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정전협상을 군사적인 문제로 국한시키자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정전협정 4조 60항은 3개월 이내에 정치회의를 소집해 외국군대 철수와 한반도 평화정착방안을 협의하도록 규정했다.

제네바회담으로 불리는 정치회의는 미국을 비롯한 유엔참전 16개국 중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뺀 참전국 대표와 한국(대표 변영태 외무장관), 북한, 중국, 소련대표가 참석해 1954년 4월 26일부터 6월 15일까지 열렸다.

제네바회담 분위기를 주도한 국가는 미국과 소련이었다. 두 강대국의 입장은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 등 주요사건에 대한 입장과 동일했다. 미국은 분단을 추구했고, 소련은 통일을 추구했다. 소련은 통일 한반도가 자국에 우호적일 것으로 판단했고, 미국은 한반도 분단이 자국에 가장 이익이 된다고 판단했다.

◆"북한 점령할 능력 있었지만 안해" = 미국의 입장은 정전협정을 앞두고 작성한 비밀문서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1953년 4월 15일 미 국무부 동북아실장 영(Young)은 미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 로버트슨에게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현재의 생각'이란 주제의 보고서를 보냈다.

보고서는 "1951년 당시 우리는 북한을 점령할 능력이 있었지만 점령하지 않았다. (중략) 당시 미 합참은 캔사스-와이오밍선(현 38선) 너머 북한을 추가 점령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없다고 판단했다. (중략) 미 국무부가 한반도 대부분을 점령하는 정책을 옹호하지 않았던 정치적 이유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중략) 지난 2년 동안 미국정부는 극동지역과 세계에서 미국의 단기 및 장기 목표가 미 합참이 권고한 캔사스-와이오밍선을 따라 정전협정을 체결하고 분쟁을 종료시키는 경우 가장 잘 충족된다고 생각했다. (중략) 우리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예상되는 제네바 평화회담이 적정 형태의 정전상태를 지속 유지하는 형태의 교착국면, 미국이 무기한 동안 수용 가능한 형태의 교착국면을 초래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적었다.

'북한 점령능력이 있었지만 하지 않았고, 38선을 유지하는 정전상태를 지속할 때 미국 이익이 가장 잘 충족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미국 입장은 제네바회담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제네바회담에서 한국대표 변영태 외무장관은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이며, 남북통일을 겨냥한 유엔감시 하의 선거는 북한지역만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또 소련통제를 받는 중국군은 한반도에서 즉각 철수하는 반면, 유엔군은 한반도에 체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대표 존 덜레스 국무장관은 한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북측대표 남일은 한반도 전체를 대변하는 국회의원 선출을 위해 한반도 차원의 선거를 주장했다. 남북이 동수로 한반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사안을 상호 합의로 결정하자고 했다.

또 모든 외국군은 6개월 안에 철수를 주장했다. 중국대표 저우언라이는 북측 제안을 일부 수정해, 몇몇 중립국 대표들이 한반도 차원의 국회의원선거를 감독하자고 제안했다. 북한은 이 수정안을 수용했다.

◆ 유엔참전국, 한-미와 다른 입장 = 유엔참전국들은 한국-미국의 제안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미국 입장에 대항할 의향이 없다는 점에서 침묵을 지켰다. 유엔 평화협상에 관한 많은 책을 저술한 시드니 베일리는 "영국 이든 외무장관은 한국-미국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6월 15일 소련대표 몰로토프는 통일된 민주적 한반도정부 출범을 지지하는 선언문을 채택하자고 제안했다. 중국대표 저우언라이는 여기에 적정 시점과 장소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협상 재개를 추가했다. 하지만 미국이 거부해 제네바회담은 아무런 성과없이 끝났다.

제네바회담에 참석한 유엔참전국들의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영국대표 이든의 수석비서 에블린 슉버거는 본인의 4월 29일 일기장에 "아직까지 서방측은 합리적인 제안을 하지 않았다"고 썼다. 5월 5일엔 "제네바회담이 난항에 봉착했다. 이는 비공산국가들의 잘못 때문"이라고 썼다.

캐나다 대표 채스터 로닝은 "미국-한국과 나머지 유엔참전국들의 입장차가 상당하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미 국무부는 유엔의 권위를 문제삼아 제네바회담을 결렬시키라고 미국 대표에게 지시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위선적인 행위다. 유엔의 권위 제기는 제네바회담을 결렬시키기 위해 날조된 것"이라고 말했다.

벨기에 대표 스팍이 제네바회담 말미에 저우언라이의 제안과 타협하는 안을 제안하려 하자, 미 국무부 차관 베델 스미스는 손을 번쩍 치켜들고는 발언을 차단시켰다. 프랑스 대표 쟝 소벨은 "미국이 몰염치하게도 당시 토론을 훼방놓았다"고 말했다.

캐나다 대표 채스터 로닝은 "나는 평화회담 참석을 위해 이곳에 온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이곳 분위기는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평화협정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네바회담을 종료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몰로토프가 제시한 결의안을 기본으로 유엔참전국 16개국 대부분이 수용할 수 있는 형태의 협정을 체결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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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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