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11월 3일(미국 시간)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미국의 4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개표 과정 중 곳곳에서 문제가 생겼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발언들은 미국 유권자들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결국 306명의 선거인단 확보로 바이든 후보가 최종 당선되었다는 언론 발표가 있기까지 대략 열흘 정도 걸렸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당선을 확정발언한 것은 11월 7일이었고, 언론의 확정보도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이 쉽게 포착하지 못한 면이 있는데, 이 열흘의 시간 동안 바이든은 매우 중요한 일련의 발언들을 쏟아낸다. 바이든이 언급했던 키워드를 중심으로 당선 이후 지금까지의 1년을 되돌아보며 미국 민주주의의 향배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바이든 1년을 관통한 '파리기후협약'

선거 당일 자정이 조금 넘어 델라웨어주 웰링턴 자택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바이든은 지지자들 앞에서 세 가지 키워드를 언급했다. 태어난 고향인 '펜실베이니아 주(州) 스크랜튼' '할아버지의 사랑과 가톨릭 정신', 그리고 '델라웨어'였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날 때 할아버지와 나눴던 사랑, 자신을 버티게 해 준 가톨릭 정신, 또한 델라웨어에서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전국적인 정치지도자로 성장하게 된 소회를 간단하게 언급한 것이다.

여기에는 코로나, 경기침체, 극단적인 트럼피즘에 빠진 미국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려는 강한 정치적 의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가난한 유년을 보낸 본인의 성장과정을 본보기 삼아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한계 상황에 이른 미국인들이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란 마음이 담겨있었다.

다음날 바이든은 트위터를 통해 "77일 후 파리기후협약에 가입하겠다"고 밝힌다. '파리기후협약'은 고심 끝에 선택한 정치적 상징이다. '트위터 정치'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만큼 무분별한 메시지 발산으로 미국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전임자의 과오를 모를 리 없는 그였지만, 트위터를 통해 '77일'이라는 매우 계산된 의도를 발신했다. 포인트는 '트럼프 지우기'의 타깃으로 '파리'와 '기후협약'을 선택한 점이다.

물론 77일은 취임일인 다음해 1월 20일까지 남은 날짜를 의미한다. '기후변화'는 국내외 산업계, 국제이슈를 주도하는 외교 분야, 트럼피즘이라는 정치적 퇴행, 그리고 파리를 매개로 한 유럽 우방국들과의 관계강화라는 여러개의 정치적 과녁을 일거에 꿰뚫은 회심의 화살이었다.

1년을 돌이켜보건대 이 화살이 정확히 과녁을 맞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이든이 생각했던 정치적 의도는 대체로 옳은 방향이었지만, 취임 첫해 그가 보인 행보에 일종의 의도하지 않은 오류가 발생했다. 트럼피즘의 해소를 위해 차라리 '법인세 문제'나 '중동 문제'를 더 직접적으로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글로벌 기후변화 대처가 민주당 외교와 바이든 리더십의 비교우위이긴 하지만, 일반인에게 확연하게 어필하기에는 다소 어렵고 복잡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법인세 인상과 소위 '최소 법인세' 신설 문제에 처음부터 정치적 에너지를 투입했다면 효과가 더 컸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바이든은 대략 21% 수준인 미국의 법인세를 28% 수준까지 올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또한 연간 10억달러 이상의 이익을 낸 기업을 대상으로 '최소 법인세 20% 이상'을 의무화하겠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현재는 민주당 상원의원들을 중심으로 최소 법인세 15% 세안이 발의된 상태다. 세금 문제에 좀더 천착했더라면, 세수 확보가 바이든행정부의 '그린 뉴딜' 동력을 확보해주고, 또 결과적으로 경기부양 효과도 동시에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며 정치적 지지기반도 더 넓어졌을 것이다.

중동 문제의 경우도 애초 기대했던 이란 문제는 더 어려워졌다. 결정적으로 지난 여름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 드러났던 미국정부의 난맥상은 "77일 후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겠다"고 밝힌 바이든 대통령의 모습이 어디 갔는지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다.

실업률 하락에도 경제리더십 평가 최악

바이든이 밝힌 키워드 중 '코로나'와 '경기부양'은 단연 눈에 띄었다. 코로나19 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계획'(National Strategy)를 구상한다고 밝혔고, 대규모 추가 지원예산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러면 현재 바이든 1년의 경제 성적표는 어떨까? 한마디로 바이든의 경제 리더십은 최악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소 의아한 측면들이 공존하는데, 흥미롭게도 바로 1년 전 바이든이 언급했던 두개의 키워드 '코로나'와 '경기부양'의 공존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경제상황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를 꼽으라면 실업률인데, 취임시 6.8% 수준이었던 실업률이 현재 4% 중반대로 2%p 이상 떨어졌으니 국민의 만족도가 높을 만도 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업률 하락의 최대 요인은 코로나 사태 극복이 가시화되면서 퇴직자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현재 각종 원자재 가격인상이 상품가격 인상을 통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면서, 실업률 하락 같은 현상이 일반 국민들에게 경기개선이라는 체감효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연방준비은행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더 이상 늦추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금 바이든 대통령은 유럽을 순방중이다. 6월 G7 회의 참석차 유럽을 찾았던 이래로 두 번째 방문이다. 특히 이번 방문에서는 바티칸 예방을 포함해 유럽 정상들을 두루 만나면서 당선 직후 미국이 속한 대서양공동체를 향해 던졌던 메시지인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는 2017년 전임자의 탈퇴에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전임자에 대한 예우가 비교적 분명한 미국 정치 현실에서, 특히 장소가 외국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흔치 않은 일이다.

1년 전 당선 시점에서 바이든이 쏟아낸 희망의 메시지를 일거에 무력화시키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바로 올 초에 일어난 의사당 난입 사태였다. 사태 직후 합의되었던 하원 산하의 '진상조사위원회'가 출범한 것은 6월 말이었고, 올 연말까지 조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사태의 진상조사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사법적 처벌이 한 축이고, 민주당이 주도하는 정치적 처벌이 또 다른 축을 이룬다. 하지만 공화당이 하원 산하 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사결과보고서가 정치적 분열의 도화선을 다시 건드려 미국 사회를 또 다른 혼돈으로 몰고 가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끝이 안보이는 미국 민주주의 위기

바이든 당선 1년, 트럼피즘의 잔영은 여전히 깊게 드리우고 있다. 허니문으로 알려진 취임 3개월이 지난 직후 60%를 유지하던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최근에는 40%를 밑도는 수치까지 나타났다. 2차대전 이후 최악의 첫 1년으로 평가되던 트럼프 대통령 수준에 버금간다.

한국시간으로 어제 치러진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글렌 영킨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버지니아는 우리식으로 보면 일종의 수도권이어서 미국 정치의 풍향계 역할을 해왔고 영킨 후보가 트럼프와 약간의 거리를 유지해왔지만, 바이든의 리더십에 큰 흠집이 난 건 분명해 보인다.

폴란드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쿼바디스'(quo vadis, 어디로 가시나이까)는 영화 버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기본적으로 기독교 박해와 인간의 자유의지가 잘 결합해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었다. 미국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핵심 건국이념으로 삼아 탄생한 국가다. 생각보다 위기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