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에게 시의회만큼 부담스런 상대는 24개 자치구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24곳이 민주당 구청장으로 여당이 90%를 장악한 시의회를 능가한다.

서울시는 예산으로 자치구를 통제한다. 보조금, 교부금, 시장 재량이 발동되는 특별교부금 등 서울시 지원 없이는 자치구 사업이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시가 머리라면 자치구는 몸통이자 손발이다. 서울시 대부분 사업의 실행력은 자치구에서 나온다. 선별검사소 운영, 재난지원금 지급, 요양시설 전수조사와 유흥업소 단속· 점검 등은 구청과 동주민센터 직원 등 모두 자치구 몫이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사전투표 업무에 투입된 자치구 인력만해도 선거사무원을 포함, 약 5만3000명에 이른다.


오 시장 공약 중에는 자치구와 충돌이 예상되는 것들이 다수 존재한다.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혁신파크 문제가 대표적이다. 혁신파크는 전임 시장 대표작품으로 각종 사회적경제기업과 지원시설 등이 입주해 있다. 오 시장은 10만9727㎡ 넓이의 해당 부지에 복합쇼핑몰과 장기전세주택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쇼핑몰은 인근에 극심한 교통정체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장기전세주택은 지역민들 반발 때문에 시와 자치구 간 충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노원구와는 창동차량기지 이전 부지 활용 문제로 충돌이 예상된다. 노원구는 대규모 첨단 바이오 단지 조성을 추진 중이지만 오 시장은 이 자리에 돔 구장과 복합상업시설을 짓겠다고 했다. 구에선 "오 시장 구상대로면 바이오 단지는 이도저도 아닌 모양새가 될 것"이라며 우려가 크다.

전체 자치구와 연관된 공약도 있다. 재산세 감면과 부동산 정책이다. 오 시장은 선거 기간 1세대 1주택자 재산세 감면 정책을 펴겠다고 약속했다. 재산세 감면은 가뜩이나 부족한 자치구 재정을 더욱 압박할 수 있다. 자치구들이 감면을 반대하거나 대체 재원 마련을 요구하는 이유다.

자치구와 관련된 오 시장 공약이 모두 갈등을 유발하는 건 아니다. 상당수는 지역의 숙원 사업을 공약화한 것으로 주민들 찬성 여론이 높은 것들이다. 하지만 몇몇 주요 공약은 자치구의 큰 반발을 불러 서울 곳곳을 분쟁지역으로 만들 소지가 있다는 게 자치구들 우려다.

무엇보다 큰 혼선은 방역에서 올 수 있다. 오 시장이 서울시만의 거리두기 방안을 만들 것이라고 밝히면서 자치구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촌각을 다투는 방역현장에선 정부 방침과 서울시 메뉴얼이 다를 경우 혼선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 안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경기도와 인접한 자치구에선 같은 상권에서 상점마다 문을 닫는 시간이 달라 단속과 점검, 특히 소상공인들 방역 협조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치구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의료진 뿐 아니라 방역 현장을 담당하는 자치구 직원들은 기진맥진한 상태"라며 "이 상황에서 방역 지침 혼선까지 벌어지면 방역 틈새가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구청장협의회는 14일 오 시장과 면담을 갖는다. 구청장들은 이 자리에서 방역, 부동산 등 민생 핵심 현안에 대한 '협치'를 주문할 예정이다. 서울 한 구청장은 "오 시장이 자치구를 상하관계가 아닌 방역 위기와 절벽에 부닥친 민생을 되살릴 동반자로 여기고 대승적 협력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의회는 13일 내곡동 땅 투기의혹에 대한 서울시 행정사무조사 계획을 잠정 보류했다. 보궐선거 민심을 감안해 시장 임기 시작부터 여야가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선제적인 협치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시험대 오른 오세훈 리더십" 연재기사]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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