친환경 기술 분야로 갈등 확대 =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패권경쟁은 상시화되는 가운데 올해는 미중 갈등이 친환경·노동·인권 분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1년 세계경제 향방을 좌우할 7대 이슈'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정책이 원칙에 기반한 견제방식으로 전환되면서 미중간 갈등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고 패권경쟁의 부정적 영향이 확대될 소지가 크다. 특히 바이든은 보복관세 수단보다는 환경·반독점·반부패·인권·노동 등을 협상과 연계하고 환율 조작, 불법 수출보조금, 지적재산권 도용 등 불공정 무역관행에 적극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데이비드 레니 베이징 지국장은 "미국 바이든 정부가 무역 전쟁을 넘어 디지털 통화 전쟁까지 앞둔 중국에 대해 여전히 적대적 태도를 보일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는 관세 부과 및 기술기업 제재 등 반중 다자간 연합을 구축해 미중 갈등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의 반격 = 중국의 공세 또한 만만치 않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9일(현지시간) 해외의 부당한 법률과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규정을 공표했다. 이 규정에는 중국 국민과 단체가 해외 법률에 의해 제3국 등으로부터 경제 및 무역 등의 활동에서 규제를 받았을 경우에 30일 이내 상무부에 신고하도록 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상무부는 국제법 위반 유무, 중국의 주권과 안전보장 등의 영향을 검증할 예정이다. 상무부가 부당하다고 판단한 역외 적용 규정으로 피해를 입은 중국 기업은 자국 법원에 이를 신고해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배상에 응하지 않으면 중국 법원이 강제 집행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포함됐다.

핵심 내용은 미국의 대중 제재를 일절 따르지 말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미국 제재를 이행한 자국 및 외국 기업에 경제적 불이익을 줄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중국은 미국 동맹국인 유럽연합(EU)과 7년간의 협상 끝에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작년 말 EU의 일부 국가가 미국의 정책에 동조하며 5G네트워크에 화웨이와 ZTE 장비사용을 금지하도록 결정을 내린 상황에서 표면적으로는 다자주의와 협력이 대두되었지만, 나아가서는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서 다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해석이다.

김 연구원은 "중국은 이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체결했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염두에 두고 있어 대외적으로 친화모드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올해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이다. 데이비드 레니 베이징 지국장은 "중국 정부가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계기로 내부 결속을 꾀할 것"이라며 "중국은 팬데믹 이전 전망치에 근접하는 급격한 경제 성장까지 이뤄내며 코로나 바이러스의 근원지라는 오명을 딛고 백신 외교에까지 앞장서는 등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쥐려는 꿈을 펼치려 할 것이 예상돼 미중 갈등에 대한 긴장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글로벌 증시 리스크 점검" 연재기사]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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