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이화여대 국제정치학 교수

종이신문이 이제는 고전(古典)이 되었다는 평가가 있지만,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본사를 둔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는 뉴욕에 터를 잡은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와 함께 미국의 민주주의와 언론을 상징하는 양대 산맥이다. 대륙을 가로지르면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 Times)도 있고, 대륙 한 가운데에는 시카고트리뷴(Chicago Tribune)도 있지만 영향력에서는 동부의 양대 산맥에 한참 못 미친다.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Democracy dies in darkness)는 워싱턴포스트 홈페이지 첫 화면의 한 가운데 고독한 슬로건으로 새겨져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이 문구를 화면에 처음 올린 시점이 2017년 2월 22일, 정확히 1주일 후부터 활자 신문에도 제호 바로 밑에 새겨 넣었다. 140년 워싱턴포스트 역사에서 공식 슬로건을 내건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이 표현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전설적인 탐사 전문기자인 밥 우드워드가 2015년 어느 회의석상에서 언급한 게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우드워드가 누가인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끈질기게 파헤쳐 전략과 지장(智將)의 상징이던 닉슨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당사자가 아니었던가. 2017년 2월 22일이면 트럼프 전 대통령 취임으로부터 정확히 한달이 되는 시점이다. 우드워드의 문장(文章)과 트럼프의 몰락 사이에는 무서운 나비효과가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미국은 지금 '사실상 내전 상태'

워싱턴포스트의 슬로건을 풀어보자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원래 모든 민주주의는 그렇게 죽는 법이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약 47%의 득표력을 보였던 공화당의 저력이 놀라웠지만, 바이든을 선택한 미국 유권자들을 믿으며 미국의 민주주의는 금세 힘을 회복할 줄 알았다. 미국의 리더십 위에 덮인 먼지를 떨어내는 데에도 취임 이후 몇 달이면 될 줄 알았다. 우리 한해 예산의 열배쯤 되는 돈을 긴급예산으로 투입하는 포스를 보면서 역시 미국은 위기에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202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미국에 드리워진 두개의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미국 스스로에게 드리워진 자화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제사회라는 거울 속에 비친 미국의 모습이다.

첫째, 민주주의의 핵심은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데 있고, 미국 민주주의는 다양한 '불확실성 제거 게임'을 제도 속에 안착시켜왔다.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은 3연임 제한으로 사라졌고, 대통령과 행정부의 독단에 의해 미국 젊은이들이 피를 흘릴 수 있다는 불확실성은 1973년의 '전쟁수행법'으로 제거됐다. 세계의 중심 국가로서 외국과의 은밀한 거래가 낱낱이 공개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불안감은 대통령의 '행정협정' 권한으로 제거됐다. 이처럼 권력을 가진 자들 사이에서 팽팽한 균형과 견제가 역사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견고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미국 정치에는 불확실성이 켜켜이 쌓이고 있다. 의회에서 확정된 금액만 하더라도 우리 돈으로 대략 5000조원에 달하는 긴급 추가 재정지출은 미국 국민들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대도시의 큰 길에서 조금만 벗어난 골목길은 '돈이 어딘가로 사라지고 있다'는 스프레이 글자로 뒤덮여있다. 약 7% 수준에 달하는 소비자물가지수는 1982년 이래로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가파르게 지속되는 인플레는 백인 중산층과 흑인 및 히스패닉계 빈곤층 사이의 소득격차를 더욱 벌려놓았다.

더욱 답답한 점은 바이든 대통령이 확대 지출을 약속한 사회보장예산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인플레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유색인종으로 대표되는 최빈곤층에게 실질적인 사회보장 정책이 전달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결국 사회적으로 '모두가 모두를 적대시 하는 갈등'으로 이어질 우려만 커지는 상황이다.

다시 워싱턴포스트로 돌아가 보자. 수도 워싱턴에서 꽤 유명세를 떨친 칼럼니스트 다나 밀뱅크(Dana Milbank)는 12월 17일자 워싱턴포스트지 칼럼에서 바바라 월터(Barbara F. Walter) 캘리포니아 주립대 교수의 신간을 소개하며 "미국은 지금 내전(civil war) 상태"라는 주장을 인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최악의 리더십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외교의 시간'을 집권 일성(一聲)으로 내세웠던 그가 다른 나라와의 외교까지는 아니더라도 집권 여당 내 측근을 상대로 한 교섭에도 철저하게 실패한 대목에서 미국인들은 크게 실망했다. 바로 얼마 전 민주당 리더 격인 조 맨친 상원의원이 바이든 대통령이 가장 공을 들인 '사회복지 예산 법안'을 강한 어조로 거부한 사건 때문이다. 이른바 '뉴딜 2.0'으로 바이든 4년 집권을 관통하려던 핵심 테제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대중국 전선에서도 정책 난맥상 노출

둘째, 미국에 드리워진 또 하나의 우울한 그림자는 글로벌 리더십 영역이다. 원래 리더십은 팔로워십을 전제로 한다. '팔로워십'은 쉽게 정의하기 어렵지만 한마디로 '자발적 참여'를 뜻한다. 미국의 해외 리더십은 국내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탑을 쌓아온 부분과 조화를 이룬다. 미국식 민주주의가 예측 가능성을 높인 데에 저력이 있듯이, 글로벌 리더십 역시 미국이 만든 국제질서에 편입되는 것이 개별 국가 이익의 불확실성을 제거해 준다는 의미다.

한미동맹은 한국의 안보와 성장에 뚜렷한 도움을 주었다. 유럽의 나토동맹은 냉전 기간 동안 인류 역사상 최고 속도의 경제성장과 번영을 증명했다. 미국과 일본, 미국과 호주, 미국과 사우디 동맹은 미국이 만들어 놓은 제도적 질서 안에서 다른 걱정 없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했다. 미국이 디자인한 국제적 세팅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한 예측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 대만 정책, 군비증강을 둘러싼 프랑스와의 갈등,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군사적 긴장 등은 미국이 처한 외교 난맥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러한 난제들이 외부세계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바이든정부의 외교 대전략 아래 놓여 있는 큰 그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바이든 대통령의 국내지지 기반이 너무 취약하고, 미국이 해외에 투입할 수 있는 외교안보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미국 파워의 하락은 대중국 전선 관리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쿼드 오커스 파이브아이즈 등과 같은 군사력 중심의 동심원 속에 중국을 가두려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략적으로 특화된 반도체 및 배터리 산업을 중심으로 한 밸류체인이나 에너지 자원의 글로벌 공급망 등 일부 영역을 제외하고는 중국과의 협력에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제각각의 대중국 정책 사이에 유려한 프레임이 작동하지 않는다. 분야별로 가용한 자원과 정책 옵션을 총동원하고 있는 형국으로 보인다.

공동체성 회복 급선무지만 고리 안보여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1년 12월 25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은 러시아의 탄생을 알리며 사임했다. 그 시간부터 미국은 소위 '30년 단극(單極)시대'를 열었다.

어둠 속에서 죽어간다고 스스로 탄식한 미국의 민주주의와 제도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미국에는 전세계 거의 모든 인종, 모든 상품, 그리고 모든 아이디어가 모여 있다. 갈가리 찢긴 적대감의 용광로에 구원의 손길이 미칠 수는 없을 것이다. 공동체성의 회복이 급선무인데 어디에서부터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할지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