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친구들과 함께 읽으며 책 관련 다양한 활동 … "평생 독자 되는 기반된다"

#2020년 영등포여고 2학년 2학기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에서 하고운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30분 동안 휴대폰을 보지 않고 책만 본다'는 점이었다. 학생들은 휴대폰을 주머니 안에 넣거나 책상 가운데 모아두고 책을 읽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30분 동안 휴대폰을 보지 않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수업은 '인생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독서를 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친구, 선생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수업으로 시작했다. 다음으로는 사회문제를 고민하는 책을 읽으며 '책 대화하기'를 시도했다. '대리사회'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등 8권을 선정했다. 학생들은 직접 책을 보면서 원하는 책을 골랐다. 모둠을 먼저 정하고 책을 고르기, 책을 골라 한 모둠이 되기 등 2가지 방법 중 반별로 원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대체로 3~4명이 한 모둠이 됐고 2명이 한 모둠이 되기도 했다.

학교도서관은 수업 지원을 위해 8권의 책을 3권씩 구비했고 몇몇 학생들은 책을 구입해 가져왔다. 학생들은 매 시간마다 인상적인 문장에 포스트잇을 붙였고 포스트잇은 수업을 한 만큼 늘어났다. 그렇게 30분을 책을 읽은 후, 학생들은 온라인 협력툴인 패들렛을 통해 독서일지를 써서 공유했다.

관악중 학생들이 클라우드 기반의 노트북인 '크롬북'을 이용해 한 학기 학 권 읽기 수업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관악중학교 제공


학생들이 책을 읽는 속도는 저마다 달랐다. 어떤 학생은 정해진 6시간을 다 채워야 했고 2~3시간 만에 책을 다 읽는 학생도 있었다. 하 교사는 책을 다 읽은 학생에게 8권 중 그 학생이 읽지 않은 다른 책을 건넸다. 수업 시간만으로 부족할 것 같아 보이는 학생에게는 점심시간에 책을 읽을 것을 권했다. 그 학생들은 점심시간, 남은 분량을 읽으러 학교도서관을 찾았다.

하 교사는 "학생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수업이 책 대화하기 수행평가"라면서 "학생들이 이와 같은 활동식 수업을 거의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수업 방식에 매력과 혼란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를 쳐다보기만 했던 학생들은 자신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됐다"면서 "학생들은 '혼자 책을 읽을 때는 몰랐던 것들이 눈에 보였다' '친구의 몰랐던 생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이런 활동을 하고 싶다'는 등의 후기를 남겼다"고 덧붙였다.

2018년부터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교과서가 아닌 책을 읽는다. 2015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에 반영된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2018년에 초등학교 3, 4학년과 중·고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 2019년 초등학교 5·6학년과 중·고등학교 2학년을 거쳐 2020년 중·고등학교 3학년까지 확대됐다. 학생들은 10년 동안 최소한 20권의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함께 깊이 있게 읽으며 성장하게 된다.

◆교사들 수업을 교육 과정으로 = 한 학기 한 권 읽기는 학교마다, 교사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된다. 교사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수업 방식이다. 천천고등학교의 경우, 1학기에는 단편을, 2학기에는 김동식 작가의 소설집 '회색인간'을 읽었다. 천천고는 여러 교과의 독서 수업을 연계했다. 사회 교과에서는 '회색인간'을 읽고 사회 부조리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만들었고 국어 교과에서는 '인간성 회복, 예술'에 대해 논했다. 영어 교과에서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말하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원서로 읽었는데 읽고 나서 '회색인간'과 엮어서 논의했다. 서울 관악중학교는 다양한 활동과 함께 청소년 문학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시행 4년 만에 이렇게 자리 잡은 것은, 15~20년 전부터 독서 교육에 적극적인 교사들 사이에서 진행돼 온 수업 방식이기 때문이다. 교사들의 수업 방식을 교육부가 받아들여 전국에 확산시킨 상향식 정책이다.

이지은 정책입안자(현 충북교육청 장학관)는 "초등 온작품읽기 활동, 중등 교사들의 모임인 전국국어교사모임 독서교육 분과 물꼬방,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등 교과서가 아닌 책 한 권을 완독하고 토론으로 깊어진 생각을 쓰는 수업을 많은 학교, 교사들이 하고 있었다"면서 "이것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실제 배움이 일어나는 학습경험'이었기에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으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이어 "하향식 정책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도 정책 실효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은데 한 한기 한 권 읽기는 현장 사례 등을 담은 책들도 많이 집필됐다"고 강조했다.

서수현 광주교육대학교 교수는 "기존 학과 교육에서는 배워야 할 분량이 많아 독서 시간을 보장할 수 없었다"면서 "수업 시간에 긴 글을 긴 호흡으로 읽을 물리적인 시간을 확보하고 교사들의 자율권을 보장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의의"라고 말했다.


◆중학교 시기, 평생 독자 기반 = 우리나라의 경우, 책을 읽는 분위기가 정착되지 않은 사회이며 이는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2020년 '책 읽는 청소년 독자 형성 실증연구 및 사례조사'(2020 청소년책의해 조사 연구, 책임연구자: 이순영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에 따르면 책 읽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중학교 시기는 매우 중요하다. 책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초등학교 3~4학년에 가장 높았다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며 중학교 때부터 '습관적 독자'와 '간헐적 독자' '비독자' 간의 독서 흥미 차이가 극심해진다.

이순영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는 "독자로서 정체성이 생기고 독서 능력이 높아지는 중학교 때 양질의 독서 활동을 수행하면 충분히 독서를 즐기고 역량이 높은 독자로서 성장할 수 있다"면서 "상당히 길고 온전한 텍스트를 스스로 읽어낸 성공 경험은 성취감 자신감을 주며 독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재발견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청소년들은 독자로서 자신의 취향을 자각하고 독자 정체성을 발전시킬 수 있으며 이는 평생 독자가 되는 기반이 된다"고 덧붙였다.

◆교사 자율성 보장·지원 필요 =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성공하려면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학교 환경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교사에 따라, 학교에 따라 수업의 내용과 질의 편차가 클 수 있다. 예컨대, 서울의 A자사고는 전 학년 학생들에게 염상섭의 '삼대'를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게 했는데 이는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형식적으로 운영한 사례다. 서 교수는 "학 한기 한 권 읽기가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자칫 자율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현장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꾸준히 시행될 것이라는 믿음을 교사에게 심어줘야 한다"면서 "준비가 되지 않은 교사를 위해 실제적인 지원 방법을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학교 수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위축된 학교들도 있다. 이 교수는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위해서는 학교도서관이 운영돼야 한다"면서 "학생들이 그룹 단위로, 반 단위로 소통하고 활동 결과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교육부는 교사 역량 제고를 위한 원격 연수를 서비스 중이며 지원 플랫폼을 3월 시범운영하고 9월부터 본격 공개한다.

["한 학기 한 권 읽기" 연재기사]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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