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지수, 일본·스페인 버블시기 보다 높아 … 부동산 3법, 보수성향 노태우정부가 처음 도입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2017년 이후 부동산으로 인한 불평등 정도가 더욱 심화됐다. 근로소득에 비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인한 소득이 훨씬 커지면서 개인별 자산 격차가 더 벌어졌다. 현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벼락거지'라는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 재건축 추진 단지들 주변 부동산 모습. 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고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2010년 이후 피케티지수 현황'에 따르면 2017년 7.9배였던 피케티지수는 2019년 8.6배까지 상승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피케티지수는 7.6~7.8배 수준에 머물렀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고안한 피케티 지수는 순자산을 국민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계수가 크면 클수록 해당 자산이 근로소득보다는 자산가치 상승 등에 영향을 더 많이 받았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피케티 지수는 5~6배 수준인 선진국은 물론 일본과 스페인에서 부동산 버블이 정점이던 때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는 한국에선 부동산이 다른 국가들보다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토지자산 비율은 2013년 4.0배에서 2018년 4.3배, 작년에는 4.6배로 상승했다. 반면 일본 프랑스 호주 등은 2.4~2.8배, 캐나다와 네덜란드는 1.3~1.6배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9년 가계의 순자산은 전년보다 596조원 늘어났다. 또 가계가 보유한 주택 시가총액은 2019년 4725조원으로 전년보다 325조원 증가했다. 가계 자산 상승분의 절반 이상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발생한 것이다.

고 의원은 "우리나라의 피케티지수가 높은 것은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것과 관련이 깊다"며 "부동산 시장을 조속히 정상화해 자산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헌법은 토지공개념 수용 =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치권을 시작으로 사회 곳곳에서 토지공개념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헌법은 이미 토지공개념 의미를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 법률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헌법 제122조는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또 헌법 제23조는 '법률에 의한 재산권 보장의 내용과 한계, 재산권 행사의 공공복리 적합성,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 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정당 보상' 헌법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적시했다.

문제는 이 규정들이 선언적 의미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3월 문재인정부는 '토지의 공공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개헌안을 제출했다. 당시 보수진영은 토지공개념 조항에 '사회주의'라며 색깔론을 씌워 반대했다. 개헌안은 결국 흐지부지 됐다. 하지만 사회주의라는 공격을 받은 토지공개념은 자본주의의 본산인 미국을 비롯해 영국 독일 등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발달한 선진국들도 도입하고 있다.

최근 여당 안팎에서는 "이번 LH 사태로 부동산 투기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금 토지공개념을 공론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부동산 투기로 이득을 본 사람들의 개발이익을 환수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부동산 3법 도입한 1980년대 말과 유사 = 과거 선언적 의미로 존재했던 토지공개념을 제도화한 것은 진보가 아닌 보수정권이었다.

1989년 노태우정권은 △택지소유상한제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토지공개념 3법'을 제정했다. 3저 호황에 따른 급격한 경제성장 등으로 자산가격이 치솟아 어려워진 국민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택지소유상한제는 6대 도시에 200평(660㎡) 이상 택지를 취득하려면 지자체 허가를 받도록 했다. 또 이를 5년 안에 이용·개발 또는 처분하지 않으면 초과소유부담금을 내게 했다.

토지초과이득세는 유휴토지 소유자를 대상으로 지가 상승분의 30%(1000만원 이하) 또는 50%(1000만원 초과)의 세금을 3년 단위로 물리고자 했다.

개발이익환수제는 신도시 등 대규모 택지 개발이익의 50%를 개발부담금으로 환수했다.

하지만 토지초과이득세법은 1994년 제도설계 실패에 따른 과도한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불합치를, 택지소유상한제법도 비슷한 이유로 1999년 위헌 판정을 받았다.

특히 김영삼·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부동산 규제를 손질하면서 토지초과이득세와 택지소유상한제를 폐지했다. 이후 개발이익환수제만이 다양한 형태로 시행과 중단을 오가고 있다.

전강수 교수(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는 "88올림픽을 치르면서 부동산 투기가 대단했는데 노태우정부는 이를 사회가 전복될 수도 있는 엄청난 위기로 인식했다"면서 "당시로서는 굉장히 급진적으로 보일 수 있는 개혁방안을 마련했는데 여기에 토지공개념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법률을 만들고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타협도 하고 미진한 점도 있긴 했지만 토지공개념이 반영된 법률이 우리 사회 처음으로 시행된 것"이라며 "그 법률들이 폐지된 건 90년대 말이니까 거의 1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시행이 됐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현재 부동산 시장을 노태우정부가 사회가 전복될 수도 있다고 판단한 1980년대 말과 유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공공성 없으면 미래 없다 = 이런 가운데 일부에서 부동산의 공공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출생아 수는 27만2400만명으로 합계출산율 0.84명을 기록했다. 통계 이래 처음으로 인구 자연감소가 일어나 출생자가 사망자보다 적은 '데드크로스' 현상이 일어났다.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올해 연간 출생아가 25만명대 아래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혼인 건수도 21만4000건으로 전년보다 10.7%(-2만6000건) 줄었다. 통계 작성 이후 가장 적었으며 2012년 이후 9년 연속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6년 28만2000건으로 30만건 아래로 떨어진 이래 꾸준히 감소하다 이제 20만건도 겨우 버티는 수준까지 온 것이다.

미래에 자칫 대한민국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 최근에 행해진 여러 조사에 따르면 출생율이 낮아지는 주요 이유는 경제부담 때문이다. 날로 커지는 경제부담에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부담의 가장 큰 항목은 주거비다. 주거비 증가로 결혼을 미루거나 결혼을 해도 출산을 하지 않은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한경연이 한국노동패널 최신 자료를 사용해 거주유형이 결혼·출산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거주보다 전세·월세 거주 시 결혼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가 거주에 비해 전세 거주 시 결혼 확률은 약 23.4% 감소했고, 월세 거주의 경우에는 약 65.1%나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또 거주유형이 결혼한 가구의 아이 출산에 유의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 거주 시 자녀 출산 가능성이 자가 거주에 비해 약 28.9%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세 거주의 경우 자가 거주에 비해 자녀 출산 가능성이 약 55.7%나 줄었다.

전 교수는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이라는 철학 아래 토지보유세 강화, 토지공공임대제, 부동산백지신탁제 등 삼각 구도의 부동산 정책을 펼쳐야 한다"면서 "그래야 부동산으로 인한 자산불평등이라는 엄청난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지공개념 공론화로 부동산 불평등 해법찾자" 연재기사]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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