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 전 투르크메니스탄 대사

지난 8월 15일, 20년간 지속된 아프가니스탄 내전의 종지부를 찍고 반군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입성했다. 이슬람을 너무나 신봉하는 현재와, 과거 20여년 전 집권 시 극단적인 행동으로 각인된 탈레반의 이미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미래에 대한 전망에도 투사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중동이 아닌 아시아의 일원이다. 오래전 중앙아시아로부터 이슬람이 전파되었다. 그래서 이슬람도 중동이 아닌 중앙아시아의 모습이고 그 지역 회교사원의 모습도 그렇다. 종교 극단주의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세계적인 수송로이자 이동로에 위치

아프가니스탄을 지나는 길은 세계적인 수송로였고 이동로였다. 서역(지중해)과 중원(중국)과 힌두스탄(인도)을 연결하는 교차로 부근에 위치해 여러 민족들이 빈번히 지나다녔다. 인도의 불교와 향신료도 이 길을 통해 세계로 나갔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은 다민족 다문화 사회가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이름은 '아프간의 땅'이란 뜻의 투르크어이고 인구의 다수는 이란계다. 문화적으로는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둔 이슬람 사회다.


오래전 이란계 아리안족이 인도로 갔다. 11세기에는 투르크계 민족이 인도로 갔다. 모두 아프가니스탄을 지나갔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북부에는 투르크계 민족이 거주한다. 그 이남에는 파슈툰을 비롯한 다수 이란계 민족이 머물고 있다. 탈레반의 카불 함락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카불을 방문해 탈레반을 만났다고 한다. 투르크계 큰 형님인 터키로서는 인연과 이해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투르크계가 조상인 경주 김씨도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하였기에 한국과도 인연의 끈은 이어진다.

세계적인 정치·경제 중심지를 연결하는 이동로 상에 위치하고 있어 아프가니스탄은 통념과 달리 그렇게 배타적인 건 아닐 수 있다. 종교적으로도 극단적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수십년간 지속된 내전의 혼란 속에서 외부의 극단주의 세력들이 둥지를 트는 시도는 있었다. 오랫동안 이민족의 침입 루트였기 때문에 투쟁과정에서 저항정신을 발전시켜왔다. 아프가니스탄을 지나다닌 중앙아시아나 인도 등 인근지역 민족들의 평가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험준한 산악지형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20세기 지정학적 대결과 냉전으로 인해 고립이 장기화되고 보수화되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전통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을 것이다. 현재 탈레반의 행태를 전통고수와 외세저항으로 해석하면 어떨까? 문득 구한말 우리 의병들의 모습과 중첩된다.

탈레반정부의 관심은 사태수습과 재건

탈레반은 지난 20년의 공백을 뛰어 넘어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장악하고 정부도 수립했다. 다민족 다문화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통합이 필요하다. 피폐한 경제의 재건도 시급하다. 또 다시 과거로 회귀한다면 21세기 정보화시대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어렵고 낙후된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변신한 탈레반은 사태수습과 미래건설을 위해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은 아직 수뇌부의 지휘감독 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동안 혼란으로 인해 국제사회를 실망시킬 것이다.

최근 탈레반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경제재건의 기적을 이룩한 한국에게도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반신반의하며 아프가니스탄을 주시한다. 그럼에도 유럽연합(EU)과 다수 국가들이 지원 의사를 밝혔다. 유라시아 대륙의 이동 및 수송의 요충지로서 미래의 지정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잠재력 때문이다. 나아가 미래산업이 필요로 하는 광물자원도 보유하고 있다.

정보화시대의 선두그룹에 속한 한국은 이러한 자원을 필요로 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노하우를 전수하고 경제재건을 지원함으로써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대상을 선점하는 노력이 요망된다. 20년간 주둔하다 철수한 미국도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한국의 주도적인 협력 시도를 원하고 있지 않을까.

17조5000억㎥의 가스 매장량(세계 4위)을 보유했지만 시장으로 수송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인접국 투르크메니스탄은 10여년 전부터 거대시장인 인도행 가스 수송로 건설을 추진해왔다. 인도의 수요는 무한정하며 이 수요를 충족시키는 가스 수송로는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해야 한다.

투르크메니스탄과 인도가 가스관으로 다시 연결된다면 모두가 상생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다. 출발지 투르크메니스탄 및 종착지 인도 그리고 통과국인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4개국 정부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실현 방안을 협의하고 정상회의도 개최했다. 세계 오일메이저 및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금융기관도 협의에 참여하고 동향을 지켜보고 있다.

그동안 4개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총 길이 1814km의 'TAPI'(Turkmenistan―Afghanistan―Pakistan―India) 가스관 건설 사업은 아프가니스탄 정세 불안으로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정세가 오히려 안정되고 TAPI 사업의 실현 가능성이 커졌다.

가스관 건설 사업은 고용을 창출하고 필요한 가스 공급을 확보하며 가스 통과로 인한 수입이 발생한다. 탈레반이 국가통합과 경제재건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사업으로, 아프가니스탄의 미래 건설을 견인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한국의 경제재건 지원과 TAPI 사업 후원은 그 효과가 지대하다. 이로 인해 중앙아시아에서의 부수적인 실리 추구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새로운 시각에서의 조망이 필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흐름 속에서 영국이 인도양 연안부터 유라시아 내륙으로 진출하고 대륙의 북방 러시아는 바다를 향한 운명적 남하를 지속했다. 이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을 따라 전선이 형성되고 이 전선을 통과하는 세계사적 교류와 이동은 중단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길은 끊어졌고 고립되기 시작했다. 냉전시대는 이러한 중단을 강화시켰다. 그래서 과거 여러 민족들이 지나다니면서 형성된 다민족 다문화 사회의 아프가니스탄이 오늘날의 고립된 모습으로 변하고 착시현상도 시작되었다.

지난 1000년간 투르크계 민족은 동분서주했다. 중동에는 셀주크투르크에 이어 오토만제국이 동서간 교류를 지배했다. 유라시아와 인도에서는 티무르 제국에 이어 무굴제국이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리고 서세동점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지정학적 변화는 아프가니스탄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형성된 인식의 틀은 그동안 지속되어온 본연의 모습에 대한 착시를 유발한다. 이를 극복하면서 실체를 바라보고 미래를 창조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변화 시도는 무의미하지 않고 기회는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