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 투기세력과 결탁 사례 빈번 … 폐지 논란 지속

투자자 간 이해관계 극명 "더 많은 규제·평등 필요"

공매도는 주식의 역사와 함께 시작됐다. 하지만 공매도는 태동할 때부터 투자자간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운용방법에 따라 심각한 폐해가 발생하는 투자기법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이는 공매도가 기업의 적정가격을 발견하게 하고 주가의 거품을 제거하는 순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매도가 투기세력의 작전에 이용되고 불공정 거래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정보에 취약한 개인을 파산에 이르게 하고 국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사례가 반복돼 왔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의 공매도 역사를 보면 투기세력과 결탁한 금융자본이 시장의 거품을 조장하며 개인들을 끌어들였고, 이후에는 시장 거품을 제거한다는 미명하에 공매도라는 투자기법으로 개인투자자의 재산을 빼앗았다"고 지적했다. 월가의 '공매도 자객들'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의 민간인 봉사단체 '가디언 에인절스'의 창립자인 커티스 슬리와가 1월 31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주코티 파크에서 게임스톱 주식을 둘러싼 헤지펀드의 행태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뉴욕 EPA=연합뉴스


◆400년 전부터 시작된 공매도 =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역사상 최초의 공매도거래는 1609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거래소에서 동인도회사 주식에 대해 시작됐다. 1602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의 최대주주였던 아이작 르 메르가 1605년 회사 자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회사에서 손을 떼게 된 후 주가를 떨어뜨릴 속셈으로 공매도를 한 것이다.

하지만 공매도는 남들이 모두 파산해야 돈을 버는 거래였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매우 비겁한 거래라는 비판을 받았고, 네덜란드에서도 폭락을 유도한다며 금지한 사례가 많았다. 당시에는 특히 내부정보가 매우 제한된 개인투자자들의 광적인 투자로 주식의 거품이 절정으로 달했을 때, 정부 고위층과 유착된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공매도로 이득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동인도회사의 이사들은 공매도가 "고아와 과부 같은 순진한 투자자들에게 측량할 수 없는 손해를 끼친다"며 당국에 공매도 금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1일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공매도와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미국 개인투자자들과의 연대계획을 발표했다. 한투연 회원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공매도 폐지를 촉구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영국에서는 만유인력의 아버지로 알려진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1720년 '남해주식회사'라는 기업 주식에 투자했다가 공매도 세력에 의해 전 재산을 날리기도 했다. 반면 남해주식회사와 유착돼 이미 공매도 거래를 준비해놨던 일부 고위관료들은 역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이 회사가 일으킨 사회적 파장은 엄청났고, 1734년 공매도는 법으로 금지됐다. 그러나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아 1860년에는 결국 폐지됐다.

미국에서는 1929년 증권시장 대붕괴 시 공매도가 주가 폭락의 주요 원인으로 비난받았다. 이에 대공황의 여파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던 1938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업틱룰'을 도입했다. 업틱룰은 공매도를 할 때 직전 거래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호가를 내지 못하게 하는 규정으로 주가의 급격한 하락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다.


◆금융위기 당시에도 공매도와 전쟁 발발 =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세계 각국 금융당국이 공매도와의 전쟁에 나섰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자체는 불법이 아니지만 이를 위해 악성루머를 퍼뜨려 이익을 취하는 범죄행위로 인해 주가가 폭락하면서 금융패닉이 발생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해 7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9개 IB(투자은행) 주식에 대해 무차입공매도를 30일간 금지하는 공매도 제한 비상조치를 발동했다. 당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인 크리스토퍼 콕스는 "투자자와 자본시장을 위협하는 투기세력과 전쟁을 위해 모든 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검찰도 공매도에 대한 수사를 강화했다. 당시 수사 대상에는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이 포함됐다.

최근 발생한 '게임스톱 사태'는 월가 금융회사의 탐욕과 소득불평등에 맞선 "월가를 다시 점령하라" 시위로도 평가된다. 지난달 31일 낮 미국 뉴욕 맨해튼 남부의 주코티 파크에는 수십 명의 시위대가 몰려들어 공매도 헤지펀드들을 규탄했다.

정치권도 공매도 전쟁에 가세했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유력 의원들도 일제히 개미들의 편에 서서 공매도를 일삼는 월스트리트의 대형 헤지펀드와 개인 투자자들의 게임스톱 거래를 막은 주식거래 회사들을 공격한 것이다. 로 카나(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도 성명을 내 "이번 사건은 기술의 힘이 금융기관들에 대한 접근권을 민주화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며 "시장에서 더 많은 규제와 평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외국인 놀이터로 전락 =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는 1969년 2월 신용융자제도, 신용대주제도가 도입되면서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가 가능해졌다. 이때 공매도란 대부분 무차입공매도를 지칭했다. 1996년 9월부터는 기관투자자의 차입공매도 거래가 시작됐다. 코스피200 선물·옵션 시장 개설과 함께 한국 증권거래소 상장종목에 대한 유가증권 대차 제도를 도입하면서다. 1998년에는 외국인투자가가 뛰어들면서 공매도 거래는 더 증가했다.

2000년에 우풍상호신용금고 사태가 일어나면서 무차입공매도가 폐지됐다. 우풍상호신용금고가 코스닥종목인 성도이엔지 주식(34만주)을 공매도한 후 제때 결제를 못하는 사상 초유의 결제불이행 사태로 44억여원의 손실을 본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외국인 공매도가 전체 물량의 90%를 넘어 공매도 거래대금만 33조원을 넘었다. 외국인들이 대량을 주식을 빌린 다음 이를 바탕으로 공매도 주문을 냈던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고조되던 시기, 한국 증시에서는 제2의 외환위기가 거론될 정도로 주가가 폭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급상승하고 외화 유동성이 부족해지는 급박한 상황이 전개됐다. 그해 9월, 우리나라에서도 전 종목에 대한 공매도 금지조치를 한시적으로 시행했다. 이후 2009년 6월에 비금융회사의 차입공매도는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1년 8월 유럽 재정위기가 터지면서 3개월간 2차 공매도 금지가 시행됐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공매도 시장은 외국인 놀이터로 전락했고 개인투자자들에게 '공매도는 나쁘다'는 인식이 심어졌다.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 피해를 본 대표적 기업은 셀트리온이다. 셀트리온은 2008년 코스닥 상장 후 10여 차례 공매도 세력에 의한 루머와 집중적 공매도에 시달렸다. 당시 공매도 세력은 셀트리온의 분식회계설, 서정진 회장 도피설, 임상 실패설 등의 공세를 퍼부었다. 공매도 주체는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모간스탠리, CS 등 외국계 증권사였다. 셀트리온은 2018년 2월 코스피로 이전 상장했지만 공매도는 계속 셀트리온을 따라다녔고, 올해 1월엔 셀트리온헬스케어와 셀트리온제약이 공매도 과열종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불성실 공시와 공매도 악용 사례도 있다. 한미약품은 2016년 9월 29일 장 마감 후 오후 4시 33분에 제넨텍과 1조원 규모의 항암제 기술수출 계약을 했다는 호재성 공시를 발표했다. 하지만 오후 7시 6분에 베링거인겔하임이 자사가 제공한 항암제 개발을 중단하는 악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한미약품은 다음날인 30일 기술이전 취소 악재성 공시를 올렸고, 주가는 급락해 18.06% 하락 마감했다. 이 사이 공매도 물량은 320억원에 달하며 전날의 13배 이상으로 폭증했고, 공매도 세력은 최대 23.24%의 수익을 챙겼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인 무차입 공매도는 매년 증가했다. 2013년 226억원, 2014년엔 2000억원, 2016년 3000억원, 2017년엔 5700억원에 달한다. 대상주식 수는 2013년 6개사에서 2016년엔 55개사로 증가했다. 골드막삭스의 무차입공매도 사례는 여러 건이다. 2017년 10월엔 롯데칠성음료와 2018년 1월 중외제약 건이 있었다.5월에는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이 156종목 401억원 어치에 대해 무차입 공매도를 한 혐의로 75억480만원의 과태료를 받기도 했다.

["증시 블랙홀 공매도" 연재기사]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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